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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결혼한 신부가 슬픔에 찬 얼굴로 눈물짓고 있다. 신부의 손에 들린 부케가 신부의 표정과 대조적이다. 이 부부의 맞은편에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부모가 슬퍼하고 있다. 1961년 9월, 베를린 장벽 풍경 중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말, 독일과 수도 베를린을 미국, 영국, 프랑스, 구 소련이 분할하면서 동독과 동베를린은 소련이 관리했다. 그러나 동독에 비해 서독이 더욱 번영하였기 때문에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하는 인구수가 증가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동독에서 베를린 장벽을 세우게 되었으며 장벽이 생긴 1961년 8월 13일 이후부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주민들은 왕래가 자유롭지 못했다. 장벽 건설은 일부 소수에 의한 결정이 다수에게 악영향을 미친 폭력적 결정이었다. 울산 민주시민교육 독일 현장 연수단은 이번 연수에서 베를린 장벽 이외에도 유대인박물관, 부헨발트 수용소, 독일저항기념관 등을 답사했다. 이 일정은 민주주의의 실패 혹은 붕괴와 평화가 사라진 결과에 대해 독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독일 현장 연수가 있기 1년 전부터 울산 민주시민교육 교사 네트워크에서는 독일의 홀로코스트(Holocaust, 학살, 나치당이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을 의미) 사례와 이 과거사를 조명하는 방식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지면으로 접한 나치즘을 포함한 국가사회주의와 그에 의해 벌어진 인권유린과 탄압은 사례가 더해지면 질수록,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감정의 주체가 어려웠다. 이 감정은 마치 가해자와 그에 가담한 인간에 대한 실망, 분노 그리고 소수에 의한 결정과 폭력으로 힘없이 스러져간 인간에 대한 연민이 복합적으로 다가와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느낌이었다.


이 감정들이 조금 가라앉으면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비단 독일 뿐 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침략하고 싸우고 살해해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 중인 부족, 집단 혹은 국가가 있다하니 인류의 홀로코스트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만약 우리가 본 것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면, 처음은 무엇부터 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과 갈등의 씨앗은 '혐오'이고, '혐오의 연대'로 개인의 선택을 보편화하고, 정당화한다. 물론,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말을 교육자로서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한다면 독일에서 사료로나마 만난 의인들 (위험에 처한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도와주며 나치에 저항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선도 악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본능이지만, 교육과 경험에 의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사고의 시스템을 학습할 필요는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선 개인부터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한다. 나는 '혐오'라는 감정에서 자유로운지 말이다. 나의 혐오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왜 혐오가 시작되는가? 우리는 우리의 혐오의 감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혐오는 차이로 부터 오는 오해, 상대에 대한 부족한 정보와 그에 따른 예측 불가로 오는 두려움이다. 그 오해와 두려움을 스스로가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스스로의 성찰만이 모든 혐오와 그 유사한 감정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고전적이고 느리지만 정확한 방법, 바로 대화가 필요하다.


이 방법은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 특히, 학교 폭력에서 요즘은 폭력의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처벌하는 데에 더 에너지를 쏟는다. 누구나 예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들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특히 내 안의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과 되돌아보기 연습에 대해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반영할 필요가 절실함을 느낀다.


7박 9일간의 민주시민교육 독일 현장 연수로 얻은 것은 사회의 제도도 아니고 교육기법도 아니었다. 그런 기술보다도, 혐오하지 않고 대화하는 것, 가장 근본적인 인간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뇌어본다. 지금도 갈등과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폭력으로부터 하루 빨리 해방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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