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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일 기준 울산의 전체 43만 7,000가구 중 아파트 가구는 26만 3,000가구로 전체의 60.1%에 달한다. 열 명 중 여섯 명은 아파트에 산다는 얘기다. 이처럼 아파트가 우리 주거문화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도시 주거문화를 이끌고 있는 아파트 거주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에 자리 잡은 북구 매곡 푸르지오 1단지 아파트 전경. 최근 들어 주변으로 신설 아파트들이 급증하고 있다.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에 자리 잡은 북구 매곡 푸르지오 1단지 아파트 전경. 최근 들어 주변으로 신설 아파트들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주택정책을 놓고 옳다 그르다 끝없는 말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안 되는 땅 덩어리에 수도권 어딘가에 발 붙여 살겠다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까지 아등바등이다.
 
요즘 북구는 아파트가 숲을 이룬다. 물 맑고 공기 좋고 교통환경 등 그야말로 주거지로서 최고인 까닭이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도권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는 전혀 다른 평화와 여유로움이 있다. 눈 돌리면 푸른 산이요, 광활한 바다다. 아이들 손잡고 적당히 땀 흘릴 공원도 널려있다.
 
북구 매곡 푸르지오 1단지(북구 신천로 92)를 찾았다. 성화의 계절을 지나 열매가 주렁주렁 수확의 결실이 익어가는 계절이건만 코끝에 매화향기가 넘쳐나는 것만 같다. 매곡(梅谷)이라는 지명 탓이다.

일찍이 매화는 매우 우아한 꽃으로 전통적으로 선비들에게 많은 애정과 관심을 받았다. 예부터 지명에 매(梅)자가 붙은 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는 지명 유래담이 널리 회자된다.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란 '매화꽃이 만발해 땅에 떨어져 기를 만들어 내는 형국'으로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고 복을 받는 지형이라는 의미다.
 
그런 한복판에 매곡 푸르지오 1단지가 자리 잡았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지 선택은 가히 탁월한 신의 한수가 아닐까. 동대산 산줄기가 동천강을 향해 달음질치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 터를 일군 매곡 푸르지오 1단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세에 자리를 잡았다.
 
아파트 등 뒤론 동대산이 병풍으로 둘러섰고 앞으로는 동천강이, 옆으로는 매곡천이 은빛으로 흐른다. 아파트 부지에는 예부터 매화 대신에 배나무가 잘 자라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배꽃 동산이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휴일 아침. 북구 매곡 푸르지오 1단지 주민대표들이 아파트 관리동 2층 입주자대표회의실에 모여 기자를 반긴다. 

북구청 지원으로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도마만들기 완성품을 들고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구청 지원으로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도마만들기 완성품을 들고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구 매곡 푸르지오 1단지 노인자원봉사클럽 풍물단이 아파트를 돌며 풍물 공연을 펼치고 있다.
북구 매곡 푸르지오 1단지 노인자원봉사클럽 풍물단이 아파트를 돌며 풍물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와 청소년들이 홈타운 프로그램 일환으로 열린 환경정비 활동을 가진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와 청소년들이 홈타운 프로그램 일환으로 열린 환경정비 활동을 가진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김상환 회장을 중심으로 김영근 이사, 우형식 감사, 성경숙 부녀회장, 김지우 부녀회 총무, 도서관장 구인숙, 도서관 운영자 송미화, 그리고 허대호 관리소장. 지금의 매곡 푸르지오 1단지의 복지와 주민들을 위해 앞서가며 땀 흘리는 사람들이다. 아파트 자랑을 해 달라는 주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술 말문을 연다.

"호흡기가 좋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이곳에 입주한 이후 얼마나 건강이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동대산 정기 실은 공기 좋고 살기 좋은 매곡의 중심 아파트죠."
"우리 아파트처럼 시공사 브랜드 좋은 곳이 없을 걸요."
"아파트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집값이 떨어졌다가 요즘 많이 올랐어요."
 
