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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사용중지명령이 지켜지지 아니하거나 위험상태가 해제·개선되지 아니하였다고 판단될 때 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중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산업현장에서는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실상 무조건 작업을 중지한다. 기업 경영측면에서는 작업중지권 발동이 적지 않은 생산차질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한 해당 사업장에 대한 작업중지 조치 때문에 영세한 타 사업장으로까지 영향을 끼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 산업계가 울상이다.

# 업무 유사성 있으면 다른 공장도 적용
작년 10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1공장에서 고무원단 적재 작업을 하던 중 컨베이어 벨트에서 끊어진 고무를 끄집어 내다가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7일 동안 조업이 중단됐다. 특히 1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업무 유사성을 이유로 2,3,4공장까지 작업이 금지됐다.

올해 4월에는 울산 소재 자동차 납품업체에서 장비사고로 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생기자 15일간 생산이 중단된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지난달 29일 CJ대한통운택배 대전물류센터에서 작업자 사망사고로 아직까지 택배업무가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재해 사망사건으로 조업이 중지되는 사태가 흔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하다 싶은 작업중지 조치가 제조업의 생산 생태계를 훼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우리 제조업의 납품구조 특성으로 인해 1차 업체에 대한 작업중지권이 발동될 경우 2,3차 업체까지 조업이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 업계, 안전관리 책임 과도한 확장 반발
자동차업종 2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얼마 전 1차 부품업체 사망사고로 우리까지 수일 간 납품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큰 피해를 봤다"며 "최소한 산업재해 사고와 전혀 무관한 곳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일은 없도록 정부 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토로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최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 현재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번 개정안은 중대재해 발생 시 장관이 작업중지 가능, 도급 기업이 2·3차 수급업체까지 안전·보건 조치 책임, 유해한 작업 도급 금지 등 이전 법보다 기업에게 더욱 불리한 조치를 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과도하게 확장시킨 것으로 국내생산활동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는 조치"라고 하소연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6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했다.

# 대다수 선진국, 사업장 전체 적용 안 해
선진국은 중대재해를 이유만으로 사업장 전체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일본·영국 등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또는 위험한 법 위반을 즉시 해소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 위험 또는 법 위반과 관련된 작업에 대해서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장 전체에 대한 작업중지 기준을 법률에 규정하거나 실제 사업장에 적용 중인 외국입법 사례는 없다. 전문가들은 사전예방 측면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산업안전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져 산업재해를 사전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관련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영세사업장은 대행기관에 의뢰해 현장점검을 실시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산업안전 전문교육, 작업조건 개선을 위한 사전점검 강화, 관련 기술지도, 비용지원 등 사전에 산업재해를 방지하는 정책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고 발생 후의 처벌이나 관리감독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작업중지권 발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산업환경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지혁기자 usk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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