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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위기다. 출범 초기 경이로운 지지율을 보이며 촛불정권의 위력을 과시해온 기세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지난주 여론조사는 여전히 40% 중반을 기록하고 있지만 촛불로 일으킨 정부의 지지율이 40% 중반을 턱걸이하는 것은 분명 위기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44%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자체 조사결과 역대 최저치인 45.0%로 집계됐다. 여권은 여전히 아직까지 다른 정부에 비해 지지율이 높은 편이라 자위하지만 눈동자 굴리는 소리는 요란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이처럼 곤두박질치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 파탄이 가장 큰 요인이다. 거기에다 위기 때마다 효자 노릇을 해준 남북관계와 북·미회담의 스텝이 꼬이고 있는 것은 확실히 부담이다. 

# 文정부 '효자' 남북관계 연이은 악재
또 다른 악재도 계속 터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참수(decapitation) 공격'에 대비해 핵과 미사일 시설을 민간 시설에 분산하고, 북쪽 국경지대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며 관련 자료를 내놨다. 이는 지난해 비핵화 대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 및 은폐 활동을 벌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회원국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북쪽 국경지대 근처에 ICBM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통보했다. 보고서는 CNN이 ICBM 기지로 지목한 양강도 회정리 미사일 기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남북이 회담을 벌이고 악수를 나누며 철도건설 등 실무회담을 이어갈 시기에 뒤로는 핵개발을 계속했다는 증좌는 '북한의 수석대변인' 발언보다 더 우려스러운 일이 됐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새로 선보인 3기 내각 명단이다. 이 가운데 압권은 통일부 장관 후보자다. 7개 장관의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 일부 인사의 파렴치한 행적이 드러났지만 그 정도는 어느 정권이나 있어왔던 도덕적 흠결이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3채의 집을 가진 국토부 장관이나 세금은 안 내고 버티면 된다는 식의 의식을 가진 중기부 장관의 가족문제는 '우리만 그렇나 뭐!'하며 얼굴 한 번 붉히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역대 정부 어느 장관 후보자든 도덕적 문제에서 흠결이 없었던 이는 거의 손을 꼽을 정도다. 그러니 개각 때마다 뉴스를 통해 새 인물을 접하는 국민들의 기대치도 낮다. 그놈이 그놈이니 그래도 일 잘하는 쪽이면 봐주자는 식의 암묵적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는 평론가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암묵적 동의는 인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새로운 인물이나 흠결 없는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택지를 넓히지 않는 안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장관 지명이 예상되자 살던 집을 딸에게 증여하고 얼른 월세 계약서를 만든 아비가 주택정책을 좌우하는 주무 장관 후보자이거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세금 안내는 게 기본이라는 자세로 살다가 자신이 주무 장관에 오를 듯하니 비자금 금고를 열어 남편의 체납을 정리한 장관 후보자는 그렇다 치자. 거친 입담과 너무나 가벼운 펜대로 자유분방한 '발산의 오르가즘'을 즐겼던 인사가 통일관련 업무를 주도하는 장관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바로 김연철 후보자다. 

언론은 그가 입각 명단에 오르자 가장 먼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뱉어낸 과거 발언을 문제 삼았다. 김연철 후보자는 지난 2015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5주기를 맞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군부대를 찾은 것에 대해 "군복 입고 쇼나 하고 있으니, 국민이 군대를 걱정하는 이 참담한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정치하는 분들이 좀 진지해졌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그는 2015년 하반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던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문 대통령과 당내 갈등을 겪자 "새것이라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피똥 싼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반면 그해 12월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추모 글을 올려 '젊은 지도자(김정은)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데 그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북의 '목함지뢰' 도발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김정은을 '합리적 지도자'로 평가한 셈이다. 그는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서도 "(북측 소행이라는) 심증은 가는데 (우리 정부 당국이)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 정도 발언은 애교 수준이다. 김 후보자는 보수 인사에 대해선 훨씬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 통일부장관 후보 막말논란
김 후보자는 자신의 막말성 과격 발언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자신의 SNS를 폐쇄했다. 그는 입장문을 통해 "페이스북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접근 및 해킹 우려가 있어 계정을 일시 비활성화로 돌렸다"고 했다. 이어 "대북 정책이나 남북 관계에 관한 정치 비평에서 일부 정제되지 않은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했다.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며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언행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장관이 될 것이라 생각지도 못하다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장관 지명이 된 것인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최근 그의 행적을 보면 분명 그렇진 않은 듯하다. 김 후보자는 통일연구원장으로 재임하던 최근까지 신의주 등 북한의 거점개발 지역 7곳의 구체적인 개발 청사진을 마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북측에 제시할 남북 경협 프로젝트라는 설이 유력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통일연구원장에 취임한 김 후보자는 핵 포기 시 북한의 번영된 미래상을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신의주, 원산, 청진, 남포, 함흥, 삼지연, 양덕 등 7곳을 거점개발 지역으로 정하고 개발안을 만들었다. 올 하반기(7∼12월) 김정은에게 직접 시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통일론으로 밥을 먹고 사는 이들이 유난히 많은 대한민국이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엔 그 양상이 조금 변하고 있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성균관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정치외교학)를 했고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시작으로 2002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08년 인제대 교수 등을 지냈다.

꾸준히 현실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서 2004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시작으로 2007년 정동영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했고, 2017년 대선엔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단순한 통일 문제보다는 북한의 개방을 위한 다양한 접근법이 통일문제에 주류가 됐다는 분석이다. 바로 그 흐름에 김 후보자는 적임자이고 그를 골라 통일부 장관에 앉히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게 학계 진단이다. 

문제는 그가 뱉어낸 숱한 말이다. 폴리페서의 전형인 그가 수없이 날린 SNS는 결국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갈증을 보여준 셈이다. 반응이 없으면 더 센 말로 입술을 벌겋게 달궜고 그 결과가 피아를 막론하고 공격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마구잡이식 '관종(관심종자)'이 된 셈이다. 

흔히 인사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개과불린(改過不吝)을 지적한다.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다. 치자의 경전인 서경에 나오는 경구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고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내가 하는 일에 왜 말이 많으냐고 외치면 비판의 목소리는 비아냥과 모독으로 꼬꾸라질 수 있다.

청문회를 벼르며 검증을 이야기하지만 우스운 소리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문회는 그냥 통과의례일 뿐이다. 아직 여당에 익숙하지 않은 민주당과 여전히 야당이 불편한 한국당이 서로 삿대질만 하는 국회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여론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통일부 수장의 앞날이, 아니 대한민국 통일 정책의 앞날이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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