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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깊어져 이제 낙엽 구르는 풍경이 거리를 덮었다. 도심에서는 주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으로 늦가을의 정취를 맛본다. 하지만 태화강 국가정원이나 신불산, 가지산 등에 가보면 울긋불긋한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한다. 단풍은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기 직전에 나타나지만 초봄에 새로 싹트는 어린 잎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단풍 식물은 단풍나무과(科) 단풍나무속(屬)에 속하는 식물들이다. 하지만 색감은 진달래과나 노박덩굴과, 옻나무과, 포도과 등에서 더 화려한 단풍을 뽐낸다. 단풍은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고, 새로 안토사이안이 생성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물의 종류가 달라도 안토사이안은 크리산테민 1종뿐이다.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 빛깔이 다른 것은 이 홍색소와 공존하고 있는 엽록소나 노란색·갈색의 색소 성분이 얼마나 포함됐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단풍이 화려하거나 짙게 드는 해는 가을 초입부터 기온이나 적당한 습기, 자외선의 양 등에 의한 요인일 경우가 많다. 색소를 만드는 물질인 포도당이나 슈크로스가 잎에 축적되면 안토사이안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어 이 이론은 상당부분 근거를 가지고 있다. 간혹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쪽을 여행하다 보면 유럽의 단풍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위도와 계절이 비슷한데도 수풀의 색깔이 주로 노랗게 물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북미 대륙의 단풍도 우리처럼 울긋불긋한데 유럽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단풍 색깔은 겨울이 오는 걸 감지한 나무가 잎으로 보내는 영양분과 수분을 차단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라는 두 색소가 잎 속에 있는데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이 나타나고, 카로티노이드가 많으면 노란색이 된다. 결론적으로 유럽의 단풍은 카로티노이드가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럽의 나무에는  단풍의 색깔을 좌우하는 안토시아닌이 없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유럽 사람들에게도 연구 대상이 됐다. 지난 2009년 핀란드 쿠오피오대 연구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안토시아닌은 3,500만 년 전쯤 나무들이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에서 붉은색은 독성이 있다는 신호인 데다 이런 물질을 만들면 영양분이 적어져 진딧물 같은 녀석들에게 썩 좋은 먹잇감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영리하게 자신을 보호하려는 위장술을 펼쳤다는 이야기다. 이 색소 때문에 유럽의 가을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었다. 실제로 이와관련한 실험도 꾸준히 있어왔다. 진딧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녀석들은 붉은색보다 노란색 나무를 6배나 더 선호했다.


빙하기가 왔을 때 나무들은 씨앗을 이용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피신했다.  하지만 곤충들은 빙벽을 넘지 못했다. 빙하기가 끝나고 나무들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북상을 했고 따라다니던 해충들이 사라져 안토시아닌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단풍은 노랗게만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시아와 북미의 나무들은 해충들과 싸움을 하느라 안토시아닌을 무수히 만들어야 했고 그 바람에 가을만 되면 오색창연한 단풍으로 물들어 삼천리 금수강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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