집값 올랐다는 소리에 모두가 싱글 벙글 웃음보가 터진다. 매곡 푸르지오 1단지가 준공된 것은 2008년 1월. 벌써 13년차 건물이 됐다. 전체 11동 819세대 2,690여명이 매곡 푸르지오 1단지라는 동일한 주소지에 한데 어울려 산다.

아파트가 처음 들어설 때만해도 인근은 몇 채 안 되는 원주민들의 가옥을 제외 하곤 야산에 밭과 과수원이 있었던 곳이다. 언젠가부터 아파트 주변에는 크고 작은 신생 아파트들이 푸르지오 1단지를 중심으로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지가 돼 초창기 입주자들이나 오랜만에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의 눈에는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푸르지오 1단지는 시내버스 노선에서도 필수 경유지다. 푸르지오를 필두로 대규모 아파트들이 군집을 이뤄 예정됐던 도로들이 하나 둘 개통을 하면서 아파트 단지 일대는 사통발달의 도로망이 구축된 지 오래다.
 
아파트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이웃들과의 교류가 사라져 삭막해짐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남들을 위해 앞장서 희생하는 사람들로 인해 매곡 푸르지오 아파트는 평화롭고 여유롭다.
 
매곡 푸르지오 1단지의 핵은 아파트 관리동 2층에 위치한 '푸른 작은도서관'이다. 이 아파트 주민들이 최고의 자랑이 되고 있는 작은 도서관은 아파트 단지 준공과 함께 동시에 시작된 작은 문고가 발판이 됐다. 아파트 시공건설사가 주민을 위해 2,500권의 도서를 아파트에 기부했고, 이것을 계기로 문고설립운영위원회가 조직돼 아파트 내 책 읽기 붐이 조성된다. 장서와 공간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이어진 것은 작은도서관 추진이었다.
 
북구청의 지원을 받아 기존의 문고를 리모델링해서 북구의 작은도서관 1호점으로 등록된 것이 지금의 푸른 작은도서관이다. 관리사무소 1층에 있던 도서관은 소장 서적이 늘면서 2층으로 옮겨왔고, 이젠 1만권 규모의 도서관으로 커졌다. 

푸른작은도서관 주최로 열린 '2020 색깔있는 마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이 직접 만든 가죽공예 작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푸른작은도서관 주최로 열린 '2020 색깔있는 마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이 직접 만든 가죽공예 작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아파트 단지 거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제1회 어린이 사생대회 기념행사.
아파트 단지 거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제1회 어린이 사생대회 기념행사.
아파트입주자회의 임원들은 수시로 회의를 갖고 아파트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펼친다.
아파트입주자회의 임원들은 수시로 회의를 갖고 아파트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펼친다.

이제는 도서관이 사랑방이 되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의실이 되고 강의실이 된다. 작은도서관은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자 주민을 하나로 묶어 주는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작은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읽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인형극도 하고 청소년 캠프도 열리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비누만들기 등 각종 문화행사들이 열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 지상 주차장은 주민을 위한 음악회장이 되곤 한다. 아파트의 숨은 재주꾼들의 재능기부로 아파트 음악회에 동참했다.
 
푸르지오 1단지 주민들이 애착을 갖고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자원봉사 홈타운이다. 소외된 이웃과의 통합을 통해 아파트라는 공간을 행복한 삶의 현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부녀회 등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함께 기획하고 실천하며 문화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푸르지오 1단지 홈타운은 북구 지역 홈타운 3호로 등록돼 부녀회, 청소년들과 함께 아파트 내외의 환경정화활동을 비롯해 작은 도서관 운영 지원, 어린이 사생대회, 경로당 봉사 등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며 건강한 아파트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급수사고는 입주민들의 끈끈한 정을 확인케 한 사례로 꼽힌다. 아파트 내부의 장비 노후로 갑작스런 단수가 되면서 당황스러웠던 날, 김상환 회장은 기지를 발휘해 관공서 관계자들을 설득, 울산시상수도사업본부로부터 급수차 지원을 받았다.
 
