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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궁중자수를 배운 적 있다. 일반적인 생활자수와는 달리 땀수가 매우 고우며 섬세한 작업이 특징이다. '궁수'라 불리는 궁중자수를 가르쳐 준 선생님은 국가무형문화재 80호 자수장 이수자로 40여 년의 자수 경력을 지녔으며 관련 교육에 있어 세밀한 부분까지 잘 가르쳐 준 분이다. 처음 자수를 접할 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졌으나 배운 지 1달 정도 되었을 무렵 반복적이고 극도로 섬세한 작업에 약간의 짜증과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평소 꼼꼼한 성격에 더욱 꼼꼼한 작업이 맞닿으니 뜻대로 자수가 되지 않는 점이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나의 자수를 보니 실력이 몹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본인은 40여 년을 자수를 해 왔으며 배운 지 1달이 된 실력이 이 정도면 매우 잘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수를 이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자수의 기본기와 용어를 익히고 난 뒤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이던 보자기의 일종인 '궁중상보'의 문양을 수놓게 되었다. 궁중상보의 문양은 더욱 가느다란 본견실로 얇은 비단에 세밀하게 수를 놓는 작업이다. 이 작품을 하며 자수에 본격적인 재미를 느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다음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자수를 놓다 보니 30분 정도 지났을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예상과는 달리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토록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롯이 집중하며 무아지경에 빠져 어느새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른 채 자수를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선생님께서는 정신이 집중되며 자아성찰에 도움이 되는 몰입의 과정이라고 했다. 절에서도 예로부터 이 같은 이유로 수행 과정 중 하나인 수를 놓아 공양물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이러한 몰입경험을 flow라 말하며 깊이 몰입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나아가 자신의 생각마저 잊어버리는 심리적 상태라고 했다. 

작가들은 흔히 작업을 할 때 깊게 몰입한다. 그리고 작업을 마친 후 완성된 작품을 되짚어 보면 본인이 언제 이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 과정이 자신의 생각마저 잊어버린다는 칙센트 미하이의 연구결과가 아닐까?

동양화를 하는 가까운 선배는 공필화에 가까운 세밀한 동양화 작업을 하고 있다. 공필화란 중국 북송시대 직업 화가들이 그리던 매우 치밀하게 공을 들여 그린 그림으로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기에 유입되어 중기까지 화단의 주류를 이루던 그림의 기법이다. 선배는 신들린 듯 작업에 임하며 한번 작업에 임하면 밤을 새도록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그렇게 작업했는지 새하얗게 잊어버린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그분이 오셨다'라며 자신의 작업과 몰입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에 자수를 하며 몰입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미술 평론가로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작품에서 몰입을 했다는 의미는 작가 자신이 온 정신을 다 해 집중한 결과로 깊이감과 그 노력이 엿보인다는 뜻이다. 몰입의 과정 없이 치열한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은 작업과정의 그 고통이 하나하나 전해오는 듯해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몰입이란  자발적인 즐거움이 동반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작가들이 잡념을 버리고 오직 작품에만 몰두하여 뜨겁게 몰입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앞서 언급한 칙센트 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더 행복하게 한다고 말한다. 몰입의 결과물로 나타난 작품 역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것은 불타는 열정으로 작품에 몰입하며 보람되고 충만한 즐거움의 경험이 보는 이들에게 간접적이나마 고스란히 전해져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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