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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성을 대표하는 교수사회가 올해의 대한민국을 공명지조로 압축했다. 교수신문이 2019년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내용이다. 교수신문은 1046명의 교수 대상 설문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가장 많은 표(347명·33%·복수응답)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사자성어를 선정한 교수신문은 공명지조가 불경 아미타경 등에 등장하는 새라고 주석을 달았다. 두 개의 머리가 한 몸을 갖고 공유하는 '운명공동체'를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한 몸의 새는 머리가 두 개로 그중에 한 머리가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자 다른 한 머리가 질투를 느껴 독이 든 열매를 따 먹어 결국 모두 죽게 됐다는 우화도 곁들였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수신문은 공명지조 다음으로 많은 추천을 받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300명·29%)라고 밝혔다. '무엇이 물고기 눈(어목)인지 무엇이 진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의미의 이 성어는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어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는 "올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누가 뭐래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라며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던 조국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 하나는 어목이거나 진주일 수 있고, 아니면 둘 다 진주이거나 어목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올해는 무엇이 진짜 어목이고 진주인지 혼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교수사회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촌철살인 같은 사자성어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호질기의(護疾忌醫, 병이 있음에도 의사에게 숨기는 거짓이 횡행한다)가 그랬고, 장두노미(藏頭露尾,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니 거짓이 드러남)가 그랬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는 군주민수(君舟民水, 백성은 물, 임금은 배, 촛불혁명을 통해 강물이 배를 뒤집을 수 있음)라는 네 글자로 권력의 정점에 앉아 있는 이들을 호령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2017년의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함을 물리쳐 옳은 것을 세움)이나 2018년의 임중도원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사자성어로 정부의 방향성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애매하다. 공명시조는 언뜻 우리 사회가 가진 이분법적 구조를 통렬하게 내리치는 죽비소리 같아 보이지만 어쩐지 본질을 제대로 꿰뚫지 못한 소아적인 단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근거는 이렇다. 2019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는 가장 극렬한 사회갈등 양상을 보여줬다. 권력을 쥔 자는 자신들의 주장과 방향성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했고, 잃은 자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육두문자와 삿대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뱉을 수 있는 침이 말라버릴 정도로 여야가 갈라섰고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문제는 바로 본질이다. 과연 지금 우리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명한 이분법적 구조는 출발이 한 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있다. 

오늘의 문제를 잠시 우리 현대정치의 출발점으로 되돌려 보자. 일부 해외 선각자들의 대일본 선전포고 등 치열한 항일 활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독립은 어쩌다 맞이한 꼴이 됐다. 준비되지 않은 독립은 우리 사회 지식인들을 두 갈래로 줄을 세웠다. 바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 깃발 아래 헤쳐모여가 시작되자 일시에 혼란이 찾아왔다. 

스스로 이념의 그물망에 가둔 우리 지식인들은 제대로 된 이념투쟁을 겪어보지 못한 채 허구한 날 주도권 싸움만 하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이념의 현실적 대입이나 앞선 경험집단의 실체를 우리식으로 재구성해 보는 이념의 체계화를 거치지 못한 대립은 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주먹질과 암살, 비난과 야유라는 시정잡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경험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세력이 오늘의 진보세력이다. 

우리 정치판에서 진보세력은 과거 해방 전후의 좌익세력이 보여준 선동적이고 투쟁적인 기질에다 30여 년 동안이나 이어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실전경험까지 쌓았다. 투쟁의 시대는 끝났지만 전투력으로 전신을 무장한 진보는 10년간의 집권신화까지 썼다. 한번 맛본 권력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 중독의 양분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경자년에 이어지는 4월 총선이다. 진보세력에게 4월 총선은 절대과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수단과 방법은 뒷주머니다. 마키아벨리의 치밀한 승리전략을 학습한 이들이 맨 앞에 섰다. 뿌리까지 보수인 자들이 아니라면 어떤 집단 어떤 세력과도 두 손 맞잡고 달려갈 준비가 됐다. 그래서 4+1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정치집단이 제법 모양을 갖추고 이제는 대놓고 명함까지 돌릴 태세다. 

이런 진보와 맞붙은 보수우파 세력의 현주소는 어떤가. 툭하면 드러눕는 중동축구의 재판이다. 드러눕기 전에 머리도 깎아 보고 곡기도 끊어보지만 제 몸만 상할 뿐 응원군이 없다. 차라리 드러누우려면 모두 함께 드러눕는 수적 우세라도 보여줘야 할 텐데 비겁한 유전인자는 뒷걸음질만 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정치의 보수집단은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하기에 낯이 뜨겁다. 흔히 보수를 두고 도덕성과 준법성, 안정성을 기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보수우파의 장기집권은 도덕적 해이로 이어졌고 도덕성 보다 끼리 문화와 동질문화가 우선되는 가치로 보수를 인테리어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보수는 모태보수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형 보수로 놀림감이 되고 전투력에 유연성까지 갖춘 진보의 뭇매를 맞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쯤 되니 우리 정치판에 대화와 타협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게임의 룰을 정하면서 한쪽을 완전히 배제한 채 방망이를 두드리는 게 민주정치란다. 협상의 여지가 있는데도 삭발과 단식, 드러눕기로 몸정치들 하며 독재라고 삿대질만 한다. 국회의 수장이라는 자는 호위무사를 거느린 채 비아냥거리는 단어 몇 개 던지며 방망이를 두드린다. 꼴사나운 정치가 대한민국의 국격인데도 서로가 니 때문이라며 원죄를 덮어씌운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여기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은 바로 방송이다. 세상만사 모르는 게 없는 평론가들은 때를 만났다. 입으로 먹고사는 정권의 나팔수들은 자신들이 신년 점을 치듯 선거법 이후를 점지하고 공수처 통과 국면을 몇 가지 시나리오로 그려 보인다. 팩트보다 소문이 자극적이라는 사실을 배운 방송의 기교를 펼쳐 보이며 언제 어떻게 그랬는지도 잊어버린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를 소환해 끼워 맞추기에 열을 올린다. 자칫하면 보수는 박근혜 적폐의 부스러기가 됐다가 여전히 적폐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개혁의 발목을 잡는 이들이 오늘의 보수라며 잊을만하면 재생과 반복의 버튼을 눌러주는 나팔수들은 그래서 얼굴도 바뀌지 않는다. 

선거법을 후려치기로 움켜쥔 여당과 똘만이들은 주말이 지나도 여전히 얼굴이 벌겋다. 가능한 한 더 많은 의석을 챙기기 위해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 궁리 중이다. 그래서 안달이 났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공수처법도 통과시키고 윤석열이도 날려버려야 한다. 조국수호를 외치는 푸른 장미 부대는 오르가슴 수준이다. 모세의 기적처럼 운집한 군도를 가르며 영장심사를 받으러 간 그들의 우상이 말간 얼굴로 도주우려가 없다는 도장 하나 받아 구치소를 나왔을 뿐이지만 장미 꽃잎 뿌리는 퍼포먼스가 화려하다. 

나라 꼴이 이 정도로 갈라졌는데 교수 사회는 그래도 한 몸이었다며 독을 먹고 함께 죽지 말자고 슬쩍 잘난 체를 한다. 해결방법이 없는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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