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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오징어가 통으로 올라가 식감과 비주얼이 뛰어난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
구운 오징어가 통으로 올라가 식감과 비주얼이 뛰어난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

한 가게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간판. 크고 화려한 간판을 내걸며 가게를 알리던 예전과는 달리 오히려 간판 없는 가게의 이름이 더 유명해지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남구 달동 주택가에 위치한 파스타 식당 '일미양행' 또한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간판 없는 맛집'으로 통한다. 울산 남구 삼산로125번길 24 '일미양행'을 지도에 입력하고 찾아가면 '다모아 음악학원'이라는 상호가 적힌 건물 앞에 도착한다. 다소 낯선 상호와 허름한 외관을 보며 '여기가 파스타 집이야?'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문 앞에 작게 붙은 '일미양행'이 적힌 단 두 장의 종이가 이곳이 식당임을 말해준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 한 번의 반전을 경험할 수 있다. 허름한 외관과 전혀 상반되는 세련된 내부 인테리어는 양식당과 한층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미양행의 김동준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 했다는 가게 내부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빈티지한 가구들로 가득하다. 

간판 없는 맛집으로 통한다는 '일미양행' 입구 모습.
간판 없는 맛집으로 통한다는 '일미양행' 입구 모습.

김 대표는 이탈리안 정통 레시피를 따르는 식당인 만큼 빈티지 클래식을 콘셉트로 잡고, 3년 전부터 모아온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을 가게 곳곳에 배치했다. 천장에는 등이 하나도 없는 점도 이색적이다. 커튼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미는 자연광과 테이블 위의 스탠드 불빛만을 이용한 가게 내부는 더욱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자리에 앉은 후 주문을 하려고 하면 테이블 위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이 편지는 다름 아닌 메뉴판. 편지 봉투를 열어 메뉴를 고른 후 디너벨을 흔들면 비로소 주문이 완료된다. 이처럼 일미양행에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과정 속에서 독특한 아이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일미양행은 '개성'과 '음식 맛'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해 노력한다. 음식 맛을 위해 김 대표가 고집하는 것 중 하나는 생면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매일 직접 제면실에서 당일 요리에 쓰일 생면을 제조한다.

일미양행의 김동준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한 가게 내부 모습.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진 내부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미양행의 김동준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한 가게 내부 모습.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진 내부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에게 수고로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요즘은 맛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이 워낙 많은데 그 식당들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누가 이곳까지 찾아와서 파스타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꾸덕꾸덕하고 크림이 가득한 종류의 파스타에는 생면이 어울리고, 올리브 파스타의 경우에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과 톡톡 끊기는 식감이 어울린다. 파스타마다 어울리는 면이 따로 있기에 맛을 위해서라면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앞으로 계속 직접 면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곳의 주력 메뉴로 생면으로 만든 '라자녜'와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를 꼽았다. '라자녜'는 볼로냐 지방에서 나오는 전통 잔치 음식으로 생면 반죽을 얇게 밀어 넓적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파스타다. 베사멜 소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갈아 넣은 소스와 더불어 속 재료를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든 음식으로 진한 풍미를 자랑한다.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는 건면 링귀네에 엔초비, 케이퍼가 가미된다. 그 위에 구운 오징어가 통째로 올라가 있어 식감을 자극하는 비주얼로도 손색이 없다. 

김 대표가 매일 직접 생면을 제조해 만든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와 '라자녜'.
김 대표가 매일 직접 생면을 제조해 만든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와 '라자녜'.

이와 함께 곁들이는 샐러드로는 '카프레제'가 제격이다. '카프레제'는 반 건조 방울토마토와 바질패스토, 생 모차렐라가 함께 올라가 상큼한 맛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구운 버섯과 콜리플라워가 들어간 '세이지 버터, 클래식 알프레도', 냉압착 올리브유로 요리한 '알리오 에 올리오', 얇게 저민 검은 송로버섯과 달걀노른자를 곁들인 '검은 송로버섯, 타야린' 등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후식으로 제공되는 칼라만시차와 연잎차는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파스타의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 위치: 울산 남구 삼산로 125번길 24
△ 메뉴: 기본 토마토 파스타(1만 5,000원), 통 오징어 엔초비 파스타(1만 7,000원), 라자녜(1만 9,000원), 검은 송로버섯·타야린 파스타(2만 원), 카프레제(1만 원) 등
△ 영업시간: 12:00~21:30(브레이크 타임 15:00~17:00) 재료 소진 시 일찍 마감. 

 

[김동준 대표 인터뷰]

"손님에 부끄럽지 않은 음식 대접하고 싶어요"
 

김동준 대표가 제면실에서 직접 만든 라자녜 생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동준 대표가 제면실에서 직접 만든 라자녜 생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일미양행 김동준(34) 대표의 이력은 조금 남다르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그는 울산에서 자란 청년답게 조선소에서도 일을 했었지만 경쟁하고 다투는 직장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고 한다.

그 이후 의식주에 가까운 일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운지 6년, 서비스업에 발을 들인지는 어느덧 7~8년이 흘렀다.

그는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 대한 도전이었지만 요리가 적성에 잘 맞았다. 요리를 할 때는 '부끄럽게 살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되새기며 좋은 제품들을 사용해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전공에 조선소 근무 이색 이력
직원과 협업 메뉴 하나도 정성껏 만들어


이탈리안 식당을 열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프랜차이즈 업종에서 일하며 처음 접했던 음식이 양식이었다. 그곳에서 배우고 공부하며 잘못된 레시피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아가며 정통에 가까운 이탈리안 요리들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나이에 요식업에 발을 들이면서 느낀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요리를 하고 싶어서 업장을 열었지만 다른 부가적 부분들이 우선 충족이 돼야 요리를 할 수 있음을 최근 들어 느낀다. 요리를 하기 위해선 사람을 써야 하고 그에 따른 과정을 컨트롤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더라"며 "음식을 만들 때는 협업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통해 한 가지 음식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진다는 것을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쉐프로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이탈리안 음식은 코스가 기본이다. 현재 약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코스요리를 앞으로는 좀 더 밀도있게 구성해 이런 요리가 세상에 있고, 이런 식으로 먹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서양으로 향한다는 의미의 '양행(洋行)'이라는 가게 이름처럼 무역을 하듯 음식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글=강현주기자 uskhj@ / 사진=노윤서기자 usn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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