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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반일정서가 거세어지고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8월 15일은 광복 74주년이었다. '진정한 해방'을 위해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가 아직 우리 문화에 많이 남아 있으며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인 교육 현장에도 뿌리깊이 잠식되어 있다.

일본식 교육 용어, 친일 작곡가가 지은 교가, 일본 문양을 본뜬 교표, 군국주의 시절 실시되었던 각종 학교 행사와 제도 등 교육전반에 걸쳐 일본 문화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대한민국의 근대교육이 일제강점기에 형성이 되면서 일제가 황국신민화 차원에서 이식한 제도가 해방 이후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우선 언어이다. '유치원'은 1987년 일본이 부산에 체류하던 그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한 기관으로 일본식 조어방식으로 명칭을 만든 것이다. 교감이나 교육감 등 '감(살피다)'이 포함된 단어, 상사가 부하에게 '훈시'한다는 군대용어인 '훈화', 구령에 맞춰 단체로 인사하는 '차렷, 경례', 메이지 유신 이후의 교육칙어에서 비롯된 '급훈', 학년말에 실시되는 '사정회'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일제칙령 제 148조에 등장하는 '회고사'는 국어사전에는 있지도 않은 단어이다.


학교의 관행적인 행사에도 학예회, 운동회, 수학여행 등 일제 잔재가 많다. 운동회는 메이지 시절 일본이 주민을 학교에 모아 국가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만들고자 실시했던 '군국주의의 전시장'이었다.

봄이나 가을이면 어김없이 해마다 열리는 운동회. 전 학년 학생들이 수차례 연습된 일정 프로그램에 따라 무용이나 단체 게임에 참여를 한다. 일본이 홍백전으로 경기를 펼치듯, 우리는 청백전으로 대항한다. 리그전이나 토너먼트가 아닌 색깔로 두 팀을 구분해 대항하는 경기형태 또한 일본 잔재이다. 이런 방식으로 운동회를 하는 나라는 일본, 대만, 우리나라뿐이다.

일본은 1910년부터 만주나 도쿄를 오가는 수학여행을 만들었다. 군국주의의 위대함을 직접 보고 체험하라는 것이었다. 모국을 자학하고 열도를 숭상하게 하며 민족정신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수학여행은 여전히 굳건히 시행되고 있다.

기울어져 가는 세월호 안에 남겨졌던 학생들을 떠올리면 너무나 가슴 아픈 그토록 위험하고 획일적인 단체여행이 얼마나 교육적인 행사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소규모 테마형 교육여행으로 명칭만 바뀌어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수학여행. 수십, 수백 명이 몇 개의 코스를 우르르 몰려다니며, 안전은 오로지 학교에 위임한 채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사고는 전적으로 인솔교사의 책임이다. 집을 떠나 친구들과 보낼 수 있단 아이들의 설렘, 부모들에게 주어지는 며칠간의 편의에 누구도 이 수학여행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학예회, 운동회, 수학여행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명칭이 어떻든 간에 학교에서는 교육적 목적으로 단체 행사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소위 '천황 숭배'를 위한 목적으로 치밀하게 고안된 행사들이 오늘날 학교에서 교육적인 목적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하루를 위한 전시성 행사에 따르는 준비과정이 소모적이지는 않은지, 강제적인 동원에 의한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공동체 사랑과 참여를 끌어 낼 수 있고, 교육 목적에 부합하며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우리의 학교 문화' 창출에 대해 논의해 보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의 명칭이나 산물이라면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근원을 살펴보고 청산할 것에 대해 공론의 장을 거쳐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 교육청에서는 올해 '교육현장 일제 잔재 조사 및 청산'에 대한 각종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교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일제 잔재 인식 및 청산 TF팀의 활동'과 '일제 잔재 인식 및 청산을 위한 학생 동아리 활동'이 그 일환이다.

정치, 경제적 독립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 정신적인 자립이다. 관례라는 점에서, 틀을 바꾸기가 힘들어서, 긁어 부스럼내기 싫어서 진단하고 개선점을 찾는데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함께 힘을 실어 식민지 시대의 흔적들을 걷어내 '우리의 학교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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