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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대축(山天大畜) 받아쥔 재인통부
대회전의 출정식이 있던 날, 근위영민이 대산좌옹으로부터 비첩밀서를 받아왔다. 재인통부는 아침 도량을 마치고 비첩서를 열었다. 산천대축(山天大畜) 네 글자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주가 붙었다. 대축 이정 불가식길 이섭대천(大畜 利貞 不家食吉 利涉大川). 난제다. 근위영민이 통부 앞에 나섰다. 

"대운이 들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수성으로는 지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머물지 말고 밖으로 치고 나서야 대운이 실현될 상이니 통부의 행보가 이번 무림대회전에 판세를 흔들 것이라는 비첩입니다"

그동안 쌓았던 무공비법을 대사(大事)로 떨쳐 쉼 없이 돌아다니라는 전언이다. 대산좌옹이 누군가. 풍납골방에서 30년 칩거 중인 천하좌방의 어른이다. 전설의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에게 사사받은 두제자가 대산좌옹과 무율거사였다. 야산 선생 아래서 13년을 머물다 풍납토굴로 들어온 좌옹은 그간 대중대부와 무현통부를 길러냈고 이제 재인통부에 간헐적인 전언을 주는 정신적 지주였다.   

종석좌랑과는 비교가 안 되는 참모다. 한수 앞을 내다보고 열수를 건너뛰는 지략을 가졌으니 일찍 곁에 두지 않았던 게 후회될 지경이다. 그날로 재인통부는 근위영민에게 출장일정을 지시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방 점검과 천하열국의 통부들과 통신단자 즉석회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와대의 행보를 전해들은 낙엽총부는 인영좌랑과 재정나발을 불렀다. 해찬골두가 연일 구설잡술에 오르내리니 대책이 필요했다. 문제는 상승지세에 파죽지세를 겸해야 하는데 해찬골두가 발목을 잡으니 사사건건 지도부의 원성을 산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재정나발은 다른 생각을 가졌다.

"총부의 염려는 짐작하지만 해찬골두는 이미 산자락에 걸린 해입니다. 총선직후 초야에 묻힐 것이라는 보도는 사실 유무를 떠나 이미 강호에 파다한지라 노망이거나 실언이거나 모두 진성좌파의 검술비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입니다. 골두의 실언은 결국 낙엽총부의 부가가치를 절대지존으로 만드는 호재 아닙니까. 사정이 이러하니 감초가 섞인 약재라 여기고 개의치 마시길 바라옵니다" 입만 빠른 자가 아니다. 머리는 한치 더 빨리 움직이는 보배로다. 그러자 인영좌랑이 보고서를 내밀었다. 

대회전을 앞두고 강호민초들의 관전열망을 집계했사온데 최종결과가 무려 삼할지수라고 합니다. 숱한 무림대회전에서도 절대 넘지 못한 관심지수는 곧 좌성일통의 신호가 아닌가 짐작되는 상황입니다. 

"글쎄…인영공의 분석이 맞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골로납균의 창궐이 사전관심사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소. 자의적 해석은 삼가시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마시오" 좌성나발과 우성나발의 극렬한 입심대결로 천하지세가 양분지세다. 매판마다 좌우지세가 비슷하게 갈렸지만 이번에는 절대국면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정체절명의 상황 아닌가. 자칫 여의합사의 좌성 깃발이 절대과반을 넘지 못하면 지존우파의 득세로 와대전복의 탄핵잡술이 부상할 수 있다. 이는 절대 막아야 한다. 낙엽총부는 곧바로 부산방으로 말을 돌렸다.

부산방은 특별하다. 재인통부의 정치출발선이기도 하지만 무현통부의 독야청정술이 뒷심을 발휘환 좌성의 성지 아닌가. 낙엽총부가 와대입성을 위해 반드시 마방 서넛은 거둬들여야 하는 주요거점이다. 

-부산방의 민심은 지존우파의 득세로 흘러가고 있지만 여지는 있습니다. 핵심은 무현통부의 사람이 먼저술과 재인통부의 부산자존심술입니다. 영도마방은 재인통부의 모친지세가 남은 곳이니 노년층을 중심으로 모정술을 구사하십시오. 진구마방과 사하마방, 남구마방에서는 무조건 경제신술입니다. 강호의 자영업객에 구휼미를 가능한 조기에 공급한다는 점과 천공수송선을 천하열국에 실어나르는 국제공항 구태술을 또다시 퍼뜨리십시오. 믿거나 말거나 낙엽총부의 저음신공술이면 일주일 이상의 약발은 지속될 공산이 큽니다.

