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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장생포항과 미포만의 모습. 뉴비전아트포럼 제공
하늘에서 본 장생포항과 미포만의 모습. 뉴비전아트포럼 제공

하늘에서 바라 본 울산의 두 번째 포인트는 장생포다. 하늘에서 보면 장생포는 울산대교로 이어진 태화강의 끝자락과 용연 지나 온산으로 연결된 바닷길의 중심이다. 장생포는 비교적 현대에 알려진 울산의 항구이지만 그 역사는 태초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고래다. 장생포 남쪽을 돌아 황성동과 온산으로 이어지는 바다는 1만년전 선사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 증좌는 조개무지로 드러난다. 놀랍게도 여기서는 사슴뼈로 만든 화살촉이 박힌 고래뼈가 발견됐다. 포경의 증좌다. 그래서 장생포는 고래잡이의 전진기지가 됐는지도 모른다. 

# 태화강 끝자락지나 용연, 온산까지 바닷길 잇는 항구
장생포 하면 지금은 고래고기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고래생태관광과 고래문화마을을 연상하지만 사실은 울산 공업센터의 출발지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울산지구를 특정공업지구로 결정하고 장생포동 납도(현 ㈜동양나이론 공장부지 안)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했다. 당시 박정희 의장은 장생포에서 울산공업지구 설정 선언문을 낭독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초석을 다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린 1962년 2월 3일 울산군 대현면 매암리 납도 언덕 (현 남구 장생포로 고래로 84번지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구 동양나이론] 공장 내)에서 당시 국가재건위원회 의장 박정희 육군 대장이 울산공업지구 지정 선언문을 낭독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영상 캡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초석을 다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린 1962년 2월 3일 울산군 대현면 매암리 납도 언덕 (현 남구 장생포로 고래로 84번지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구 동양나이론] 공장 내)에서 당시 국가재건위원회 의장 박정희 육군 대장이 울산공업지구 지정 선언문을 낭독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영상 캡처

"대한민국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종합제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기타 관련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경상남도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리 다운리, 농소면 화봉리 송정리를 울산공업지구로 설정함을 이에 선언합니다.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본격적인 공사 시작을 알리는 발파가 진행됐다.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그 굉음과 함께 포경 전진기지 장생포는 대한민국 공업입국의 전진기지로 또다시 변신하게 된다. 공업화와 포경금지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장생포는 도시도 아닌, 그렇다고 과거 고래로 흥청했던 어촌도 아닌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대형고래 해체 작업에 몰려든 사람들.
대형고래 해체 작업에 몰려든 사람들.

# 고래잡이 액막이 해주던 '장승' 에서 지명 유래
그 역사의 땅 장생포는 이야기가 굽이친다. 장생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지명은 아니다. 고지도나 지리지에는 대현이라는 이름이 전하고 그 하부 마을의 이름 어디쯤에 장생포가 익숙한 지명으로 불려왔던 것으로 전한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야음장생포동이지만 본래 이곳은 경상남도 울산군 현남면 지역으로 장승개 또는 장생포라 했다. 

훨씬 이전인 조선 태종 7년에는 이 일대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14년에 시행된 전국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울산군 대현면(大峴面) 장생포리가 됐다.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면서 장생포동으로 개칭돼 행정동인 장생포동 관할이 됐다. 1998년 야음1·장생포동에 들어갔으며, 2007년 야음장생포동 관할로 바뀌었다.

장생포는 지리적으로 울산광역시 남구의 동북부에 있으며, 동쪽과 남쪽은 울산만에 닿아 있고 매암동, 용잠동 및 고사동과 이웃한다. 동해남부선과 울산항선의 종착지로, 장생포역과 울산항역이 있으며, 동해안까지 뻗은 장생포로(長生浦路)가 31번국도 및 부두로(埠頭路)와 연결된다. 

# 고래바다라 불린 동해, 무자비한 포경에 씨 말라
장생포는 고래를 빼고 이야기가 안되는 곳이다. 구한말인 지난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일본으로 가다 장생포 앞바다에서 큰 고래 떼를 발견한 것이 근대 포경의 역사라 기록되고 있지만 장생포와 고래의 인연은 지명에서 보듯 훨씬 오래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지금의 장생포는 고래잡아 돌아오는 진양호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이정표와 무수히 늘어선 고래고기집들이 불을 밝히지만 비린내와 섞인 건너편 정유공장들의 기름낀 습기가 오늘의 장생포를 이야기한다. 

