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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섭성을 가진 쥐는 한치 앞 밖에 보지 못한다. 게다가 농경사회의 보물 1호인 곡식의 씨앗을 생존 수단으로 이용해 인간의 적이 됐다. 이 때문에 쥐는 대체로 나쁜 의미의 관용어와 대체어로 사용됐다. 쥐새끼라는 말도 그래서 여전히 인간을 비하하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동물의 행위 등에 빗대 뭔가를 설명하는 한자 단어는 많다. 낭자(狼藉)도 그 하나다. 늑대(狼)는 대개 조그만 동굴에 보금자리를 튼다. 보통 마른 풀을 밑에 깐(藉) 뒤 생활한다. '낭자'는 원래 늑대가 웅크리고 있던, 엉클어진 자리다. 수달(水獺)은 욕심이 많다는 혐의를 받았다. 잡은 물고기를 물가 바위 위에 늘어놓는 버릇이 있어서다. 수달이 제사를 지낸다고 본 사람들은 급기야 獺祭(달제)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은 욕심을 가진자가 벌이는 행위를 빗댄 어휘다. 

쥐도 사람들의 입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상한 기척을 감지해 냉큼 구멍으로 파고드는 쥐의 행위는 '서찬(鼠竄)'이다. 머리를 부여잡고 구멍으로 내빼는 쥐의 모습은 포두서찬(抱頭鼠竄)이다. 형편없이 체면을 구기고 도망치는 사람이다. 서목촌광(鼠目寸光)이라고 적어 바로 제 앞만 보는 짧은 안목을 가리킨다. 

바로 이런 쥐의 잽싸고 빠른 능력을 포착해 인간으로 의인화한 경우도 많았다. 서생원(鼠生員)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인간이다. 서생원은 조선시대 소과에 합격한 자를 불렀던 벼슬의 하나인 생원에 쥐를 합친 말로 깜냥은 안되지만 한 고을의 윗사람으로 제법 흉내를 내는 이를 비꼬아 부른 별칭이다. 느닷없이 쥐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가 싶겠지만 요즘 정치판에 한치 앞을 못보는 서생원들이 많아서 쥐 이야기로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이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분주하다. 당권 주자들이 울산을 전략지로 보고 초반부터 발걸음이 잦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스스로 심판직을 걷어차고 대표에 나설까 말까로 흔들리더니 불출마의 대못을 쳤다. 그리곤 곧바로 당권주자로 나선 이들을 하나씩 평가하기 시작했다. 황교안 오세훈, 홍준표 세사람을 향한 발언이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분, 또 나올 명분이 크지 않은 분들의 당대표 출마가 예상된다"며 "당이 겪어야 했던 혼란의 원인을 제공하고, 어려움을 방관하며 기여도가 없던 분들이 당권행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비대위원장의 작심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특별히 황교안 전 총리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도 내놨다. 김 위원장은 "황 전 총리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걱정이 많다"며 "친박 프레임, 탄핵 프레임이 있고 이로인한 계파 프레임도 사라질 가능성이 작다"며 "이런 프레임은 2020년 총선을 공세가 아닌 수세로 치르게 할 가능성을 키운다"고 강조했다. 황 전 총리가 당 대표가 될 경우 내년 총선 참패가 될 것이라는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다른 주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오세훈 전 시장의 문제점 역시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고, 홍 전 대표도 당원들이 다 알고 있다"며 "당 대표로 당선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뒤에 오는 역사적 소명을 어떻게 감당할 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병준의 이야기가 공감을 얻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스스로 어떤 반성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박근혜라는 이름 앞에 환호하고 열망하고 경외감까지 느꼈던 자들이 박근혜 탄핵이라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 앞에서는 외면하고 방관하고 회피하며 손가락질까지 했다. 김병준의 발언은 그런 자들이 얼굴 빛은 그대로인채 옷만 갈아 입고 눈알을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황교안을 보자. 박근혜와 한배였던 그는 탄핵 이후 대통령직무대행을 한 사람이다. 나는 그와 다르다는 듯 입술 꾹 깨물고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국정농단의 중심에 책임자로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무총리가 누구였는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너무나 잘알고 있다. 