부산방으로 달려오기 직전 재정나발이 전해준 쪽지다. 낙엽총부는 청좌필마의 고삐를 죄고 영도는 물론 부산진, 사상을 돌아 자갈치까지 휩쓸었다.

# 자중지란, 지존우파의 상존변수인가
명출지상 상존변수(明出地上 常存變數). 무율거사의 여덟 글자의 핵심은 바로 교안행수였다. 교안대행이 지존우파의 방장에 올랐을 때 대행을 떼고 행수의 책첩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무수히 점친 무율거사였다. 도읍검관이 가야토굴을 수차례 찾아 거듭 예를 갖춰 가져온 행수책첩이지만 무율거사의 염려는 여전히 먹빛이 마르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무율거사가 책첩을 쥐어준 가장 큰 내막은 교안의 삼고초려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깜냥을 진단하고 무림대회 지휘권을 종인총괄에 넘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단숨에 낙엽과 종인의 맞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위기를 한고비 넘긴 셈이다. 문제는 교안과 그 마방에서 터져나오는 구설잡술이었다. 강호마방의 시정잡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졸부들이 비책서를 훔치거나 웃돈으로 얻어쥐고 무림대회 출전권을 따낸 흔적의 결과다. 내공을 익힌 마방의 강호고수들이 마방탈퇴와 무소속 마방의 백기를 흔들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지휘총책인 교안행수의 구설잡술이 터졌다. 정통예수 회합방은 골로납균 감염이 없다거나 영상잡범들의 수상한 방에 좌성의 그림자가 깃들었다거나 위성마방에 키 작은 사람은 입장불가라는 따위의 구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관악에 출전한 대호필부와 부천에 출전한 골수명진의 막말잡술은 기름을 부었다. 장애막말과 세월금기 잡술이 문제였다. 대호는 어차피 버린 패라지만 골수명진은 상징성이 있는 패다. 세월금기잡술은 이번 무림대회에서 절대 구사하지 말 것을 서약했는데 골수명진은 결국 좌성무사들의 부추김술에 목젖까지 차고 올라온 금기잡술을 꺼내고 말았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설리섬설'까지 내뱉었다. 가히 점입가경이다. 여기에다 배신승민이 노골적으로 교안행수를 겨냥하며 차기 마방대권을 노린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자중지란이다. 교안은 무율거사의 비첩 두 개를 종인총괄에게 넘겼다. 종로집중을 선언했으니 무림대회전 필승지책은 총괄의 몫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동아수진과 유철우사가 급히 부산방으로 날아가 도읍검관을 모셔왔다. 종인총괄의 재촉 때문이다. 전날 교안이 전해준 무율거사의 비첩 두 개를 펼쳤지만 도무지 내밀한 뜻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교이난생, 즉록무우(始交而難生, 卽鹿无虞)

첫 번째 비첩에 적힌 아홉 글자다. 밤새 생각을 던졌지만 종인총괄의 머릿속엔 해법이 번뜩이지 않았다. 도읍이 입을 열었다. 

"둔(屯)입니다. 둔은 세 가지로 풀이할 수 있는데 시작이 어렵다는 것과 사슴을 쫓는데 몰이꾼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홀로 산속에 깊이 들어간 형국입니다. 말에서 내리는 것이 순리인데 이미 무리가 산속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찌하는 것이 좋을지를 되묻는 비첩입니다. 바로 수뢰둔괘라고 합니다. 무율거사의 혜안입니다" 수뢰둔(水雷屯). 천지가 개벽한 뒤의 형상 아닌가. 비(水)와 우레(雷)가 혼돈지세로 만물이 움트는 바로 봄의 형상이다. 

두 번째 비첩을 펼쳤다. 
 

김진영 이사겸 편집국장

산상유수 건 군자이반신수덕(山上有水 蹇 君子以反身修德) 한참을 응시하던 도읍이 입을 열었다. "산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니 부조화와 자중지란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반드시 경계하고 만약 벌어졌다면 즉시무마와 진심반성술로 타개하는 것이 순리라는 비책입니다" 교안의 실수와 내부충돌을 미리 읽은 무율의 혜안이었다. 

종인총괄은 눈을 감았다. 도읍과 유철이 물러가자 고요가 찾아왔다. 동아수진이 묵필을 들고 왔다. 쉼 호흡을 하고 몇 자를 적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謨事在人, 成事在天.) 교안은 엎드렸고 자신 또한 성심을 다했으니 이제 모든 일은 하늘의 움직임에 달렸을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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