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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설차

                                                                                                 조덕자

잠들어 있던 마른 잎 일으켜 세워
내 몸속으로 불러들이면
짙은 어둠에 갇혀 있던 푸른 불(火)들이 살아난다
쓸쓸한 외로움 녹아든 잎맥 사이로
산화된 시간들 우러러나고
절제된 내 가슴 한 구석에 숨어있던
바람 한 자락 솔솔이 풀어진다
그 깊은 엽록(葉綠) 얇아져
비록 문풍지처럼 떨린다 해도
온몸 데우는 열기같이
나도 그에게 마른 잎으로 눕고 싶은 것이다
나도 그처럼 푸른 수맥으로 되살아나고 싶은 것이다

△조덕자: 경남 하동 출생, 1997년 '심상' 신인상 등단. 제1회 울산 작가상 수상. 시집 '가구의 꿈' '지중해 불루 같은'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청춘 시절 강진 백련사 만경루에서 처음 차를 마셨다. 차 맛도 모르고 마셨던 그 봄날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차 맛이란 세월을 우려낸 맛 아닐까 생각도 든다. 정해진 순서보다 즉흥적이고 기다림보다 순간에 더 열중했던 우왕좌왕한 푸른 시간 속에 남은 사진 한 장처럼 잘 우려낸 차는 마신 후 입 안에 가득 향으로 남는다.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라는 추사의 글 일로향실(一盧香室)처럼 홀로 차를 달이며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내면을 다스리는 혼자만의 방엔 차향으로 가득할 것이다.


시인은 쓸쓸한 외로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조용히 돌아보며 심연 어디쯤 어둠에 갇혀 있는 절제된 시간의 매듭을 차향으로 풀고 있는지 모른다. 엽록의 떨림을 홀로 순수하고 자유로운 방에서 즐기며 다시 데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른 잎들이 천천히 몸을 풀어 본연의 색으로 찾아가듯 시인도 젊은 한 순간을 데리고 오고 싶은 것이다. 젊은 날에 무엇을 남겨 두었던 그것은 향 같은 것이어서 잠시 동요하고 차분해짐을 시인은 알고 있다.


지금쯤 승설(勝雪)차를 준비하기 위해 눈 속에서 발아한 새싹을 따고 있겠다. 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움튼 새잎으로 우려낸 차로 짙은 어둠에 갇혀있던 푸른 불(火)들이 살아나서 푸른 수맥으로 되살아나고 싶은 시인의 봄날은 언제일까? 내가 만난 그 봄날 언저리에 그녀도 서성이고 있을지도.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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