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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더웠던 여름이 어느새 끝나고 이르게 찾아온 것 같은 한가위도 지나고 나니 정말 가을이구나 싶다. 여름내 얼마나 축져져 늘어져 있었는지 그 더위 속 게으름은 끝나지 않는 것만 같다. 더워서도 그랬거니와 올해 써야 할 하반기 에너지까지 상반기에 다 끌어다 써버린 느낌이랄까. 쉬어도 쉬어도 채워지지 않는 에너지 고갈로 게으름과 무기력, 나태함이 내 몸뚱이를 더욱더 무겁게 만들었다.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다 할 거야' 그럴 줄 알았는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여전하다. 오히려 훨씬 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며칠전 친구와의 대화 중 '어디가?/명상하러~/웬 명상?/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잠시 후/잘 다녀왔어?/ 응, 질문 천만 개 하고 왔어. 선생님이 이렇게 질문 많으신 분 오랜만이라며… 머릿속을 비워 내는 거래. 예전의 기억부터 버리기 시작한대/그게 되나? 그럼 기억상실증 만들어 주는 곳이야?/  암튼 머릿속 기억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생각해 보게 된다. 머릿속 재부팅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쓸데없는 걸 버리려고 할 때 무슨 기억을 버릴까? 생각해보니 머릿속이 뒤죽박죽 머릿속 기억까지 쓸데없는 욕심으로 가득 찬 기분이 들었다. 그 많은 기억들이 또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내 에너지를 또 빼앗기고 있구나 생각하니 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것만 같다. 

악보를 보니  음표가 빼곡하고 지시사항은 왜 이리 또 많은지 음표들이 막 둥둥 떠서 내 눈앞에 떠다닐 때가 있다. 가끔 그럴 때는 노환이 시작됐나…하고 눈을 비비적거리며 서글퍼진다. 연습해야 하는 곡을 접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이라 적힌 주황색 악보를 펴본다. '아~ 좋아' 나이가 들었나, 머리가 복잡한가…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음악도 감정을 과다 이입해야 하는 음악도 다 버겁게만 느껴진다.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의 <평균율곡집> 이름만 들어도 뭔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평균율'이 뭐야? 하고 말이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어떠한 기준을 정해서 듣기 좋게 음의 간격을 조율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피아노 건반 도, 레, 미, 파, 솔, 라, 시 7개의 하얀 건반과 그사이 사이 놓여져있는 검정 건반 5개를 합치면 12개의 음이 나오는데 그 음들을 기준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도 어려운 것 같다. 음의 첫 시작'도'의 높낮이는 달리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다음부터 연결되는 레미파솔라시의 간격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평균율곡집은 이렇게 12개의 음을 사용해 24곡의 프렐류드와 전주곡을 한 묶음으로 하여 완성시켰다. 이렇게 1, 2집을 완성시켰으니 총 48곡이란 셈이다. 바흐가 활동했던 음악시대는  바로크시대라고 말하는데 피아노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이라 지금과 같은 완전한 피아노의 기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바흐는 이 평균율곡집을 건반악기를 위함이라고 칭해놓았고 그것은 무엇을 칭했느냐는 아직도 여러 의견이 많지만 오르간, 클라비코드, 쳄발로 등 피아노가 생겨나기 전의 악기들을 칭하니 어찌 됐건 피아노를 위해서 만들어진 음악은 아니니 늘 바흐를 칠 때면 조심스러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피아노와 모습은 비슷하지만 소리 내는 방법이나 음색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이렇게 편하게 고요하게 피아노를 쳐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필요가 없으니 이리도 좋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내 맘대로 하고 싶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내 맘대로 하니 이리 좋다. 어릴 적부터 '바흐'를 칠 때면 이렇게 쳐도 되나? 라는 의문점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음악이 좋다고 느껴지긴 지나 보다. 조심하는 게 많아지니 힘들 수밖에 없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열정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어찌 됐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은 열정의 시작이 되기도 하니, 단순한 욕심이 아닌 열정으로 발전되려면 게으름을 털어버리고 씩씩하게 일어나서 두 팔을 크게 들어 올리는 것부터 해야 하겠지. 

정말 가을이 왔다. 아침, 저녁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낮에는 하늘이 이리도 예쁠 수가 없다. 그리도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바흐'가 지금 이렇게나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것에 감사하며 바흐의 평균율 곡집 1권 중 프렐류드 1, 2, 3번 (바흐 작품 목록 BWV 846,847,848)이 오늘은 좋다.  유난히도 파란 하늘에 양떼구름이 많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온몸이 정말 폭신폭신해지는 것만 같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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