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남동은 내 유년의 기억이 어린 곳이다. 4년 전 나는 이삿짐을 꾸려 고향 성남동으로 돌아왔다.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에서 이팝나무로 바뀌었고, 내가 다녔던 울산국민학교는 미술관이 들어서기 위해 큰 회나무 한그루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도심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아직도 추억의 장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시계탑 근처 떡볶이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작업실(박빙 아트 스페이스)을 얻었다. 성남동은 문화의 거리가 되어 각종 문화 예술 행사가 열리고 여러 분야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가 들어서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작가들과 함께 '미학101호'라는 모임을 만들고 미술과 철학에 대한 독서와 토론을 진행 중이었는데, 올해 12월에 그 작가들과 함께 옥상과 창고를 빌어 전시회 '조롱말' 전을 열었다. 

갤러리 전시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계단과 옥상, 어두운 창고 안에 전시돼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낡고 평범한 공간의 변신에 신선한 충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재미있어 했다. 작가 입장에서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오래된 건물의 공간감을 활용한 전시를 준비할 수 있어 의미 있는 경험이 됐다. 오래되거나 비어있는 공간은 낡고 쓸쓸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곳에 전시회와 같은 행사가 열리면 그 장소가 추억의 따뜻한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들과 처음 전시 장소를 의논 했을 때, "곳곳에 비어 있는 빈 점포를 일주일 단위로 빌리면 어떨까?" 하는 의견들이 나왔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인지 1층 좋은 자리에 비어 있는 점포들이 여럿 보였다. 그곳에서 전시회를 연다면 접근성이 좋아 시장 상인들도 오가며 윈도우를 통해서라도 전시를 관람할 수 있고, 문화의 거리로 놀러온 젊은이들의 사진에 담겨 SNS로 알려진다면 가게를 홍보 할 수도 있어 임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한 장소는 골목길이다. 구도심에 남아 있는 골목길은 큰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소다. 요즘은 자동차 위주의 큰길이 대세가 됐지만 큰길 위에서 사람은 조심스러워지고 왜소해진다. 골목길은 사람의 길이다. 

모세혈관처럼 구석구석 이어져 그곳은 소통의 공간이 된다. 나는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놀았다. 그곳이 좁은 줄도 모르고 숨바꼭질도 하고 지형을 이용해 미끄럼도 타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우리에게 그곳은 작은 놀이터였다. 이런 골목길에서 전시를 펼치면 어떨까? 집과 집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마지막으로 개방된 거리에서의 전시는 접근성이 좋아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시민, 주변 상인들까지 누구라도 예술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문화의 거리나 배달의 다리와 같은 공공의 장소를 개인 작가들이 대여할 수 있게 만들어 그곳에서 전시를 펼칠 수 있게 한다면 시민과 작가가 자연스럽게 예술로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니콜라 부리요는 그의 저서 '관계의 미학'에서 미술은 다양한 주체들의 만남이 이뤄지는 열린 과정이 되고 전시는 마치 시장처럼 '교환의 영역'이 되며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한다. 미술의 주체는 이미 거리로 자리이동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구도심은 이러한 현대미술의 공간을 적절히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옛 건물들과 골목길을 잘 복원하고 다리와 중심 거리를 적극 활용한다면 문화의 거리는 하나의 좋은 전시장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