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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울산신항에서 역사적인 철도 개설 행사가 열렸다. 울주군 청량면에서 남구 황성동을 연결하는 '울산신항 인입철도' 개통식이다. 울산신항 인입철도의 개통은 단순한 철도 노선 하나가 열린 일이 아니다. 울산을 통해 환동해를 넘어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에너지 물류의 대륙철도 꿈이 열린 일이다. 인입철도는 현지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물류와 양회, 석탄 등 자원과 컨테이너를 포함한 항만 물동량을 주요 간선철도로 수송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철도다. 이번에 개통된 인입철도 노선 가운데 용암신항 정거장에서는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일반화물을 취급하고, 울산신항 정거장에서는 울산신항 배후단지에서 발생하는 일반화물 및 컨테이너를 취급하게 된다. 이 노선의 경우 우선은 울산공단∼부산항 간 수출·입화물 및 울산신항 정거장으로 들어오는 산업 컨테이너 화물을 경기권 공장으로 운송(연간 4만4,000TEU)하는데 활용할 예정이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대륙의 물류 중심항으로 울산신항이 정점을 찍을 꿈을 꿀 수 있게 된 셈이다. 

울산은 물류에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거점 도시다. 8세기 세계 4대 물류항이 서라벌의 외항, 울산항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역사를 가진 울산의 철도는 대륙 침략의 야욕에 눈을 밝힌 일제의 손을 비켜가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강점 초기부터 울산을 노렸다. 1921년 10월 25일, 조선중앙철도 울산~불국사 구간이 개통된 것이 그 첫 작업이었다. 

우리의 철도역사는 수탈의 역사였다. 한세기전인 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거물'이란 이름의 육중한 모갈(mogul) 증기기관차가 노량진을 떠나 제물포로 향했던 것이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시발이었다. 대륙침략의 야욕을 철도레일 아래 깐 일제는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의 부설권을 거머쥐고 한반도에 철심을 박았다.

일제의 후손 가운데 일부가 지금도 대한민국 근대화의 공이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비장의 카드'가 철도다. 대륙침략의 절대기반인 철도는 결국 일제의 한반도 침략 전반기의 최대사업이 됐다. 비주체적으로 맞이한 우리의 철도시대는 매우 가혹했다. 느림의 생활,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순리의 철학에 길들여진 우리는 뜻도 모를 삽질에 나섰고 가혹한 수탈의 채찍에 밤을 새워야 했다. 

한반도에 철도의 시대가 온 것은 바로 서방 열강들의 노골화된 수탈로 이어졌다. 최초로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손에 넣은 이는 미국인 브로커 모스였다. 모스는 미국공사 알렌의 도움으로 경인철도 부설권과 평북 운산의 금광 채굴권을 받아냈다. 일제가 이를 그냥 두고 볼 리는 없었다. 부설권을 따내고도 공사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스에게 일제는 일화 170만2,452원을 주고 부설권을 사들였다. 경인철도의 부설권은 바로 한반도 철도부설권과 맥을 같이할 정도의 이권이었다. 그 이권을 틀어쥔 일제가 이후 경부선철도 등 자신들의 이익에 필요한 지역을 선택하며 철도망을 깔았다.

지난 15일 개통한 울산신항 인입철도. 국토부 제공
지난 15일 개통한 울산신항 인입철도. 국토부 제공

울산의 철도 역사는 일제의 침략 야욕과는 달리 온전히 관광과 경제적 목적 때문에 시작됐다. 일제의 국유철도가 아닌 사설 철도로 시작된 울산의 철도는 내륙의 물자와 천년고도 경주의 관광을 목적으로 개설됐다. 경부선 허리인 대구를 기점으로 시작한 울산선은 경주를 지나 울산을 종점으로 했다. 최초의 울산역이었던 지금의 성남동 일대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지만 철도 건설 이후 지도가 바뀌고 지역민초들의 삶이 변했다. 철도의 개통은 대구와 부산 사이, 경주의 아래동네 동해안 작은 어촌으로만 인식된 울산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동해남부선이라는 이름으로 울산역이 옮겨가고 부산까지 철도가 이어지면서 울산은 또 한 번의 변신을 하게 됐다. 

