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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지방선거와 총선도 중요 정치이벤트이지만 대통령선거에 견줄 바가 아니다. 대선은 권력지형을 한순간에 바꿔놓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갖고 있다. 소위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선거가 대선이다. 영남정권, 호남정권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대통령을 어느 지역 출신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지역발전을 10년, 20년을 앞당길 수 있고 후퇴시킬 수도 있다. 지역감정 청산이라 하지만 이는 숫제 정치구호일 뿐이다. 우리 속담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했듯이 아는 사람이 무섭다. 그것도 권력을 통째로 틀어쥐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능에 비춰 누구를 옆에 두겠는가. 일단은 아는 사람이다. 다음은 연고다. 이것으로도 채울 수 없으면 우호적인 인사를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우리의 오래 된 행동준거다. 고향이 같거나 출신학교가 같거나 당(黨)을 같이 한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프리미엄이 된다. 또 이것이 빽이다. 대통령 자신으로도 살벌하기 짝이 없는 정치판에서 권력누수 없이, 자리를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믿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정치생명을 같이 했던 동지이자 주요 당직자들마저 수(數)틀리면 대통령소속 당을 뛰쳐나가는 판에 생면부지의 사람을 옆에 두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인군자(聖人君子)라 하더라도 한국 정치에 몸을 담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하물며 오감에 좌우되는 범부들에게 이를 거부하라고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시쳇말로는 덜 떨어졌다.
 사정이 이러니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자연 정치를 화두에 올린다. 연줄심리에 기초한 반사작용이다. 민족명절인 '설'은 바로 이런 참새정치, 입방아의 최고 호기다. 객지에 나갔던 가족이나 친인척, 친구들이 둘러앉아 오랜만에 대화를 한다면 무엇을 화제로 올리겠는가. 고부갈등이니 상속 문제니, 동창 소식들은 5분이나 10분을 잘 넘지 않는다. 이를 더 넘기면 따분하고 하품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날밤을 새우고도 할 말이 남아도는 우리다. "정치하는 놈들"이라고 한없이 깔아뭉개면서도 정치 이야기만 꺼내면 신이 난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TV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정치소식이니 하기 싫은 학습이라도 저절로 하게 되어 있다. 정치담화 자리에서 단연 백미(白眉)는 차기 대통령에 누가 될 것인가다. 그러면 현재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대선주자들이 등장하고 이런저런 인물평과 '한 소식'이 쏟아지게 되어 있다. 완전히 까발려진다고 할 심판대다. 그럼 이 자리의 대화를 또 누가 주도하겠는가.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는 '뻔한 메뉴'다. 이들의 경쟁력이 어떻고, 됨됨이가 어떻다는 둥의 말을 하다가는 "그거 말고"라는 핀잔을 듣기 딱 맞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문이 "뭐 다른 거 없나"다. 이것이 당사자들로서는 죽을 맛이라 할 역(逆)선택의 순간이다. 이 전 시장이 여론조사에 선두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초니, 꼭 5개월째다. 박 전 대표의 2등 역시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성적표다.
 한국 사람의 성정에 비춰 질릴 때가 됐다. 5개월은 정말 잘도 버텨온 시간이다. 특히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인 정인봉 변호사가 터뜨린다고 했다 막판에 거둬들인 '이명박 의혹'이 무엇인가가 더욱 많은 구미를 당기게 되었다. 군불은 이미 지펴졌다. 폭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덮여질 사안이 아니다. 더욱이 이명박 캠프에서 보인 과민대응도 의심을 키우고 있다. 아무 일이 없을 것 같으면 왜 그리 쌍심지를 켜고 정 변호사와 박 전 대표를 몰아세웠겠느냐는 연상은 당연한 귀결이다. 방어를 하려 한 것이 더 큰 공격을 부를 악수가 되었다. 이 전 시장이 밤잠을 설칠 설 연휴다. 또 박 전 대표도 이번 파동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 솥밥을 먹는 식구끼리 본선도 치르기 전에 아귀다툼 한 꼴을 곱게 보겠는가. 이러다 둘 다 용도폐기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다. 두 후보에게 이번 설 연휴는 정말 지옥살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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