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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희 시인님은 저보다 스무 살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냥 마음 편하게 형이라 부르고 싶은 분이지요. 동시뿐만 아니라 동화, 시와 시조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젊은이보다 많이 하며 대구 문인협회를 이끄는 회장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할 동시 책은 도서출판 청개구리에서 출간한 '판다와 사자'입니다. 제목이 무시무시한데 표지를 보면 대나무를 안고 있는 판다가 화분을 팔고 장바구니를 든 사자가 화분을 삽니다. 그럼 표제 시를 읽어봅니다.

판다와 사자가 시장에서 만났다. 판다는 팔고 사자는 샀다.  '판다와 사자' 전문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역시 허를 찌릅니다. 이렇게 박방희 시인의 동시는 짧고 간결하지만, 늘 독특한 발상과 기법으로 시 속에 삶의 철학을 담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판다와 사자가 없으면 아마 세상이 굴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볼볼볼/ 뚫린 입으로// 말이 아니라/ 글자가 굴러 나온다//똥도 가끔 눈다  '볼펜' 전문

말 대신 글이 굴러 나오는 입을 가진 볼펜이 글쎄 사람처럼 똥도 눈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데 이렇게 톡톡 튀는 발상의 전환이 할아버지지만 여전히 개구쟁이 닮은 시들이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동시 책에도 많아 즐겁습니다.

산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책이라/ 그림들도 좋고/ 걸음걸음마다/ 읽을 게 많아 좋다/ 책상 앞에서 읽는/ 교과서도 있고/ 참고서도 있지만/ 걸으며 보고 듣는/ 생각하는 산책도 있다  '산책' 전문

이시향 아동문학가
이시향 아동문학가

마지막으로 이 동시집에서 제 마음을 가장 끈 작품 '산책'을 읽어봤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학교에서 학원으로 돌리며 읽고 있는 책이 어린이들에게 과연 살아있는 책인지, 가끔 엄마, 아빠 손잡고 거니는 산책이 자라는 어린이에게 생각이 크게 자라는 살아있는 책이라는 경종을 울리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좋은 시들을 더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데, 박방희 시인의 동시는 한번 읽고 마는 시가 아니라 어린이에게 엄마나 아빠가 여러 번 읽어줬을 때 더 진가를 발휘합니다. 동시집 '판다와 사자'를 책 읽기 좋은 계절을 맞이해서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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