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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다. 대일 관계는 최악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하늘을 휘젓고도 적반하장이다. 북한은 연일 탄도미사일 발사로 우리를 겁박(劫迫)한다. 미국은 남한 전역을 강타할 수 있는 북한의 신형 미사일 도발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양치질만 한다. 구린내를 감추려 불소로 소독하지만 트럼프의 애견, 아베의 겨드랑이는 악취 없애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색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가 결정되자 곧장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아베를 향해 엄중한 질책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일본의 조치로 인해 우리 경제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더해졌다"면서도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전쟁상황에나 있을 법한 경고를 했다.

국민들도 들불처럼 일어났다. 일본 정부가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다음날인 3일 밤,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은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팜플렛과 촛불을 손에 쥔 시민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베 규탄 3차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의 집회에는 1만5,000명이 모였고 'NO Boycott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등 문구가 쓰인 옷을 입고, 반일 피켓을 들었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 목소리가 여름밤을 쩌렁쩌렁 울렸다.

일본 구마모토에 있는 울산마찌 흔적.
일본 구마모토에 있는 울산마찌 흔적.

과정과 원인을 곱씹을 시간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데는 무엇보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선을 넘은 야망이 뿌리다. 그 중에서도 아베의 뇌세포에서 지울 수 없는 정한론의 유전인자는 욕망을 넘어 파멸의 공격성으로 결국 발톱을 드러냈다. 종처럼 부려먹던 조센징들이 고개를 쳐드니 묵과할 수 없다는 히틀러식 우월주의다.

 

아베 신조. 아베가 정한론의 발톱을 드러낸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과거 스스로가 도래인의 후손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뿌리를 한반도에서 찾았다. 그런 이유가 작용한 것인지 아베의 고향 야마구치현은 정한론의 본거지가 됐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요시다 쇼인은 대표적 정한론자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인 외할아버지 기시는 요시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야마구치는 안중근 의사가 총으로 쏴죽인 이토히로부미의 고향이다. 아베 가문이 바로 이곳에서 정치적 야망을 키웠다. 최근 일본 불매운동의 상징이 된 유니클로 본사가 있는 곳도 야마구치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야마구치를 한국의 관광객과 한국의 소비자들이 먹여살려왔다. 일본 관광국에 따르면, 최신 통계인 2017년 기준 야마구치현에서 숙박한 외국인관광객은 9만5,830명인데 이중 한국인이 4만5,840명(48%)으로 압도적 1위다.

울산도 여기에 한몫을 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줄기차게 약탈을 자행해온 바다 건너 왜구는 울산 땅을 호시탐탐 노렸다. 뒤주에 곶감 빼먹듯 들락거리며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는 어엿한 도적떼로 자라 조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7년을 울산 땅에서 산하와 사람들을 유린했다. 이런 역사에도 현대사에서 울산은 왜구의 후예들에게 극진했다. 스스로 친선우호를 외쳤고, 애써 사절단을 보내 교류를 일삼았다. 하기, 구마모토, 그리고 비젠시까지 철마다 사절을 보내고 수시로 만나 화들짝 웃고 얼싸안았다. 바로 그 첫 번째 자매결연 도시가 야마구치현에 있는 왜구의 심장 하기다.

하기와 멀지않은 구마모토는 어떤 땅인가. 가등청정이 울산의 민초들을 등처먹고 겁탈하고 노리개로 삼았던 역사를 움켜준채 새로운 성을 쌓은 땅이다. 그 땅에서 울산의 후손들은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보다 더하면 더했던 종살이로 한세월을 보냈다. 그 흔적을 구마모토는 울산마찌라는 이름으로 남겼고 그 지명을 근거로 손을 내밀자 얼른 잡아 준 것이 울산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심지어 몇해 전 처용문화제 50주년 기념일에는 구마모토와 얼싸안고 춤을 추겠다며 개막행사에 초대까지 한 얼빠진 사람들이 도시를 주물렀다. 그런데도 울산시는 일본의 이런 도시들과 교류사업을 전면 중단하지 않고 재검토만 하겠단다. 당장 교류를 끊고 새로운 관계정립에 나서는 것이 옳다.

