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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강이었다.
인간이 메우고 그 위에서 삶을 영위했다.
형산강의 거대한 물줄기가 영일만에 닿기 전 내륙으로 머리를 돌려 송도를 만들어 냈다.
강은 그렇게 흘러 동빈내항과 만나 다시 영일만으로 흘렀다. 일제 강점기 하류 직강공사와 포항제철 건설로 강의 생명은 시간을 다했다.
홍수 예방과 택지난을 해소하기 위해 강의 줄기는 끊어졌고 흙과 콘크리트의 견고한 터전위에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형산강이 품은 송도, 죽도, 해도, 상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들은 육지로 바뀌었고 4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단절된 형산강의 물길을 복원한 포항운하에 관광객들을 태운 크루즈선이 지나가고 있다.
단절된 형산강의 물길을 복원한 포항운하에 관광객들을 태운 크루즈선이 지나가고 있다.

# 물길 끊기자 극심한 오염
울산 백운산에서 발원한 형산강의 종착지는 포항 영일만이다. 백운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남동쪽으로 흘러 태화강을 만들었다면, 북동쪽으로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이어지는 물줄기가 형산강이다. 태화와 형산은 그래서 형제의 강이다. 
 
형산강이 몸을 부풀려 영일만에 다다를 즈음 만나는 곳이 포항 동빈내항이다. 
 
강의 큰 줄기는 영일만으로 빠지고 작은 줄기 하나가 내륙을 가로질러 동빈내항으로 흘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직강공사로 흐름이 느려지고 1960년대 말부터 포항제철 건설로 인한 택지난을 해소하고 상업지역 조성 목적으로 매립이 진행됐다.
 
원래 강이었지만 그 흔적은 사라졌다. 흙으로 메워진 강위에 건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한줄기를 잃어버린 동빈내항의 신음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정체된 물줄기로 내항은 오폐수와 함께 오염물질이 퇴적돼 코를 찌를 듯한 악취와 물고기조차 살수 없는 물로 변했다.
 
시가지를 관통해 동빈내항으로 연결된 양학천, 칠성천이 도심 배수로 역할을 담당해 오염을 가중시켰다. 홍수 시에는 하수처리장 용량부족으로 수문마저 개방해 무방비로 오염에 노출됐다. 아둔하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신음하는 강도, 그걸 지켜보며 살아가는 인간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친수공간으로 조성된 운하 주변은 이제 주민들의 산책코스로도 자리매김 했다.
친수공간으로 조성된 운하 주변은 이제 주민들의 산책코스로도 자리매김 했다.


# 환경복원·도심재생 프로젝트
그러나 포항 제일의 불야성을 자랑했던 동빈내항과 중심시가지는 신주거지 개발과 산업구조 변화, 도시 확산의 영향으로 슬럼화 되며 그 빛을 잃어갔다. 
 
4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강을 되살리고자하는 노력이 일기 시작했다. 포항운하 건설사업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환경복원과 도심재생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젝트였다.
 
주거지 상실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을 포항시는 끈질긴 설득으로 해결하고 2012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1,600억원을 들여 주택 479개동 827세대 2,225명을 이주시켰다. 2년여의 공사 끝에 2013년 끊어진 형산강의 물줄기 1.30km가 동빈내항으로 연결됐다. 
 
포항시는 수로 주변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했다. 공원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고 철의 도시에 걸맞는 공모를 통해 조각상 50여개를 곳곳에 놓았다.
 
수로를 따라 하나둘 카페가 들어섰고 관광객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도심 속을 누비는 색다른 여행을 즐겼다. 크루즈체험은 포항운하 관광의 정점으로 자리잡았다. 국내 첫 도심 속 크루즈여행이라는 매력이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셈이다. 이 낯선 여행의 묘미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에 2017년부터 2회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 국내 첫 도심 속 크루즈 체험
포항운하관 하부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다. 1인당 1만2,000원이다. 크루즈선은 당일 승선객 규모에 따라 44인승 연오랑호와 54인승 세오녀호 그리고 11인승 아쿠아파티오호가 출항한다.  
 
주말에는 수시로, 평일에는 정시에 출발한다. 운하의 시작점인 운하관에서 시작해 수로를 거쳐 동빈내항~형산강을 거슬러 운하관으로 돌아오는 40분 코스다.

강변도로 밑을 통과해 시가지로 난 수로를 따라 배는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전진한다. 

수로를 따라 조각상과 공원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수로 주변엔 산책 나온 주민들과 아이들, 그리고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의 풍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배는 폭이 10여m인 좁은 수로를 따라 탈랑교, 말랑교, 어쩔랑교 등의 인도교와 도로를 머리에 이고 미끄러진다. 

10여분쯤 주변 풍광에 눈길을 주다보면 수로폭이 확장되며 왼편으로 해산물로 유명한 죽도어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시장엔 사철 풍부한 해산물의 거래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뒤쪽으로 이어진 식당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사람의 삶은 한 걸음 물러서서 구경하면 늘 느긋하다. 치열한 현장의 땀도 소리도 유리창너머 거리를 보는 것 같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배안에서는 왁자한 호객소리도 멀어지고 비릿한 생선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 해산물 천국 죽도시장
배는 동빈내항을 거쳐 포항구항으로 달린다. 요트 계류장과 포항함을 스치고 조선소를 벗어나면 구항이다.
 
그 옛날 구룡포보다 더 활기차고 포항 경제를 이끌었다던 동빈내항은 쇠락한 모습이지만, 아직 그 굳건함을 지키는 듯하다. 동빈내항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을 위한 전초기지로 개발된 동해안 핵심 어항이었다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항을 빠져나와 영일만으로 접어든다. 저 멀리 포스코의 높은 굴뚝들이 압도한다. 울산과 더불어 공업입국의 거대한 담론아래 건설된 포항제철은 잿빛으로 고요하다.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만 없으면 잠들어 있는듯하지만 야경크루즈를 타면 그 표정이 다르다. LED로 불 밝힌 경관조명의 휘황찬란함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크루즈선은 송도해수욕장을 끼고 한 바퀴 돌아 원점회귀 한다. 4층 규모의 포항운하관이 형산강 하류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서있다. 운하관에는 포항의 역사와 더불어 운하의 개설과정과 전후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자연과 인간의 상생
사람에 의해 물길이 막혔고 사람에 의해 다시 열렸다. 다시 연결되기까지 4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열린 물길로 사람이 몰려들었고 수질을 맑아졌으며 환경은 되살아났다. 관광활성화로 수익 창출은 덤으로 얻었다. 포항운하는 이렇듯 삶의 건강성 회복이고 복원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현장이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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