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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 입장을 고수해 온 대법원이 14년 만에 '무죄' 취지로 판례를 변경했다.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 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로 병역 거부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사에서 병역 거부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기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종교적 병역거부자는 북아프리카 출신 로마 군인 '막시밀리아누스'다. 서기 296년 21세에 징집된 그는 황제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하다 참수형에 처해졌다. 훗날 가톨릭 성인으로 추존됐다.

우리나라에서 병역 거부와 관련해 주목받는 종교 집단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187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성서 연구 모임에서 시작됐다. 명백히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부분만 아니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공식적인 병역거부 기록은 1939년 6월 일제강점기에 나와 있다. 당시 조선을 강제 점거했던 일제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을 구속했다. 이른바 '등대사 사건'이다. 구속된 사람 중에서 5명이 옥사했고 33명은 해방 후에야 석방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한국전쟁을 거치며 징병제가 도입되자 재림교회와 여호와의 증인 등의 신도들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 처벌받았다.

1970년대 유신 체제가 들어서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강해졌다. 병역거부자는 체포되어 강제 입영됐으며, 훈련소에서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하면 항명죄로 처벌받았다. 참고로 근대적 헌법 체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상 권리로 명문화한 최초의 사례는 17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헌법 제8조다. 해당 조항은 "집총을 하는 것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대체복무를 하려 한다면 집총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사실상 퀘이커교를 위한 것으로, 이때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권은 특정 종교의 권리로만 한정되어 인정받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도덕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1916년 영국을 시작으로 1917년 덴마크, 1922년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에서 대체 복무제가 도입됐다. 그 이후 프랑스와 벨기에, 스위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여러 유럽 국가가 1920~30년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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