성남동 울산역사의 이전은 성남동 일대를 새로운 울산의 중심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고 상권과 인적교류의 중심이 성남동~학산동으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의 번창을 가져왔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 동해남부선 철도이설사업이 추진되면서 울산역은 다시 한 번 지금의 삼산벌로 자리를 옮겼다. 역사의 이전과 함께 울산의 중심은 다시 삼산으로 옮겨왔다. 물론 삼산의 울산역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울산역 인근에 백화점과 상권이 형성되면서 울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구시가지에서 삼산으로 옮겨오게 됐다. 1992년 삼산으로 이전한 울산역은 다시 고속철도에 이름을 내주고 태화강역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태화강역이라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울산의 대표역이었던 울산역은 100년 역사의 이름을 고속철도에 내줬다. 과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고속철도가 울산의 물류와 관광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대역사이긴 했지만 철도역의 이름까지 헌납할 문제는 아니었다. 울산의 철도 역사에서 불국사 협궤열차의 종점인 울산역의 역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21년 개통된 울산선은 한반도 철도역사의 한 정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바로 그 울산역이 성남동에서 학성동으로, 그리고 삼산으로 공간의 이동을 해온 것이 울산의 철도 역사지만 그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100년 철도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고속철도 시대가 열린 만큼 고속철도 울산역은 신울산역이나 서울산역으로 이름을 부여하고 원래 있던 울산역은 존치하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기회는 있다. 이제 울산신항을 시작으로 태화강역과 송정역을 지나 원산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어지는 북방철도, 대륙철도의 웅장한 미래가 가시권에 왔다. 동해선 개통이 그 전초전이다. 바로 그 시점에 태화강역을 울산역으로 본명칭을 찾아주고 지금의 고속철도 울산역은 서울산역이나 신울산역으로 이름을 제자리에 돌리는 일이 바람직하다.    

고속철도 울산역도 이번 기회에 재점검이 필요하다. 지금 울산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KTX 울산역을 이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KTX 울산역은 지금 현재 울산의 관문이다. 고속버스와 비행기 등이 울산의 교통편을 다양하게 만들어 주고 있지만 수송분담률이나 상징성을 따져보면 단연 울산역이 울산의 관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울산역 주변의 상황이다. 거대한 주차장으로 형성된 울산역 주변과 경관에 대한 고민이 없는 환경, 정비되지 않은 시설과 무질서의 현장은 울산관문이라고 말하기 낯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이다.

울산역이 울산의 관문이지만 울산역을 이용해 울산을 찾는 사람들은 울산관광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산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변모를 꾀한다는 울산의 관광 현실은 빈약한 관광센터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서 어떻게 울산을 알아가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시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KTX 울산역이 건립될 당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들도 마찬가지다. 역사 오른편으로 고속철도 조성 과정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한곳에 모아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사증용지 내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야외 전시장은 방치된 상태라고 하는 것이 맞다. 

기차역은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도시의 관문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 기차역이고 또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유명 관광지에 위치한 기차역에는 여행안내소와 열차안내소 등 여행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유럽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이나 부산, 그리고 대전이나 대구도 철도는 도심과 함께 호흡한다. 일본의 신칸센 역시 도심의 숨결이 스며드는 곳에 역사가 있다. 많은 도시들이 철도역을 도심에 두는 것은 관광산업의 유치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다행히 울산에 철도의 광역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부터 고속철도 울산역과 북방 대륙철도의 중심역이 될 태화강역을 명칭부터 내용까지 새로운 시각에서 점검하고 철도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고속철도는 한반도 선사문화의 뿌리와 불과 5분거리에 위치했고 북방철도는 1,000년전 국제무역항과 뿌리를 함께 하는 옹골찬 밑그림을 가졌다. 그 바탕 위에 철도로 부흥하는 울산을 지금부터 제대로 만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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