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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그동안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경제 성장이 국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하며 국력을 키우는데 집중했고, 사람들은 물질적 부(富)가 인생의 최대 목표인 양 심력을 다했다.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상인 삶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구촌을 엄습한 코로나19는 인간의 욕망에 제동이라도 걸 듯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정지시키거나 감속시켰다. '주말에 만나는 인문학' 네 번째 시간에는 박삼수 교수와 함께 코로나 사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고전의 가르침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그간의 삶을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새겨볼 만한 고전의 가르침이 있는가.
- 일찍이 공자는 사람을 네 등급으로 분류했다. 그 가운데 셋째 등급은 '곤경을 겪으면서 배우는 사람'이고, 최(最)하류인 넷째 등급은 '곤경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다.
코로나 사태는 현재 유례없는 위협을 가하며 우리를 곤경에 빠뜨렸다. 또한 동시에 우리에게 그간의 삶을 되돌아볼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저 무대책으로 이번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번 곤경을 겪으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전화위복의 전기를 마련하는 지혜로움을 발휘해야 한다. 문득 동양의 철인(哲人) 노장, 즉 노자·장자의 가르침과 경고가 뇌리를 스친다.
 
△ 왜 하필 노장(老莊)인가.
- 오늘날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인한 부담이 날로 가중되면서, 우리는 인간 본연을 망각한 채 심각한 가치관의 왜곡과 편향(偏向)에 내몰려 있다. 또한 그 부작용으로 너나없이 심신의 피로와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힐링(healing) 신드롬과 인문학 열풍은 바로 그 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 증진시키기 위한 방향타이자 돌파구다.
 
공자 사상의 핵심이 '인(仁)'이라면, 노자 사상의 핵심은 '도(道)'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우주의 근원이자 본원이니, 우주 만물은 바로 '도'에서 창조됐다는 이론이다. 그런 '도'의 가장 큰 특성은 다름 아닌 '무위자연'이다. 그것은 노자 사상의 본질이자 핵심 정신으로, 진실로 우주 만물의 '저절로 그러함[自然]'에 순응하며 '결코 의도적으로 이루어 가려는, 무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無爲]', 곧 순리(順理)를 따르는 속성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 사회의 어지러운 국면과 일반 국민의 힘든 삶은 대개 물질 가치에 대한 지나친 편향이 낳은 사람들의 세속적 탐욕의 산물이다. 하여 노자는 강력히 요구한다. 모름지기 사람은 만사에 '도'의 '무위자연' 정신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국가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고, 천하 만민의 안녕과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의 사상은 노자의 사상을 계승해 나름의 발전을 시킨 것이다. 노자가 국가 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큰 관심이 있었다면, 장자는 오히려 개인의 심리적 안녕과 정신적 해탈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다. 장자의 사상은 바로 '사람이 자신의 한 몸을 온전히 지키며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 진정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철학적 고뇌와 사고(思考)의 결정(結晶)이다. 이 같은 노장 사상은 예로부터 정치 사회적 혼란이 가중된 시기마다 사람들의 관심과 애호를 받으며 흥성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국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심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지친 마음을 달래고, 아픈 가슴을 치유해야 하는 만큼 노장의 일깨움과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자명해진다.
 
△ 노장의 가르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 노장의 가르침은 한 마디로 말하면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기고, 물러남으로써 나아가며, 비움으로써 채울 수 있는 '무위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그것이 오히려 심신의 안녕을 얻고, 생활의 여유를 찾으며 보다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노자의 가르침을 보자.
"욕망의 항아리를 부여잡고 가득 채우려 하기보다는 애당초 그만두는 게 낫다. 재간(才幹)의 칼날을 갈아 한껏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전할 수가 없다. 황금과 백옥(白玉)이 집 안에 가득해도 능히 지킬 수 있는 이 없고, 재물 많고 지위 높다고 거들먹거리면 화를 자초하게 되나니! 공(功)이 이루어지고 나면 몸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천지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이다"(『노자』 9장)
 
부귀공명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사람이 재간과 예기(銳氣)를 지나치게 과시하면, 남에게 미움을 사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뿐이다.
 
