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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지난 2010년이다. 그 당시 문화재청은 늦어도 2017년까지는 세계유산에 정식으로 등재신청을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 당시 잠정목록에 올린 이름이 '대곡천 암각화군'이다. 2017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갔고, 정식 등재신청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잊어버렸다.

물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다녀갔고 문화유산 보존이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점은 지난 7년간의 논쟁으로 그동안 뉴스의 뒷자락에 있던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가 전면으로 부각됐다는 점이다. 뉴스의 노출이 잦다 보니 왠만해서는 반구대 암각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국민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관심도 높아졌다. 

문제는 슬그머니 정식 등재를 포기한 문화재청의 태도다. 등재를 장담하던 문화재청이 스스로 등재를 포기한 것은 바로 첫 단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지금 문화재청의 수장인 정재숙 청장은 문화부 기자 출신이다. 그가 문화부 기자 시절에 문화재청은 등재신청을 장담했고 이를 취재했던 이가 지금의 청장이다. 

그는 문화재청장 취임 직전 반구대 암각화와 관련한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세계유산 평가와 감시 전문가이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프로젝트 자문위원으로 일하는 알프레도 콘티씨와 가진 인터뷰였다. 

그 기사를 통해 정 기자는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인 모두의 지속적 관심과 책임 의식이 관건"이라고 적었다. 콘티씨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당시 기자의 입장도 암묵적인 공감을 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콘티는 현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부회장으로 반구대 암각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콘티씨는 몇 차례 반구대 암각화 문제에 대해 국내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그가 밝힌 반구대 암각화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 바로 지속가능한 보존이었다. 물론 보존의 핵심은 반구대 암각화였다. 인류문화사에 절대적이고 독보적인 가치를 가진 반구대암각화를 두고 느닷없이 '대곡천 암각화군'을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린 일은 두고두고 비난을 받을 실착이다.

콘티의 말처럼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의식이 있기에 지난 10여 년 동안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시민들의 보존대상 1호가 됐다. 사연댐의 수위를 조절해가면서 침수를 방지했고 대안이 나올 때까지 낙동강 물을 기꺼이 마시며 보존대책을 기다렸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주변 경관의 보존으로 연결하는 착오에 있다. 누군가는 반구대 암각화를 두고 암각화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변 경관과 연결해야 온전한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묻고 싶다. 세계의 어떤 문화유산이 자연경관과 패키지로 묶여 유네스코의 심사를 받았는지 증명해달라. 어떤 문화유산이 자연경관과 혼용돼 가치를 훼손당하고 있는지 열거해 달라. 답을 못한다면 입을 닫기 바란다. 인류사에 독보적인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생활과 함께해 왔다. 그래서 건축물이든 벽화든 그림이든 조각이든 인위적인 인공 구조물과 공존하는 문화유산이 거의 대부분이다. 

현재 세계 문화유산은 670여 건이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고 관리되고 있다. 이 670건 가운데 상당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 문화유산의 등재 기준을 몇 가지로 제한한다. 그 첫째가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 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 내에서 건축, 기념물 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 예술 또는 인간 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특히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은 등재의 우선순위라고 밝히고 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알타미라 동굴벽화 등이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유산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의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최고의 유산이다. 그런데 등재는 안 된다고 한다. 암각화군은 대곡천이라는 자연경관과 연결돼 원형 보존이 조건이란다. 답답할 노릇이다. 

연해주의 사카치아랸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스웨덴 타눔, 아프리카 나미비아, 탄자니아 콘도, 아르헨티나 리오 핀투라스 등 모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암각화다. 모두 나름대로 보존이 잘 된 암각화지만 훼손 상태가 심각한 곳도 있다. 특히 관광지화된 암각화는 비록 물에 잠기는 곳은 없지만 인위적인 탐조 시설이 들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암석과 현대의 인공미를 연결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 어느 곳도 자연경관이 원형 보존된 곳이라야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이미 인류는 1만 년 이상의 문화적 족적을 남겼고 그 세월만큼 인류의 인위적 흔적이 문화유산과 혼재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울산에서만 유독 자연경관과 반구대 암각화를 연결하고 스스로 원형 보존이라는 이상하고 괴팍한 올가미를 덮어씌우고 있다. 어쩌면 이 올가미는 우리 문화재청이 공을 들여 제작했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울산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박물관이 앞장을 섰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대곡천 암각화(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본격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내년 1월 심의 통과를 목표로 올해 연말까지 문화재청에 우선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아마도 최근 일련의 지원사격이 힘이 된 모양이다.

울산시의 시정을 자문한다는 미래비전위원회가 '사연댐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고, 대곡천 암각화군 유네스코 등재 시민모임이라는 단체는 미래비전위원회가 제안한 대곡천 없애기를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가 애정을 가진 의견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본질이다. 반구대 암각화 문제는 본질을 제대로 알고 순서를 정해 해결해 나가야 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의 성과를 위해 반구대 암각화 자체가 아닌 암각화군을 등재목록으로 정했고 그 첫 단추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금이라도 등재 목록의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 스스로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도 자백해야 한다. 무수한 탁본 허가와 학술조사를 빌미로 한 타공 허가는 문화재청의 치명적 오판이다. 그 수많은 착오를 덮기 위해 원형보존을 고수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쩌면 한번 정한 암각화 군의 목록 확대를 수정하는 것 자체가 학자들이 모인 문화재위원의 위신에 흠집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모두가 순차적으로 풀릴 일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등재하고 난 뒤 암각화군과 대곡천 일대를 선사 문화 1번지로 만들어가면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규모도 더욱 확장성을 갖게 된다. 

지금 반구대 암각화는 수위조절 때문에 대부분 육상에 노출돼 있다. 수위조절을 해도 울산시민들의 식수는 문제가 없다는 일부의 막돼먹은 학자나 운동가들의 입 때문에 물속에 잠기도록 내버려 두자는 의견도 있지만 어리석은 자들의 말은 그냥 소음일 뿐이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를 물속에 잠기게 한 원인 제공자는 정부였다는 사실이다. 원인 제공을 한 정부가 대책을 외면하는 마당에 문화재청이 원형 보존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주문처럼 외고 있는 상황이다. 

농담처럼 이야기한 댐을 허물자는 말이 이제는 완전히 하나의 문장이 되고 거침없는 동사가 문장을 움직이는 상황이다. 정말 이러다가 곡괭이를 들고 사연댐으로 향할 기세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고민 없이 우선 질러보자는 식의 등재작업은 위험하다. 본질은 보존이지 등재가 아닌데 앞뒤를 혼돈하는 무리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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