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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참 좋구나" 엄마는 팔을 둘둘 걷어붙이고 커튼을 '휙' 떼어서 억센 팔로 금세 빨아버렸습니다. 엄마는 바지도 조끼도 양말도 홑이불도 베갯잇도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빨아버렸지요. 하지만 엄마는 그것으로 부족했어요. 근처에서 놀고 있던 고양이, 개, 닭들까지 닥치는 대로 빨아서 뜰에 있는 나무에 줄을 매고 널었습니다. 빨아진 것들은 고운 하늘빛 아래서 깨끗하게 말랐지요. 빨래를 마친 엄마는 그제야 속이 후련했어요. 그러다 하늘이 깜깜해지면서 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르 쾅쾅 천둥이 쳤습니다. 그러다가 엄마의 빨랫줄에 턱 하니 천둥번개도깨비가 걸리게 되었어요. 엄마는 싫다는 도깨비의 목을 잡아끌고 빨래통에 풍덩 집어 던지고 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착착 고르게 편 다음 빨랫줄에 널었지요. 도깨비 얼굴에 눈, 코, 입을 그려 넣었더니 뽀얗게 예뻐졌습니다.

요즘 밖에서 돌아와 신발장에 신발도 넣기 전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말하는 '손 씻' 곧바로 손을 씻는 일이지요. 가까운 마트를 다녀와도 손 씻기부터 하라고 서로 알려주기 바쁩니다.

문득 손을 씻으며 예전에 읽었던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함부로 바깥 활동도 하기 어렵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꺼려지는 지금 그림책에 나오는 엄마처럼 억센 팔로 이 세상을 빨아버리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투명한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부드러운 사람들의 미소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길게 드리워진 전염병이라는 그림자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때 힘세고 강한 엄마가 나타나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을 깨끗하게 빨아버리는 것이지요. 하늘도, 공기도, 나쁜 병균도 한꺼번에 말이지요.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뽀얗게 맑아진 도깨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향으로 돌아간답니다. 씻기 싫어했던 도깨비도 씻고 나니 좋았던 것이지요.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 책을 읽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지요.

최미정 아동문학가
최미정 아동문학가

빨갛게 물든 단풍잎과 가을 코스모스 앞에서 예쁘게 사진을 찍지 못하더라도 도깨비를 빨아버릴 만큼 힘센 엄마처럼 이 계절에는 씩씩한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힘센 엄마처럼 살지 못하는 나부터 달라져야 하겠지만요.

지금 즐거운 일이 없다고 뾰로통해 있지 말고 두 팔 걷어붙이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속 어둠이 조금씩 맑음으로 바뀔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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