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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차량 접촉이 있었는데, 상대편 차주와 1시 30분에 정비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가서 좀 만나서 해결해 주라"고 한다. 다짜고짜 하는 말에 시간을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급히 밥을 먹고 차를 몰고 정비소로 갔다. 차량 사고는 아내도 처음이라 무척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나도 그런 일은 처음이라 괜히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이런 장면을 분명 어디선가 만난 것 같아 생각을 해 보니 저 밑에서 가물가물 연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기억이 났다.


십여 년 전 중국어를 공부할 때 서점에서 만난 책으로 제목이 『정채한문신독(精彩韓文晨讀)』이었는데 그 속에 '가장 소중한 것(最珍貴的)'이란 제목의 짧은 글을 만나 마음에 들어 가지고 있는데 글의 내용은 이렇다. '출근길에 옆 차가 바짝 붙어 내 차 문짝을 긁었다. 운전을 하던 부인이 내리더니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미안합니다,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요. 변상 해 드릴게요"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자기 차 앞부분이 찌그러진 것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이틀 전에 산 새 차로 남편을 볼 면목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고 처리를 위한 차량서류를 꺼내기 위해 사물함을 열었다. 그 서류 속의 맨 앞장에는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여보, 만약 차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기억해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 글은 그녀의 남편이 쓴 글이었다. 그때 그 글을 읽고 나도 만약 아내가 차 사고를 내면 반드시 이처럼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결국 그날이 온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그 때 읽은 그 감동보다 조심성 없는 아내가 먼저 떠올랐다. 그동안 작은 차를 운전하다가 아들이 엄마 차를 달라고 해서 마지못해 차를 주고 중형차를 산 것이다. 이제 한 달이 막 지나고 있었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입대를 했다. 삼년이란 그 귀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면 한 가지 기술이라도 배워 와야겠다는 생각에 운전병으로 갔지만 그 힘든 운전병의 생활은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됐다.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곳에서 군용차를 운전하려면 힘든 운전연습을 해야 하고, 또한 각종 훈련은 야간에 해야 되기 때문에 가장 큰 적인 졸음과의 싸움으로 운전병을 지원한 내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제대 후 되도록 차를 몰지 않으려고 했다. 조금만 방심을 하면 사고를 내고, 사고가 나면 차가 다치는 것은 괜찮지만 내가 다치고, 다른 사람이 다치고, 더 심하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는 우리에게 좋은 점도 많지만 나쁜 것도 많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오늘날에는 차가 우리의 목숨을 좌지우지 하게 됐다.


만나기로 한 정비소에서 피해차를 보니 앞 범퍼에 살짝 접촉사고가 난 흔적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수리비용이 적어서 현금으로 처리하기로 하고 수리를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저 정도 이니까 참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나는 삼십년이 넘게 운전을 했지만 상대방의 실수로 내 차가 피해를 입은 적은 한두 번 있었지만 다행히도 사고를 낸 적이 없어 이제까지 보험처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보험처리에는 익숙하지 않다.


한 달 전 경기도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아내의 차를 같이 전해주고 돌아오면서 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에 차를 운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기에 제발 사고만 나지 말아달라고 불안에 떨 수밖에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아들은 취업을 하자마자 차가 필요하다고 차 타령을 했다. 내가 안 된다고 했지만 아내와 아들은 그들의 계획대로 실행에 옮겼다. 아내는 중형신형 차를, 아들은 첫 차가 생겼다. 외국에 있는 딸도 혼자서 차를 가지고 있으니까 가족이 전부 자기 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언제 어떤 차 사고가 날지 모른다. 다만 사고가 나지 않기를 하루하루 바랄 뿐이다.      


사고 이튿날 아내의 차도 정비를 하게 돼 결국 두 차를 보험으로 처리하게 됐다. 아내는 미안해했다. 그리고 자신의 운전 미숙을 시인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나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는데 액막이를 했다고 생각하자. 당신이 접촉사고를 냈으니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더 이상 사고는 없을 거야. 그리고 당신은 한 달이 지났는데 뭐" 라고 했다.


그날 퇴근길에 차량정체가 심했다. 평일과 다르게 차가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럴 경우는 앞에 사고가 생기는 경우뿐이라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나쁜 예측은 언제나 맞는 쪽이 많듯이 정체의 원인은 차량 사고였다. 2차선 도로라서 빨리 달리지도 못하는데 차 두 대가 길가에 부서져 있었다. 앞 차는 완전히 폐차를 해야 하고 뒷 차도 고치려면 수리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았다. 인명 피해는 알 수  없지만 참 자주 목격하는 풍경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점점 더 차를 험악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편리하고자 사용하는 차량에 우리의 목숨을 맡기며 오늘을 살아간다. 옛날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보았더라면 호환(虎患)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


매일아침 TV는 밤사이에 발생한 교통사고를 보여준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줄이는 방법도 분명히 있다. 운전을 조심하며, 운전대에 앉는 그 순간과 운전대를 놓을 때까지 결코 긴장을 멈추면 안 된다. 1분 먼저 갈려다가 내가 30년을 먼저 갈 수 있고, 남을 50년 먼저 보낼 수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최근에 음주운전에 대한 법이 더욱 강화됐다. 차 보다는 호랑이가 더 그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출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낸 당신, 당신의 남편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걱정하는 것은 차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평생 잊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안전운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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