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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 이후 공중파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의 북한 콘텐츠가 풍성해졌다. 모 방송사는 '두도시 이야기'라는 특집프로를 3차례에 걸쳐 소개하며 평양의 달라진 홍보물을 추석 특집으로 방영했고 공중파는 음식과 문화재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북한 관련 콘텐츠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KBS가 방영한 '남북은 없다, 여우와 두루미'라는 다큐였다. 1990년대 후반 북한에 닥친 식량난으로 두루미들은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를 자신들의 피난처로 택했다. 우리말의 두루미는 바로 학이다.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으로 사람이 아닌 야생동식물에게 지구상에 둘도 없는 천혜의 서식처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지구상에 3,000여마리만 남아 있는 두루미 중 1,200여마리가 비무장지대에서 월동을 한다는 사실은 심장을 뛰게 한다. 

학은 시베리아 극동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두루미 루트를 통해 남북을 오가며 겨울 장관을 연출하는 한반도의 새다. 한 때 수천마리의 군락지가 북한의 안변부터 남쪽의 울산까지 광활하게 펼쳐졌지만 이제 그 영역은 비무장지대로 국한된 상황이다. 지금도 겨울이면 강원 철원에만 900여마리의 학이 월동한다. 물론 이곳에 월동하는 학은 울산에서 이야기하는 이마에 붉은 문양을 한 단정학도 있지만 재두루미를 비롯한 쇠기러기 등이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철원 일대 비무장지대가 철새의 낙원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이후 북한에서 날아온 '탈북 두루미들'이 철원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철원에서 북쪽으로 70㎞가량 떨어진 함경남도 안변에 넓은 들판이 있는데, 그곳이 북한의 대표적인 두루미 월동지로 북한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곳이었다. 천혜의 서식지였던 안변의 환경이 북한 사정으로 바뀌면서 두루미들은 삶의 터전을 철원 비무장지대로 옮겼다고 한다. 국제두루미재단은 북한과 협력해 한반도 최대 두루미 서식지였던 북한의 안변평야에 두루미를 돌아오게 하는 '안변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북한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루미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두루미 즉, 학이 한반도를 상징하는 문화 원류이자 한국인의 문화유전인자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에서는 학을 '흰두루미'로 부르며 명승지, 천연기념물 보호법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두루미를 천연기념물 202호, 재두루미를 203호로 각각 지정하고 있는데, 북한은 두 종류의 두루미와 더불어 서식지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황해도 룡연과 함경남도 안변이 대표적이다.

남북의 정상이 악수와 포옹을 하며 경제관련 각종 협력을 문서화했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문화교류다. 문화는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결정적인 연결고리다. 문화관련 남북교류 콘텐츠도 여러 가지가 추진되고 있다. 공연과 전시 문화재발굴 등 많은 사업이 속도를 낼 태세다. 바로 지금이 울산으로서는 호기다. 다른 지역에서 따라할 수 없는 학 문화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철원이나 일본 오카야마 등으로 내몰린 학이지만 원래 동아시아의 학은 울산에서 꽃을 피운 생태인문학의 소재였다. 

울산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울산의 곳곳에서 울산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구대암각화이고 선사문화 1번지인 대곡천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울산은 동쪽 무룡산부터 서쪽 문수산까지 한반도의 광활한 산자락이 동해로 뻗어가는 종착지다. 그 산세에 굽이친 다섯자락의 강이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가히 비경이다. 경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울산은 원시시대부터 온갖 식생의 보고가 될 자산을 갖춘 셈이다. 그 흔적이 공룡발자국과 고래유적, 학과 관련한 것으로 전설로 남아 이 땅이 예사로운 곳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다. 

실제로 울산은 오래전부터 학이라는 신성시된 새의 영역이었다. 학성부터 무학산, 회학, 회남, 학남리, 무학들, 비학 등 학과 관련한 지명이 무수하다. 아마도 오래전 울산은 태화강, 회야강, 외황강이 동해로 흘러가며 늪지가 발달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학이 삶의 터전을 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그 많던 학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오랜 학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온전한 학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연어가 돌아오고 조개섬 일대에 바지락이 살아나고 있지만 학은 여전히 무소식이다. 바로 그 학을 새롭게 주목하고 울산 대표 브랜드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니 참으로 반갑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북방교류의 연을 맺고 북한의 개방에 맞춰 북방교역의 중심항이 되겠다는 포부는 울산의 경제적 북방사업이다. 이와함께 북한 안변과 울산을 잇는 학의 복원 문제는 문화생태, 아니 인문학적 남북교류의 핵심이다. 학이 도시 탄생의 설화로 자리하고 학 문화가 하나의 콘텐츠로 이어지는 도시는 울산이 거의 유일하다. 송철호 시장이 취임 이후 남다르게 학을 복원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반가운 일이다. 학의 복원은 생태관광의 중심에 결정적인 콘텐츠를 담을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남북교류의 인문학적 접근에 울산이 중심이 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울산은 학과 관련한 설화와 지명, 수많은 이야기는 물론, 다른 곳에는 없는 학춤이 있다. 송철호 시장이 학 복원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다면 여기서부터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교류와 북방교류의 또다른 루트를 만들어야 기초가 튼튼해 질 수 있다. 모든 소통의 바탕에는 결국 문화가 그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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