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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만한 멧돼지와 정면으로 2~3초간 눈을 마주쳤는데 순간 다리가 굳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옆으로 가서 봉변을 면했어요"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 걸려온 전화였다. 야간에 헤드랜턴을 하고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커다란 멧돼지와 마주쳤다며 멧돼지를 포획해 달라는 주민의 신고 전화였다. 이는 우리 북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멧돼지가 민가까지 내려와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북구에 출몰한 멧돼지는 315마리, 울산시 전체는 1,602마리로 파악되고 있다. 전년도에 비해 배가 넘는 수치다. 11월 7일까지 포획한 멧돼지는 북구 77마리, 울주군 360마리 등 473마리로 집계됐다. 또 도심 멧돼지 출몰은 21건으로 나타났다. 12월이 되면 도심출현 빈도는 휠씬 늘어날 것이라고 포획단원들은 말한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고구마, 옥수수, 콩, 땅콩 등 애써 키워놓은 농작물을 멧돼지나 고라니, 까치, 청설모, 꿩, 직박구리 등의 야생 짐승이 먹어 치우곤 한다.

올해 북구는 농작물 피해보상금으로 22건에 357만7,000원을 지급했다. 야생동물 피해예방사업으로 전기목책기 2개와 전선울타리 1개 등을 3개 농가에 설치하기도 했다. 농작물 수확이 끝날 무렵인 이맘 때 쯤부터는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으러 민가에 자주 나타난다. 특히 올해는 봄 개화기 냉해 때문에 도토리를 비롯한 산중과실이 흉년이라 야생동물의 출현이 더욱 빈번해 졌다.

참나무과 식물 열매인 도토리는 다람쥐와 멧돼지, 곰 같은 야생동물에게 가을철 가장 좋은 먹이가 된다. 대다수 국립공원에서는 도토리를 따다 적발되면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등산 가방을 이용해 고의로 다량 채취하다 걸리면 고발 조치된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도토리나 밤 같은 야생동물 먹이를 주워가지 말라는 캠페인을 실시하기도 하고, 도토리 저금통을 산 입구에 설치해 재미로 주워오는 도토리를 모아 산에 돌려주는 행사도 한다.

선물 같은 가을 날씨에 단풍마저 사람들을 산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멧돼지를 한번 본 사람들은 산에 가기를 무서워한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멧돼지는 주로 야행성이고, 공격성이 강한 동물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1월에서 1월 번식기에는 매우 예민해 겨울철 야간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요주의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산행은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하고, 주변을 잘 살피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멧돼지는 신체 구조상 방향 전환이 쉽지 않아 공격대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으로 따돌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방향 전환만이 능사가 아니다. 멧돼지는 점프력이 약하고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바위 뒤로 숨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리치거나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행위는 멧돼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멧돼지가 달리는 속력은 시속 50㎞에 육박한다. 경찰이 사용하는 권총으로도 귀밑이나 심장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면 죽지 않는다. 또 머리뼈에 맞추면 총알은 튕겨 나가고, 몸통에 맞추면 가죽이나 비계에 박혀버려 쉽게 제압할 수 없다.

이렇게 무서운 멧돼지를 민가에 내려오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주워오는 멧돼지의 먹이 도토리다.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앞서 언급했듯 산에 가서 야생동물의 주먹이인 도토리를 주워오지 않아야 한다. 재미로 주워온 도토리가 나를 비롯한 이웃들에게 위험을 가져다 준다. 

사람과 멧돼지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도토리는 산 속 야생동물에게 돌려주자. 도토리를 주워오면 멧돼지가 찾으러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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