장생포. 장생은 대체로 장승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장승은 짐승이나 외경의 대상이었고 과거부터 고래가 출몰했던 흔적이 이곳을 장승개 또는 장생포로 불러왔던 유래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고 보니 장생포에는 유난히 낯선 이름이 많다. 지금은 매립된 죽도에 있던 신주당은 인류사에서 드물게 고래풍어제를 모시던 곳이고 천지먼당과 한개먼당은 전설같은 인간의 바람이 큰 이름으로 액막이를 하던 상징이었다. '고래등 같은 집'이 부자를 상징하듯 고래는 언제나 인간에게 외경의 대상이었다. 바로 그 경물스런 고래를 갈라 고기와 기름을 생계로 이어온 사람들에게 이름 하나, 지명 하나도 상징과 영혼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싶었다

2000년 초반까지 장생포항에 정박했던 포경선. 울산신문 자료사진
2000년 초반까지 장생포항에 정박했던 포경선. 울산신문 자료사진

# 1962년 어촌 마을서 울산 공업지구로 변화
지리적으로 보면 7,000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반구대에 남긴 고래 암각화는 어쩌면 고래 생태백과사전인지도 모르고 고래 숭배의 제단쯤으로 신성시했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반구대 물길이 동해와 맞닿는 지점에 장생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상징이 현실이 된 고래가 바로 귀신고래다. 귀신고래(Korea Gray Whale). 이름에 대한민국을 뜻하는 '코리아'가 들어 있는 가슴벅찬 고래다. 길이가 무려 20m, 몸무게는 14~35t에 달한다. 대형 잠수함 같은 거구가 동해바다를 뚫고 치솟는 장관은 압권이다. 바로 그 바다, 귀신고래가 하늘로 웅비하던 그곳이 고래바다다. 고래바다라는 과거 경해(鯨海)로 불렸다. 하지만 러시아를 선두로 경해를 탐내던 열강들은 한세기에 걸쳐 무자비한 귀신고래 사냥에 나섰다. 결과는 참혹했다. 

기록에 따르면 1912년 한해 동안 귀신고래는 무려 188마리가 작살과 포탄에 맞아 육지로 끌려왔다. 남획의 결과는 씨를 말렸고, 50년 전 마지막으로 두 마리의 귀신고래를 작살로 찔러죽인 것이 인간에 의한 마지막 도륙이었다. 씨가 마른 귀신고래는 더 이상 이 바다를 찾지 않았다. 

# 반구대와 함께 지역 생태문화관광 중심지로 변신 시도
작살을 거두고 흠모의 눈빛으로 망망대해를 쫓는 인간에게 귀신고래는 더 이상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고도성장으로 고래고기 살점을 더 이상 탐내지 않아도 먹고 살만하던 시절, 제6진양호가 마지막포경 허가를 받아 동해를 달리던 1977년, 귀신고래 두 마리가 동해바다 어디쯤 포효했다고 전해지지만 더 이상 '~카더라'도 사라지고 있다. 장생포는 1899년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포경기지를 세우면서 고래잡이의 전진기지가 됐다. 

하지만 고래를 싹쓸이 한 것은 일제였다. 일본인이 세운 동양포경주식회사는 동해의 끝 함경북도 경흥부터 제주까지 포경기지를 갖췄고 그 중심을 장생포로 했다. 지금 장생포에 동상으로 남아 있는 미국 탐험가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1884~1960)가 귀신고래를 연구한 것도 일제의 동양포경주식회사 장생포 기지였다. 그는 동해바다에 출현하는 귀신고래에 대해 조사했고 우리의 귀신고래가 캘리포니아 Gray Whale과 회유로가 다른 고래인 사실을 밝혀내고 KOREA란 이름을 선물했다. 

장생포가 다시 한 번 고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반구대암각화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질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울산이 대한민국 공업입국의 전진기지이기도 하지만 만년쯤 전, 한반도 인류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오래고 먼 선사문화 보고임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반구대에 새겨져 있던 고래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장생포는 고래특구의 명성을 찾았다. 이제 장생포는 또다른 변신 중이다.  김진영 편집국장 cedar09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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