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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만나고 우정동에서 범서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삼호교를 건너는 신호등에서 우회전을 해 범서로 들어가야 하나 내 차는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냥 직진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는 무거로터리로 향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굴화로 가는 사이 길로 핸들을 돌렸다. 왜 이런 경우가 생겼을까를 생각했다.
옥현 주공아파트에서 살다가 굴화로 이사를 한 지가 불과 한 달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런 생각이 없이 차는 옛날 집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차가 아니라 내가 평소 가는대로 가니 그것은 순전히 나의 부주의로 발생한 것이다. 차는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김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는 532년에 결국 신라에 나라를 바쳤다. 그때의 왕이 김구해였다. 금관가야를 병합한 신라는 한강 유역을 회복하려고 백제와 치열한 전쟁을 해야만 했다. 백제는 군사 요충지인 고시산군을 공격하게 됐고, 신라는 이것을 지켜야 했다. 왜 이 전투가 중요했는지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신라로 귀순한 구해왕의 손자인 신주군주인 김무력 장군은 정찰대를 조직해 적지를 순찰하다 소수의 근위병을 이끈 백제의 어라하인 성왕을 사살했다. 이 전쟁의 승리로 한강 유역의 땅은 신라의 것이 됐다. 관산성의 전투는 멸망한 금관가야의 부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전쟁이었다. 전투에서 공을 세운 무력은 진흥왕의 딸인 아양공주와 결혼을 해서 김서현을 낳았다. 그는 골품제도가 깊게 뿌리를 내린 신라에서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진평왕의 여동생인 만명을 우여곡절 끝에 부인으로 맞이해 김유신이 출생했다. 어린 시절 신동으로 소문난 유신은 뛰어난 화랑이 됐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그가 말을 타고 집으로 가다 눈을 떠보니 그가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라 당산 아래에 있는 기녀 천관녀의 집이었다. 크게 놀란 그는 말에서 내려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평소 천관녀와의 만남을 못마땅해한 어머니는 천관녀와의 관계를 빨리 끝내라고 호통을 쳤다. 그것 때문에 천관녀를 피하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것이 타고 온 말이었다. 유신은 칼을 높이 들고 사정없이 아래로 내리쳤다. 그의 외마디 기압에 말의 머리는 몸통을 잃고 피는 하늘로 튀며 서서히 쓰려졌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연인인 유신이었는데, 유신은 천관녀를 뒤로 두고 발길을 돌렸다.


신라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천관녀는 젊은 화랑낭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관녀를 처음 본 순간 서로는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만나게 되었고, 앉으나 서나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을 돌아보기 어렵게 된다. 유신이 천관녀에게 빠지면 빠질수록 그의 어머니는 유신을 천관녀와 헤어지도록 온갖 압력을 행사했다. 그것이 결국 그의 애마(愛馬)의 목을 치게 된 것이다. 한 여인의 비극이 이렇게 시작됐다.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난 것은 옛날 집으로 향한 나의 운전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만약 차가 잘못했다면 나는 차를 버려야 할까. 아니 차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것은 순전히 핸들을 제대로 돌리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물론 유신도 말의 목을 친 것은 말이 잘못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다시는 천관녀를 찾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意志)을 다짐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패국의 후손이 가문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했으리라. 아니, 약소국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그의 깊은 뜻이 사랑을 외면하게 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내 아이가 잘못 했다고 하면 잘못한 이는 한 명이 되지만 내 아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친구가 잘못 했다고 하면 잘못한 아이의 숫자가 얼마나 많을지 알기가 어렵다.


한 때 유행한 "내 탓이요"도 있었다. 이는 잘못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는 뜻으로 자동차에 많이 붙이고 다녔다. 그런데 이 스티커를 붙이는 장소가 차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운전석 앞에, 아니면 조수석 앞에 부쳤다. 늘 보면서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차 뒤 유리창에 부쳐서 진정 자신은 보지 못하고 뒤를 따르는 차량들이 보아야 했다. 앞 유리에 "내 탓이요"를 나 자신이 보면 혼자이지만 뒷유리에 붙이면 보는 이 마다 다 자신의 탓이라서 아무 잘못도 없이 자신의 잘못으로 돌려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끔씩 김유신의 애마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내가 잘못을 했을 때 그 잘못을 결코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고 나에게 다짐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잘못으로 다시는 애마의 죽음이 없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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