김 회장은 "코로나19로 주민들 얼굴을 대면할 기회가 어려운 때였고, 모두 처음 경험하는 불편한 일이었지만,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물을 받으면서도 그 누구 한 사람 불평불만이나 원망의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받다가 자리를 비운 사람들의 물통을 얼굴색 변화 없이 당겨 주는 주민들의 화합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전우수기자 jeusda@ulsanpress.net



"누구나 쉽게 열람하도록 아파트 문서 전산화 작업"

■ 김상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김상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김상환 회장(53·사진)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공석이 되면서 잔여임기를 받아 지난해부터 회장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1공장에서 30년 동안 재직해온 김회장은 지금도 주야 교대근무 시간을 적절히 활용해 아파트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회장은 회장직을 맡아하기 이전부터 작은도서관 관장으로서 일해오면서 아파트의 궂은 일 처리에 앞장서 온 일꾼이다. 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사업은 노후된 아파트 시설의 개보수작업이었다.

"아파트가 준공 된지 10년이 넘다 보니 여기 저기 시설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 아파트 누수 해결을 비롯해 노후된 시설물 수선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보람이었던 같습니다."

올해는 음식물 쓰레기 감량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전지 자동차 충전시설도 주차장에 4기나 갖췄다. 김 회장이 올 들어 특히 공들이는 사업이 있다. 아파트 관련 공사 내역, 회의록 등 아파트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각종 문서들을 전산화 하는 작업이다.

"아파트가 오래되다 보니 관리사무소 창고에 각종 서류가 쌓여 문서 열람이나 관리 차원에서 문서 전산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민동의를 얻어 추진 중인 이 사업이 현재 97%까지 와 있으니 앞으로 아파트의 각종 히스토리나 자료는 희망하는 분들은 언제나 컴퓨터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김 회장은 주민들의 편의와 복지를 위해 필요한 일거리를 찾기 위해 지금도 아파트 단지내 구석 구석을 살피고 있다.   전우수기자 jeusda@


"주민 참여 열기 높아 신바람나게 봉사합니다"

■ 성경숙 아파트 부녀회장

성경숙 아파트 부녀회장

성경숙 아파트 부녀회장(65·사진)은 남구 신정동에 살다가 아파트 준공과 함께 입주한 아파트 단지 고참 주민이자 리더다. 입주와 동시에 모두가 꺼려하는 부녀회장을 맡았고 동대표를 2번이나 했을 만큼 아파트 사랑과 지역 봉사활동에 앞장서오고 있다.

성 회장은 문인화를 하는 미술가이기도 하다. 쌓아온 예술적 기량을 자원봉사센터나 학교 동아리 등에서 재능 강사라는 이름을 제공하며,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도 주민과 친밀감을 쌓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이름만 회장이지 주민들이 솔선수범해서 봉사활동을 하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지역 토박이가 아닌데도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는 주민들의 참여열기가 있기에 지금도 신바람 나 힘을 내고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 회장은 부녀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지금도 기분 좋게 하는 오래전 기억이 있다. 바로 아파트 층간소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던 어느 해, 부녀회를 중심으로 아래 윗집 편지쓰기 캠페인을 전개했던 일이다.

"윗집 아이가 아래층에 층간소음과 관련해 편지를 쓰게 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아저씨, 제가 뛰어서 너무 너무 죄송해요. 앞으로는 조심조심 불편해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아랫집에 전달하는 겁니다. 입상작품을 아파트 입구에 전시했더니 주민 모두 무척 흡족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 회장은 최근 아파트 주변의 매곡천이 갈수록 환경친화적인 문화공간으로 확장 발전되고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타 지역에 비해 문화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왔다는 성 회장은 매곡천변에 공연장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지금의 매곡 푸르지오 1단지가 더욱 더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전우수기자 jeu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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