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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렬 정신과 전문의·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트라우마'가 대체 뭡니까? 필자가 재난피해자 심리상담업무를 하면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지진이나 화재 같은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은 소위 트라우마(trauma)라는 것을 입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필자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데 정작 그 '트라우마'라는 게 뭐냐는 질문이다.

쉽게 대답하자면 '마음의 상처'라 할 수 있겠으나, 이는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별거 아닌 일로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느끼거나 조금만 속이 상해도 흔히 쓰는 표현이라 트라우마를 마음의 상처로 번역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그럼 아주 큰 마음의 상처? 그렇다면 큰 상처와 작은 상처의 차이는 또 무엇이라 해야 하나? 육체적 상처는 눈에 보이니 출혈이나 조직손상 정도로 큰 상처와 작은 상처를 구분하여 '전치 몇 주입니다'라고 진단서 상 숫자로까지 경중(輕重)을 명시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 크기를 어떻게 재야 할까? 이런 연유로 트라우마가 뭐냐는 일견 매우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이 의외로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궁리한 답안은 '트라우마란 피해자의 인생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마음의 상처'라는 것이다. 즉 그 후유증의 경중에 따라 단순한 마음의 상처와 소위 트라우마라고 하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구분해보자는 것이다. 

사실 정신의학에서도 마음의 상처, 즉 심리적 외상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후유증에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집중돼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의학적 진단명이 바로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장애,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다.

그렇다면 트라우마의 후유증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일까? 뭔가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은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불안해하고 잠도 못 자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그러는 것을 흔히 본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그때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그에 대한 악몽까지 꾼다. 때에 따라서는 그 사건이 연상되는 특정 장소나 상황을 한사코 회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런 증상들을 트라우마 후유증으로 중시했고, 30여 년 전 필자가 정신과 전문의 시험을 준비할 때 'PTSD의 3대 증상'이라고 해서 외우던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 기억증상, 자꾸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거나 그에 관한 악몽을 꾸는 것, 둘째 회피증상, 그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는 장소에 가지 못하거나 그와 유사한 상황을 회피하는 것, 셋째 과민증상, 잘 놀라고 잠을 못 이루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이 세 가지를 트라우마 후유증의 핵심이자 가장 심각한 증상으로 보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관점이 조금 달라져서 트라우마 후유증을 어떤 특정 사건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격이나 인생이 어떻게 손상됐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게 된 것이다. 즉 트라우마 후유증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어떤 끔찍한 일을 겪음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과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통계편람에는 이러한 인격과 인생의 변화를 '외상적 사건과 연관된 인지와 정서의 변화'와 '사회적 직업적 기능의 손상'이라는 항목으로 기술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문제를 상담하고 진료해 온 필자도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가장 무서운 트라우마 후유증은 기억증상이나 회피증상 같은 게 아니고 그전에는 낙천적으로 살며 사람 좋다는 소리 많이 듣던 사람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매우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 돼 그 많던 친구들과 다 담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트라우마는 더 이상 개인적인 심리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운 일인가.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글에서 어떤 외상적 사건이 단순한 심리적 고통을 넘어 그 사람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내려가 일종의 '콤플렉스'를 만들고 그 '콤플렉스'로 인해 그 사람의 삶이 망가져 가는 과정들, 반대로 그러한 병리적 과정을 극복하고 잃어버릴 뻔한 인생의 행복을 다시 찾는 회복의 과정들을 소개함으로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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