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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멘붕상태라고 야단이다. 이번 총선으로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잘못된 길을 갔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너무 쉽게 내준 절대권력의 민낯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국민들이 표로 심판했다"는 최강욱의 아전인수로 돌아오고 있다. 이 정도는 예고편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상상할 수 없는 나라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런데도 길 잃은 보수는 여전히 자리싸움이다. 집 나간 보수 수장 자리가 탐나는 홍준표는 30년 전 뇌물 이야기를 흘리며 침까지 질질거린다. 그러니 해체하라는 욕지거리가 당연해 보인다.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판은 개판이 됐다. 저마다 목청을 돋우고 벼슬을 부풀려 홰를 치기도 하고 이쪽저쪽 킁킁거리다 서열을 정해 줄을 서고 꼬리를 내린다. 그들 중 일부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주군들에게 말빨을 인정받아 등원에 성공했다. 그 대표주자가 김남국이다. 

김남국이 누구인가. 종편 정치시사프로에 고정출연했던 그는 조국수호대에 한평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듯 연일 조국옹호에 열을 올린 인사다. 같은 당의 조국 비판론자인 금태섭을 잡겠다고 경선에 뛰어들어 조국지지자들의 충성도를 높인 그는 막판 여성비하 추문에도 불구하고 가뿐히 금배지를 달았다. 그를 검찰에 고발한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1월 유튜브 방송에 고정 멤버로 출연해 여러 가지 문제의 발언을 했다. 특히 6·7·13·15·20회 방송에서 김 씨는 오프닝 멘트를 직접 맡았는데, 그 내용은 매번 똑같았다. "본 방송은 섹드립(성적 농담)과 욕설이 난무하는 코미디 연애 상담 방송이니 '프로불편러'(매사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 여러분이나 공자 왈 맹자 왈 찾으시는 분들은 청취를 삼가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이었다.

김 씨의 문제 발언을 보자. 그는 1회 방송에서 '강남 여자'가 싫은 이유에 대해 "뭔가 비싸게 요구할 것 같아. 여자들이 호텔을 간다는 거예요, 연애할 때"라고 했다. 20회에서는 "여자가 이렇게 따라왔어, 모텔까지 술 먹고. 근데 남자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으면 어떻게 해?"라고 스스로 묻곤 "아니 진짜로, 여자도 여기까지 따라와서 그냥 가긴 섭섭할 거 아니에요"라고 스스로 답했다. 23회에선 자신이 32세 때 한 여성이 허벅지를 만지고 '집에 바래다 달라'고 속삭였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발기요? 안 됐어" "만약 예쁜 여성이면 바래다는 줬는데 집으로 오라고 하면 좀 고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 등 이 유튜브 방송 출연진 12명은 이런 내용의 방송을 '성인물'이라고 표시하지 않은 혐의로 사준모로부터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그런 그의 이력이 인권 변호사다. 오거돈의 사퇴 파동은 공증서를 거래할 정도로 치밀한 시나리오로 드러났지만 성인지감수성 운운하는 여권 인사들의 아랫도리 수준은 안희정과 정봉주 등 이른바 실세 인사들의 도덕적 안하무인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기야 아랫도리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린내 나고 역겨운 막말 성찬은 야당도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기교에 있다. 이른바 진보는 수사에 미사여구까지 동원하는 돌려말하기 신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보수라고 자처하는 인사들의 막말은 거칠고 헐벗었다. 그 대표주자가 얼마 전 감옥에서 나온 전광훈이다.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전 씨는 대놓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다 구속됐다.

그는 공권력을 향해 "언론들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모든 구석구석을 다 조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집 대문 앞에 CCTV 4대를 설치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향해 "끝장났다. 문재인 너 보고 있냐 지금. 전광훈 손에 붙잡혀 내려오는 게 낫지 어른들(원로 목사들) 손에 붙잡혀 내려올래. 이 O아"라고 패악질이다. 여권에서는 이제 아예 전광훈이라는 이의 목청 높은 외침에 응답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도 응대를 안 하다 보니 그 소리가 광화문 한 바퀴 휘돌다 청계천 하수구 틈으로 사라진다. 어쩌면 이번 총선의 여권 결집은 전광훈의 공이 컸다. 

