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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남평 문씨 일가의 노력으로 일군 아홉산의 맹종죽숲.  나무가 행복한 숲을 만들기위한 수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400년 남평 문씨 일가의 노력으로 일군 아홉산의 맹종죽숲. 나무가 행복한 숲을 만들기위한 수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홉 개의 골짜기를 품은 산이라 해 아홉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골과 마루를 뒤덮은 나무들이 울울창창하다. 맹종죽과 금강송들이 자리를 잡고 수 백 년의 시간을 견뎌왔다. 물과 햇빛과 땅과 공기의 속에서 저 홀로 커온 것 같지만 아홉산 숲은 철저히 사람에 의해 보호되고 키워졌다. 고된 노동의 결실이지만 이 숲엔 사람의 흔적이 없다. 그저 나무가 행복한 숲을 만들려는 이들의 정성이 쌓여 장엄한 숲을 일구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의 고난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낸 비밀의 숲이다.
 
# 문중의 힘으로 가꾼 나무가 행복한 숲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미동마을에 아홉산숲이 있다. 남평 문씨 일가가 400여년의 시간을 지켜온 곳이다. 대나무, 편백나무, 금강송이 온통 뒤덮고 있는 이 숲은 16만평에 이른다. 낮은 구릉을 따라 펼쳐진 숲길은 호젓하고 정갈하다. 비가 금세 지나간 9월의 숲은 싱그럽고 기운 충만하다.

문중산이다 보니 관리차원에서 유료로 운영된다. 5세 이상 1인당 5,000원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나 마지막 입장시간이 오후 4시30분까지다. 월요일은 휴무.

매표소를 지나 숲으로 향하는 첫 걸음에 마주치는 것은 구갑죽이다. 표피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겼다해 구갑죽이라 이름 붙여진 이 대나무는 짧고 굵다. 엇갈려 자라듯이 매듭을 짓고 자라는 구갑죽은 1950년대 말 중국, 일본을 거쳐 들여와 뿌리를 내렸다. 중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되기 전 국내에서는 여기서 밖에 볼 수 없었던 귀한 몸이었다.

구갑죽 정원 뒤편으로 종택인 관미헌이 자리 잡고 있다.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라는 뜻을 가진 종택은 남평 문씨 가문의 철학을 말하는 듯 다소곳하게 자리 잡았다. 1961년에 건립된 이 ㄱ자형 기와집은 당시 아홉산 숲의 나무로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지었다. 지금도 산주 일가가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된다.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가진 관미헌. 60여년 전 아홉산의 나무로 못을 전혀 쓰지않고 지은 이 집은 아직도 산주의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가진 관미헌. 60여년 전 아홉산의 나무로 못을 전혀 쓰지않고 지은 이 집은 아직도 산주의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기다
관미헌을 나와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선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엄청난 규모의 대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나무 중에서도 가장 굵은 맹종죽이다. 맹종죽은 옛날 중국의 효자 맹종이 한겨울에 편찮으신 어머니가 먹고 싶다 하시는 죽순을 구할 도리가 없어 눈밭에 뜨거운 눈물을 떨구었더니 솟아났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죽순의 속은 꽉 차 있지만 자라면서 속을 비운다. 하늘로 오르면서 매듭을 짓고 둥글고 단단한 몸을 만든다. 꽉 찬 굳건함이 아니라 텅 빔의 부드러움으로 한 세상을 난다. 

대숲 한가운데 둥글게 대가 없는 곳이 아홉산의 신령스런 기가 모인다 해서 마을사람들이 궂은 일이 있을 때 치성을 드리고 굿을 하기도 해 굿터라 불린다. 이곳에서 영화 '군도' '협녀, 칼의 기억' '대호'의 여러 장면들이 촬영됐다. 지금은 '더킹-영원의 군주'의 촬영소품이었던 지주가 남아 관람객들의 포토존으로 각광받고 있다.

거북이 등껍질을 닯아 구갑죽이라 불리우는 대나무. 50여년전 중국에서 들여와 관미헌 정원에 뿌리를 내렸다.
거북이 등껍질을 닯아 구갑죽이라 불리우는 대나무. 50여년전 중국에서 들여와 관미헌 정원에 뿌리를 내렸다.

