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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북구 정자 해변의 문화쉼터 몽돌에 새로운 간판이 세워졌다. '그 많은 몽돌은 누가 가져갔는가' 하는 보기 드문 입간판이다. 수필가 고은희관장이 지킴이가 되고 부터 아름다운 그 해변에 어울리도록 곧잘 향기 나는 문화행사를 펼침으로서 관심을 끌더니 이제는 그 바닷가가 더욱 명소가 되고 있다. 나는 정자바다를 두고 몇 편의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 중의 시에 저명작곡가 이수인님이 아름다운 곡을 붙여 널리 불리어지고 있어 더욱 정자바다를 사랑하며 자주 찾아간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릴 적부터 눈에 익히며 한 때 신기한 돌맹이로 갖고 놀았던 몽돌의 정감이 향수처럼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으로는 정자 해변 몽돌은 1960년대 중반쯤에 그 자리에서 모두 자취를 감추어 버린 걸로 짐작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야금야금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 시내 쪽 사람들은 강동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몽돌 몇 알씩을 주워 왔고 남녀 학생들은 책가방에 몇 알씩을 넣고 오는 것이 일상의 습관이 되고 있었다. 또 갓 소녀들에게는 애장물이 되거나 아니면 장독대 또는 담장 밑에 봉선화·도라지꽃 등 꽃나무에다 깔아놓곤 했었다.


어린 우리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습관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흡사 바둑알같이 까만 몽돌을 무더기로 가져다가 집안을 장식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를 까맣게 모르는 환경의식이었다. 자연사랑이란 아예 기미조차 없었다. 이렇게 우리의 무지 속에서 한 알 두알 사라진 몽돌이 태산처럼 쌓여있다 한들 어찌 남아날 수 있었으랴.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괴로이 처절한 울음을 쏟아 놓은 나의 초기 시 속의 표현처럼 정자 바닷가의 꽃이요 울산의 보물이었던 몽돌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러나 정작 몽돌과의 이별은 딴 곳에 원인이 있었다.


전류의 흐름을 차단하는 기기나 제품을 만드는 데는 더없이 좋은 재료가 몽돌임을 알게 된 어느 브로커가 일본의 관련 사업주를 끌어 들이고 떼돈을 챙기면서 횡재를 하게 되었다는 풍문이 곧 돌아서 그것이 정설이 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조용하던 청정 마을에 불도저와 덤프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단시일에 그 많은 몽돌을 그만 씨를 말리 듯 모두 싹쓸이를 해 버렸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로 해쳐버린 백주대낮과 깊은 밤의 도둑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난당한 몽돌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임을 모른 채 눈뜬 봉사로 있었던  사람들 어느 누구도 길을 막아서며 만류하지 못했다. 해당관서 역시 그 사실을 가볍게 보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고 말았다. 아니 해당관서는 알고도 묵인하면서 한통속으로 놀아났는지 모른다. 아 슬픈 일 인지고…. 나는 여기서 생소한 사람으로 한 때 내 영혼에 불을 붙이면서 한편의 수필을 쓰고 1994년 1월에 서둘러 펴냈던 수필집 '스마호라의 양심' 에 소개한 그 '스마호라' 란 인물을 다시 떠올린다.


스마호라, 그는 브라질의 한 촌락을 다스리는 원주민 추장이었다. 이런 그에게 내가 혹한 이유는 그가 원주민을 모아 놓고 총을 들고 둘러선 백인들 앞에서 행한 연설 때문이었다. “대지를 갈아엎으라고 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찢어 발리는 일을 우리더러 하라고 한다. 이 일을 하고서 우리가 죽어 땅에 돌아갔을 때, 어머니 대지가 우리를 끌어안아 줄 것인가? 또 돌을 캐내라고 한다. 살갖 아래에서 어머니의 뼈를 발라내는 일을 우리가 한단 말인가?" 


자연을 영원한 어머니의 품안으로 여긴 그가 왜 지금도 살아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것일까? 그것은 문화쉼터 몽돌에 세워진 간판이 말하듯 어느 누구 특정인을 위해준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모든 인류의 것으로 창조주께서 자연을 지어주셨기 때문이다. 이 간판 하나가 시사하는 뜻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화쉼터 몽돌은 돌 한 덩이, 흙 한줌, 들에 피었다 지는 풀 한 포기에도 시민들의 자연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말을 웅변으로 쏟아내고 있다. 때마침 강동 관광개발을 위한 특별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 지역 출신인 이상헌 의원의 노력이 결실을 보고 머지않아 강동지역이 탈바꿈하고 울산의 명승지가 전국적으로 소개돼 울산의 발전에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실수가 없게 할 지금의 공직자임을 알고 있지만, 지난 날처럼 개발을 빙자하며 자연이 무지하게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빌어본다. 간판 하나 세운 것을 두고 뭘 그렇게 떠들어 대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스마호라란 인디언의 추장도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듯이 문화쉼터 몽돌의 간판이 시민을 향하여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을 사자후로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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