진보의 문장에도 하수구 냄새가 진동한다. 까놓고 둘이 만나 골방에서 끝장을 보면 될 말싸움을 전 국민을 상대로 중계방송하는 이들이 진보논객이다. 종편과 공중파는 총선 기간 내내 이들의 말싸움을 생중계를 했다. 유시민과 진중권부터 정봉주니 어쩌구니 하는 이들의 말싸움이다. 이런 말싸움은 진보 정치권의 전매특허다. 이들은 20대부터 논쟁의 전투력을 길러왔다. 대학가의 수많은 지하서클들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한 달에 2, 3차례 모여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사부터 마르크스의 혁명이론, 10월혁명을 열독하고 토론했다. 지금은 전향했지만 김영환의 강철서신은 친북인사들의 열독서였고 김지하의 오적은 운동권의 부적 같은 것이었다. 

그런 자들이 우리 사회의 정치주류가 되는 데는 종편이 일등공신이 됐고 유튜브는 영혼까지 쇄뇌시키는 마법의 바보상자가 됐다. 물론 이들을 말의 전사, 논리의 투사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아니러니 하지만 전두환이다. 지금의 주류 정치인이라는 면면을 보자. 이인영 이재명 정청래 유시민 박원순 송영길 등의 인사들은 하나같이 운동권 출신이다. 미 대사관의 담을 넘거나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젊은 시절 한때를 정의를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 투사들이다. 이론적으로는 얄팍하기 짝이 없었지만 열정과 정의감은 불같이 타올랐던 그들에게 논리적 무장을 시켜준 것은 우습지만 전두환식 억압통치였다.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을 엮은 군사정부는 이들을 감옥으로 보냈지만 영어의 세월 동안 이들은 사회주의 이론서부터 동양학과 서양철학사까지 줄줄이 꿰며 이론무장을 했다. 심심풀이로 읽은 무협지들은 논리에 상상력을 달아줬고 화법과 기교를 학습하는 교본이 됐다. 

이른바 보수들은 어떤가. 최루탄이 터지는 시절에도 치약을 바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샌님들은 세상과 담을 쌓았다. 누가 뭐라 해도 출세는 가문의 영광, 사법고시부터 행정고시 외무고시까지 세상의 모든 고시는 통과해야 하는 듯 열공했다. 이들이 판검사가 됐고 관료로 넥타이 움켜쥐다 정치선배들의 눈에 들어 그들의 수하에 줄을 선 이들이 보수 정치권이다. 

공자가 말했다. 자왈 향원, 덕지적야(子曰 鄕原, 德之賊也). 이 문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향원, 이른바 동네 어른들이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제법 이름께난 날리는 이들이다. 덕으로 이름을 얻은 이들이기 보다 가문의 뒷배이거나 중앙무대와 연줄이 있는 그렇고 그런 세상 입소문으로 동네에서 어깨 힘 좀 주고 다니는 이들이 향원이다. 그들을 대개 무골호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골호인(無骨好人)들은 줏대 없이 여기저기 영합하기 때문에 굳이 날을 세우는 법이 없다. 무골호인이 많은 곳은 조용하긴 하지만 발전이 없다. 어떤 문제가 드러나면 무골호인은 회피하기 십상이다. 대책 회의라는 것을 자주 하는 듯하지만 아무리 회의를 해도 결론이 없기 마련이다. 어떤 계획에도 반대하지 않고 이래도 가능할 듯 저래도 가능할 듯 고개만 기웃거린다. 어릴 적부터 남의 시선이 두려운 이들이다. 미움받는 일이 죽어도 싫기에 자신이 스스로 미움의 주체가 되는 일은 절대 하기 싫은 자들이다.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바른사람인 척, 정의로운 척, 뭔가 있는 척하는 척에 익숙한 자들이 향원이다. 공자가 이들을 찍어서 사용한 단어다. 공자는 이들을 적을 해치는 자라고 명명했다. 오늘의 말로 돌리면 수구골수보수들이다. 과거에는 이들을 지식인이라 불러주기도 했다. 지식인은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기에 신분제 사회에서 학대받던 농노의 비참한 생활에 관심 갖고 사회개혁을 외친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를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미안하지만 자신의 영달과 체면에 몸을 숨긴 향원이다. 이런 자들이 투쟁을 알리가 없다. 논쟁은 세 마디만 하면 얼굴이 벌겋다. 그러니 판판이 참패다. 왜 어디서 어떤 이야기로 날을 세워야 하는지 모른 채 남의 눈치나 보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에 귀를 쫑긋거리니 허구한 날 남의 뒤만 따라다닌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이들이 바로 수구보수 골통들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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