울산이 자매도시로 인연을 이어간 일본의 하기시는 아베의 고향 야마구치현의 심장이다. 아베는 정한론 주창자인 야마구치의 영웅 쇼인의 정신과 뜻을 이어받고 있다. 쇼인은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메이지주역과 군국주의 인사들을 길러낸 극우성향의 인사였다. 한국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정한론은 쇼인이 일찌감치 주창했다. 일본의 조작된 역사서 고사기에는 고대시절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다는 허황된 가짜역사 이야기가 나온다. 쇼인은 그 가짜를 신앙처럼 믿고 정한론을 주장했다. 그만큼 아베의 한국에 대한 '침략야욕'은 출발부터 왜곡의 역사다.

이 참에 아베의 심장을 타고 흐르는 정한론을 살펴보자. 일본 극우세력이 품속에 칼처럼 품고 다니는 정한론은 메이지 유신을 이끈 조슈번(長州藩)을 무대로 자라났다. 막부에서조차 쥐새끼로 불리던 도요토미의 책사들이 오래전부터 외쳤던 정한론을 제대로 이식한 지역이 바로 조슈번이다. 일본에서는 이곳을 하기번(萩藩)으로 부를 만큼 하기시는 조슈번의 심장과 같은 지역이다. 바로 이곳에서 일본의 현대 보수정치가 태동했고 이제 그 세력이 일본의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조슈번의 핵심 인물은 요시다 쇼인이다. 하급 사무라이 출신이지만 극단적인 우익사상의 창시자다. 1853년 미국 제독 매튜 C. 페리의 군함에 잠입하려다 적발돼 '유수록(幽囚錄)'을 썼고, 연금됐을 때는 기숙사관격인 '쇼카손주쿠'를 야마구치에 설립해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이 된 인물들을 길러냈다. 그는 가능한 많은 군함을 만들어 조선을 공격한 뒤 만주 대만 루손(필리핀)을 장악하고 결국엔 중국을 제압하고 인도에 상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근거로 일본의 가짜 역사서를 들춰내고 임나일본부를 재구성했다.

그 땅에서 그 혼을 먹고 자란 인물이 이토히로부미부터 오늘의 아베까지 정한론에 확증편향된 미치광이들이다. 청일전쟁 때 조선주둔군 사령관을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가쓰라 다로, 조선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기도 다카요시, 명성황후 시해를 기획한 이노우에 가오루 조선공사, 아베의 외고조부 오시다 요시사마 등 요괴하고 독살스러운 왜놈들이 모두가 이 땅의 물을 마시며 자랐다. 그 피를 이어받은 아베의 최근 행동은 어쩌면 모두 계획된 시나리오일 수 있다.

 

패망 직후 미군의 지령으로 만든 평화헌법을 찢어버리고 무장한 자위대로 마스트베이션을 하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지만 도모할 때가 오지 않아 움추리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때가 온 것은 트럼프 때문이다. 해괴한 캐릭터로 좌충우돌하는 미합중국 대통령이 탄생하리라는 예언은 없었지만 절호의 찬스이자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발바닥을 빨아서라도 환심을 사야겠다는 계산법은 수시로 태평양을 건넜고 아편 향내보다 더 한 달러냄새로 트럼프와 한배를 탔다. 웬만해선 찡그릴 일이 없다는 믿음이 가자 아베의 얼굴색이 변했다. 세계 경제 12위로 커버린 한국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는 복심이 깔린 선전포고였고 트럼프는 침묵했다. 바로 여기까지는 아베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아베는 착각하고 있다. 세상이 트럼프 같은 약삭빠른 장사꾼의 세치 혀에 놀아나진 않는 법이다. 김정은처럼 표리부동한 계산법으로 관계를 이용하는 리더는 시정잡배이거나 양아치 집단의 두목에 지나지 않는다. 미치광이 장사꾼과 양아치 두목을 이용한 아베의 정공법은 잘못 발사된 미사일이다. 100년전 이 땅에서 무지몽매한 민중들이 왜놈에게 겨눈 건 총뿌리가 아니라 조선민족의 살아 있는 자유의 혼이었다. 그 혼을 건드리면 거친 폭풍이 된다. 그래서 100년후 이 땅의 청년들이 광화문에서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고 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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