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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찾았다.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방북했다는 그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조선 동지들과 함께 중조(중북)친선협조관계를 설계하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려고 한다"는 평양 방문 목적을 밝혔다. 시 주석의 이번 평양 방문은 두 번째다. 지난 2008년 평양을 찾았지만 당시에는 부주석 신분이었다. 19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시 주석의 아버지는 혁명 원로로 부총리였던 시중쉰이다. 막강한 집안의 자손인 셈이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섬서성의 토착 공산주의자로 류즈단(劉志丹)과 함께 해방구를 건설했다.


그 이후 공산당 지도부가 대장정으로 섬서성으로 피신해오자,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은 혁명의 새로운 근거지를 건설했다는 공로로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62년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으로 시중쉰이 펑더화이파로 몰려서 반당(反黨) 집단의 낙인 찍히면서 시 주석의 순탄한 삶은 마감됐다. 당시 9살이던 시진핑은 아버지를 따라 산시 성 시골로 추방되어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시진핑은 이 때부터 토굴에서 7년간 힘겹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아버지가 전처와 낳은 이복 맏누나 시허핑(習和平)은 '반동의 딸'로 찍혀 홍위병에게 두들겨 맞고 자살했다.


오랜시간의 하방생활을 통해 새로운 가치간을 만든 시진핑은 8차례 시도 만에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했고, 10차례 이상 시도한 끝에 공산당에도 입당했다. 그는 7년 동안의 하방 생활에 대해 군중을 이해했고 자신감을 키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시진핑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1997년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다. 이 무대에서 시진핑은 중앙위 후보위원에 당선됐다. 순위는 151명 가운데 151위, 꼴찌였다.


그런 그가 불과 10여년 만에 4대천황으로 불리는 리커창, 리위안차오, 보시라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낮은 곳에서부터 권력을 키워온 야심찬 지방관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진핑이 영구집권을 시도한 2018년부터 중국의 몰락은 시작됐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중국 역대 통일 왕조의 평균 수명은 대략 200년 내외라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은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통일왕국 역사가 극도로 짧았던 진과 수 원 외 전한과 후한,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은 모두가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년이란 역사 속에서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는데 그 패턴 역시 대략 비슷하다. 건국 후 100년 동안은 발전을 이후 100년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했다. 200년 반복 룰을 적용해 보면 2020년쯤 중국 공산당 역사상 최대 황금기로 말기엔 모두가 영구집권 유혹에 넘어갔다는 속성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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