# 400년의 시간을 딛고 우뚝 선 금강송
굿터 맹종죽을 지나면 바람의 길을 따라 금강송 군락을 만난다. 400년의 시간을 건너온 금강송의 위엄은 아름드리로 우뚝하다. 116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됐다.

이렇듯 잘 보전된 숲에도 위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집안의 수저까지 공출해 가고, 급기야 송진 채취에 나무까지 베어내 반출하기 시작했다. 일본 순사들이 아홉산까지 그 침략의 발을 들이댔다. 이때 문중 어른이 일부러 놋그릇을 숨기다 들킨 것처럼 속이며 '조상들 제사를 어떻게 모시느냐'며 땅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고, 순사들은 놋그릇만 가지고 슬며시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

수탈의 손길에서 벗어난 금강송들은 그래서 송진 채취 상처 하나 없이 미끈하다. 운 좋게 한국 전쟁의 참화도 숲에서 땔감을 구하던 어려운 시절의 피해도 지켜냈다.

아홉산숲의 금강송은 봉화의 금강송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봉화의 금강송이 올곶게 하늘로 치솟았다면 이 숲의 금강송은 뒤틀리며 자란다.

봉화·울진지역을 벗어난 금강송은 세월이 지나면서 토질 등 자연환경에 따라 그 특징이 변한다는 것이 사실처럼 다가왔다.
 
# 국내 최대규모 맹종죽숲
숲의 길은 여러 갈래다. 어느 곳으로 가든 숲은 풍성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평지대밭으로 향한다. 약 1만 평 규모로 아홉산 숲에서 가장 큰 맹종죽 숲이다. 1960~70년대 부산 동래지역 식당에서 잔반을 걷어오고 분뇨차를 불러 거름을 대면서 키워낸 숲이다. 전국에서 맹종 단일품종으로는 최대 규모다.

솟아오른 초록의 기둥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굵기가 두 뼘이 넘는 대나무들이 빽빽하다.

 

400여년의 시간을 건너온 금강송을 배경으로 가을하늘이 파랗게 물들어있다. 아홉산숲의 금강송 119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됐다.
400여년의 시간을 건너온 금강송을 배경으로 가을하늘이 파랗게 물들어있다. 아홉산숲의 금강송 119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됐다.

걷다보면 하늘을 가린 채 솟은 대나무들이 바람에 수런거리는 소리가 낯설다. 도시의 바람은 그 소리가 날카롭다. 빌딩 사이를 돌아 몰아치는 바람의 색이 회색이라면 숲에서의 바람은 멀리서부터 그 기척을 드리운다. 두런거림의 소리는 골짜기를 지나 능선을 타고 오르며 그 존재를 먼저 알린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골과 골골 건너오는 바람의 부드럽고 때론 강하다. 골짜기를 닮은 듯 가락을 타고 넘어오는 숲의 바람은 그래서 초록빛이다.
 
#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
아홉산숲 문씨 문중의 노력은 1600년대 부산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기존의 숲을 조림하면서 해방 후에는 편백나무와 잣나무 집단조림을 시작하며 임도를 개설하는 등 체계적인 조림의 틀을 잡았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고, 뒤이어 상수원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됐다.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자연생태계는 보존됐다. 문씨 일가는 사람의 손으로 가꾸는 대신 인공적인 구조물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사람을 위한 숲이 아니라 나무가 행복한 숲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2002년 산림청으로부터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03년 울산 생명의 숲의 식생조사 결과 멸종위기종인 대흥란을 비롯 총 529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북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천연기념물인 새홀리기, 새매, 붉은배새매 등 86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깊은 들숨에 한껏 가벼워지는 발걸음
2시간 남짓 숲속으로의 산책은 원점회귀로 끝이 났다. 여름을 지낸 숲이 내뿜는 기운은 강건하다. 숲속의 공기는 바깥과 다르다. 태양의 열기에 데워지지 않고 시원하다. 깊은 들숨에 몸 속 깊숙한 세포 하나하나를 깨운다. 숲길을 걷는 걸음은 그래서 가볍다. 400여년 숲을 지켜온 수고에 숙연해진 마음은 덤이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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