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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세영 울산시의회 의장이 “현대중공업 물적분할(법적분할) 이후 한국조선해양이 서울로 가는 것을 막겠다"며 삭발했다. 송 시장은 “현대중공업의 본사는 조선 산업의 종가(宗家)인 울산에 있어야 한다"며 “현대중공업은 반세기를 함께한 울산을 외면하지 말고, 본사 울산 존치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직 광역단체장의 삭발 투쟁이 보도를 통해 나가자 지방정부의 수장이 가진 결기가 느껴진다는 반응과 중재에 나서야 할 위치에 있는 시장이 투쟁에 동참해 난감하다는 반응이 뒤섞이고 있다.


삭발은 결의의 상징이다. 삭발하면 불교의 스님이 연상되듯 사실 삭발의 기원은 종교에 있다. 삭발은 그리스인들과 셈족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자른 머리카락을 신에게 바쳤다. 삭발하는 머리모양은 아마도 밀어버린 노예의 머리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노예와 같은 맥락에서 삭발은 신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된 삭발식의 전통은 이후 7세기까지 가톨릭교회에서는 일상적인 일로 행해졌다. 불교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승려로 입문하는 의식을 치를 때 삭발을 하며, 그 후에 자격을 제대로 갖춘 승려가 될 때 다시 삭발식을 거행한다.


삭발이 투쟁의 대상이 된 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문화에 깔린 유교사상과 관련이 깊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는 受之父母)를 의식처럼 듣고자란 우리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목을 자르는 행위와 같은 결의의 상징이었다. 단적인 예로 조선 말 개화파들은 근대화와 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을 단행하자 유생들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많은 선비들이 “손발을 자를 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했고, 면암 최익현은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단발령은 의병의 봉기를 알렸고 결국 전국적인 봉기가 행해졌다. 결국 단발령을 주도한 김홍집 등은 피살되고 단발령은 결국 철회됐다.


일부에서는 삭발은 군국주의 시대 일본 군인이나 야쿠자들이 쓰는 결의의 방식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모든 사사로운 관계를 끊고 오직 '일왕'과 '조직'에만 충성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 삭발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삭발로 결의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결의가 더 일반적이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러 떠나기 전에 삭발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잘라 결의를 다졌다.


삭발은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자른 머리카락을 팔아서 급전을 마련하는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는 주인공 델라가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려고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작은 아씨들에서는 주인공 조의 아버지가 외지에서 병으로 쓰러져 어머니가 급히 찾아가야 하는데 여비가 없어서 조가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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