그가 스스로 자백한 것처럼 '지금 이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요, 누구 하나 살 만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그가 할 말은 아니다. 지금 이나라의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자, 촛불혁명이 광화문을 삼키고 청와대 주인을 바꿔놓은 일의 최전선에 있었던 자가 할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수구보수의 대명사로 대검찰청 공안과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지낸 공안검사,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그리고 박근혜 탄핵 후 5개월간 대통령권한대행까지 지낸 그의 이력은 그의 삶이 보수의 바리케이트 속에서 얼마나 편안한 삶이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무엇보다 명확하지 않은 병역면제 의혹에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수사방해, 세금 탈루, 편법 증여,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등 한 시대의 리더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보기 어려운 인물이 바로 그다. 정치에 뜻이 없다는 듯한 발언을 할 때만 해도 스스로의 깜냥을 잘 아는 인사라는 평가도 있엇지만 이제 그런 눈빛은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들이 그들두고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인용해 야권의 유력 잠룡으로 분류하자 눈빛이 달라지고 넥타이 색깔도 자주 바꾸는 듯하다.

두번째 인물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수의 옷을 태워버리고 탈당한 지 1년 10개월 만이다. 오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입당 환영식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민 앞에 반성문을 써도 부족할 판에 '20년 집권론'을 입에 올리고 있다"며 "이는 야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입당과 함께 과거 정치 행보에 대해 사과했다. 우선 2011년 서울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해 결과적으로 안철수 전 의원의 등장과 보수 몰락을 본격화했다는 '원죄론'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정치 행보로 보수 우파의 가치를 지지하는 분들께 많은 심려를 끼쳤다"고 했다. 

새누리당 탈당에 대해서도 "당시 해외에 체류 중이던 후보(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고 그분을 중심으로 '해볼 만한 대선을 만들어 보자'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치 실험에 대해 머리 숙여 반성한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다시 해석해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이 살기 위해 정치적 변신을 꾀했다는 이야기다. 이제 자유한국당에서 살만하니까 다시 돌아와 아랫목에 적당한 지분을 행사하겠다는 게 진실이다. 

마지막 인물은 홍준표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는 궤멸수준에 이른 보수우파를 막말과 거친 입담으로 800만 표에 육박하는 표를 끌어모아 숨통을 열어놨다. 득표율이 24%로 안철수를 제치고 2위였다. 박근혜의 끝없는 추락을 목격하는 시기에 대부분의 보수우파들이 안방으로 기어들어간 시점이었지만 홍준표의 막말 덕에 그나마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깃발을 내리지 않아도 됐다. 바로 그 부분이 여전히 그가 목소리를 높이는 명분이다. 

스스로 보수를 지켰다고 자부하는 홍 대표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착각이다. 지난 대선 때 그를 찍은 800만 표의 핵심은 반 문재인이었다. 반문의 프레임이 안철수와 유승민, 그리고 홍준표로 스펙트럼 됐지만 결과는 반문의 증좌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는 41.1%였다. 6.2%의 득표율을 보인 심상정의 득표를 합해도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탄핵 정국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구도는 절반의 함수관계를 보였던 것이 대한민국 민심의 마당이었다. 절반의 보수 민심이 갈곳을 잃었을 때 결집할 수 있는 인물이 홍준표였다는 착각은 그의 정치적 불치병이다. 탄핵정국에서 보수의 사망선고를 막았다는 그의 주장대로 그 지점이 홍준표 역할론의 마침표다. 다시 일어나 자신의 신임여부를 확인하고 싶다고 출전의 나팔을 분다면 미안하지만 나팔 소리는 엇박자로 불쾌한 소음이 되기 마련이다. 

쥐새끼들이 설친다고 곡식창고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식구가 불고 가마솥에 불을 떼야 곡식창고가 열리고 밥 짓는 냄새도 천지에 진동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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