금은보화가 곳간에 가득하다고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고, 부귀공명에 취해 교만 방자하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처신 처사에 적정(適正)함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세상의 온갖 명리(名利)에 대한 탐욕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나아갈 줄을 알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고, 다툴 줄을 알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공을 세운 뒤에는 공로자임을 자처하며 교만하고, 또 상훈(賞勳)을 독차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도운 뭇사람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겸허히 물러나 몸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천지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처신이다. 또한 그처럼 공로를 자부하지 않으면, 그 공로는 오히려 더욱 길이 빛날 것이다.
 
노자는 또 '부드럽고 약함이 굳세고 강함을 이긴다'(『노자』 36장)고 말한다. 예컨대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하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쳐서 무너뜨리는 데에 물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노자』 78장)는 논리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얘기는 익히 들은 바이고, 근간 장마철에 홍수가 집채는 물론 철도와 교량까지도 한순간에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으니, 수긍이 갈 만도 하다. 하지만 평소 우리는 누구나 굳세고 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냥 과도한 욕심을 부리며 주먹에 잔뜩 힘을 준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고 하였다. 세상사가 사람이 바라는 대로 다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사람이 오감(五感)의 과도한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 때문에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절제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 부작용과 폐해는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장자의 가르침을 보자.
장자 인생철학의 핵심은 바로 '소요유(逍遙遊)' 사상이다. '소요'란 일체의 현실적 속박을 벗어나 한껏 자유(自由)·자재(自在)로운 상태이고, '유'는 교유(交遊)의 뜻으로 사람의 처세와 처신을 말한다. 한 마디로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는 곧 어떠한 속박이나 구속 없이 절대 자유를 만끽하며 한가로이 자재하고 자적(自適)하는 경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소요유'의 삶을 살 수가 있는가? 모름지기 '무기(無己)''무공(無功)''무명(無名)', 즉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공로를 좇지 않으며, 명성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장자의 설명이다. 장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생명 건강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는데, 특히 정신적 건강과 안녕을 최우선시하며 그 어떤 부귀공명도 마다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그러니 그는 가히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힐링'의 선구자나 다름이 없다. 장자는 그야말로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고 한 옛말의 경고를 뼈저리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부와 세속적인 성공이 마치 우리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켜 주고 있지 않은가.
 
△ 노장의 가르침이 이론적으로는 참 좋은 얘기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 노자가 말했다. '상등 선비는 '도'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을 부지런히 실행하고, 중등 선비는 '도' 이야기를 들으면 긴가민가하며, 하등 선비는 '도'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을 크게 비웃는다'(『노자』 41장)

노자도 당시 '상등 선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의 '무위자연'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반신반의하거나, 심지어는 어불성설이라며 비웃기까지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노자의 '도' 사상이나 장자의 '소요유' 사상의 참뜻과 진가를 알고 부지런히 실행하기는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만사는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일수록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행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우리의 빛나는 인생을 위한 일인 만큼, 노장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는 '경고'로 여기며 겸허히 받아들여 열심히 배우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시작이 반이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찍이 공자가 '인(仁)이 어디 멀리 있더냐? 우리가 진실로 인하고자 한다면, 인은 바로 다가올 것이다'(『논어』'술이')라고 했듯, 목표 의식만 진실하고 확고하다면 그 무엇이 어렵겠는가.        강현주기자 uskhj@ulsanpress.net

●박삼수 교수
경북대학교, 타이완(臺灣)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각각 중문학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출판부장,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학과 방문교수를 거쳤다. 현재 울산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중국 산동사범대학교 대학원 교외논문지도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는 '쉽고 바르게 읽는 논어' '쉽고 바르게 읽는 노자' '공자와 논어, 얼마나 바르게 알고 있는가?' '장자' '손자병법' '왕유 시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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