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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 발표를 앞둔 미국이 요란하다. 대세를 쥐었다는 바이든은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해 "주한미군 철수로 협박하며 한국을 갈취(extort)하는 식의 행위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직 대통령 트럼프에 앞선 것으로 나타난 바이든의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부 조사기관이나 언론은 트럼프의 대역전극을 점친다. 이른바 '샤이 트럼프'다. 트럼프 자신도 이 부분에 고무적이다. 

트럼프는 4년 전을 추억한다. 바로 2016년 대선이다. 여론조사에 밀렸던 트럼프는 전국 득표에서 힐러리보다 적은 표를 받고도 당선됐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예측과 전망이 더욱 조심스럽다. 여론조사에서 학력 등 기존에 없던 다양한 변수를 넣고 보정하는 등 방식을 개선하고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대선은 바로 이런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되는 직선제가 아니라, '선거인단제'라는 특별한 제도를 두고 있다. 대통령을 선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을 국민이 뽑고, 이들이 다시 각 대통령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선거인단 선출 방식이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선거인단을 승자독식으로 뽑고 있다. 어떤 주에서 한 당이 51%, 다른 당이 49%를 득표했다면 이를 득표율 기준으로 선거인단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51%를 받은 당이 모든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 때문에 전국 득표율에서는 앞서고도 전체 선거인단 수에서 패배해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예가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녀는 지난 대선에서 전국적으로 200만 표 이상을 더 득표하고도 선거인단 수에 밀려 트럼프에 졌다. 

느닷없이 왜 미국 대선을 이야기하는가 싶겠지만 결국 법에 대한 이야기다. 트럼프가 믿는 법은 승자독식의 현행 미국 선거제도다. 간발의 차라는 경합주 몇 곳에 집중하면 승자독식으로 막판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게 트럼프의 계산이다. 

또 다른 안전장치도 있다. 선거불복이다. 유난히 사전투표가 많은 이번 선거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우편투표의 시시비비를 법정으로 몰고 가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운명을 걸겠다는 복안까지 계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심산인지 트럼프는 바이든과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인준을 강행했다. 보수 성향인 배럿의 합류로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확실한 보수 우위를 굳혔다. 트럼프가 연방대법원을 뒷배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역사적인 전례가 없다는 트럼프의 광기가 결국 미국의 대선까지 코미디로 만들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 역시 사법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법이 정치와 손을 잡기 시작하면 법치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 예는 나열하기 힘들 만큼 즐비하다. 

지금 우리가 딱 그 꼴이다. 전현직 법무장관이 평검사 한 명을 찍었다. 추미애 현 법무장관과 조국 전 법무장관 이야기다. 현직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 장관은 "법무장관이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를 특정해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정체성 공표)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조국이 거들고 나섰다.

그는 "추미애 장관을 공개 비판한 제주지검 이환우 검사는 어떤 사람?"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걸고 해당 검사에게 부정적인 기사가 실렸던 과거 언론을 링크해 고자질에 나섰다. 여기서부터 사단이 났다. 주말 내내 전국의 일선 검사들은 "전현직 법무부 장관이 치졸하게 좌표를 찍어 평검사 한 명을 협공하고 있다"는 글을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리며 실명 반발에 나서고 있다.

검사가 실명을 드러내고 현직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사실 그동안 불이익을 우려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기피했던 것이 평검사들의 속성이라는 점을 보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집단 반발을 두고 일선 검사들의 이른바 "내가 이환우 검사다"라는 외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가만히 있을 추 장관이 아니다. 추 장관은 재반박에 나서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제는 지금 추 장관의 반응이 감정에 치우친데다 비공식적이라는 사실이다. 추 장관에 대한 평검사의 일갈이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는 지적을 하고 시작한 언쟁이지만 일련의 과정은 법무장관의 직위와 위상에 맞지 않은 행동이라는 지적이 빗발치는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평검사의 일갈은 어쩌면 자신의 직을 건 항명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행동이다. 그 일갈에 동참하는 댓글 역시 고뇌의 과정을 거친 실명 공개라 할 수 있다. 검찰 내부망을 통한 의사 표현이지만 그 파장과 대상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장관의 SNS는 지극히 사적이다. 평검사의 지적과 충고를 자신의 개인계정으로 맞받아치는 행위는 당당하지 못해 보인다. 더구나 현직 장관의 한 줄 글은 살아 있는 권력으로 읽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공식과 비공식의 대결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직 장관의 평검사에 대한 보복 예고가 과연 현실이 될지, 검사들의 비판 여론이 어느 정도까지 확산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현재까지 현직 검사의 반기에 동참하는 댓글이 지배적이다.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이환우 검사와 동일하게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리는 상황은 우리 사법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므로 저 역시 커밍아웃하겠다"고 글을 올리자 23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중복 댓글을 감안해도 전체 검사 수가 2,000여 명이라는 점에서 상당수의 검사들이 추 장관의 행태에 반기를 든 셈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야말로 열렬하고 격하게 환영하는 분위기로 검찰총장에 오른 윤석열 아닌가. 추 장관 역시 윤 총장을 두고  수식어가 넘칠 정도로 칭찬 일색으로 환영했던 시절이 엊그제다.

문제는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후였다. 조국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검찰총장은 현 정권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자주 했다. 까놓고 말하면 바로 여기서부터 현 정권과 윤 총장은 결별 수순에 돌입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검찰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문제는 충돌 이후 벌어지는 살아 있는 정권의 검찰 죽이기 과정이다. 추미애 장관이 법무부를 장악한 이후 대한민국 검찰총장은 식물총장으로 전락했다. 인사패싱, 보고라인 무시, 수사 배제와 측근 잘라내기 등 집요하고 끈질기게 윤 총장의 자진 사퇴를 유도했다. 하지만 윤 총장의 답은 불요불굴(不撓不屈), 딱 이 네 글자였다.

급기야 법무장관의 무리수가 터져 나왔다. 여권 인사를 상대로 라임자산운용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피의자 김봉현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 패착이 됐다. 피의자 김봉현은 일부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 정치인에게도 금품 로비를 했고, 현직 검사 여러 명에게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내용을 근거로 윤 총장과 야권의 연결고리, 봐주기 수사까지 엮으려는 속내가 너무 빨리 드러났다.

법무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라임자산운용 사건 수사검사 선정에 직접 관여하고 철저한 수사를 수차 밝혔음에도, 야권 정치인 및 검사 비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비위 사실을 보고받고도 여권 인사와는 달리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 등 그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김봉현의 편지에 거론된 '윤석열 사단' 검사들 및 윤 총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선언이었다. 

여기까지 확전된 상황에는 윤 총장의 자충수도 있다. 국정감사에서 밝힌 퇴임 이후의 국민 봉사는 뭐라 변명해도 윤 총장의 실언이다. 말은 말을 낳고 그 말은 스스로를 옭아매기 마련이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옷을 벗고 정치판에 뛰어들면 되는 일이다. 간을 보는 듯한 발언, 확대해석의 여지를 주는 발언은 현직 총장이 사용해서는 안되는 문장이다. 

어찌 됐든 이제 이 싸움은 추미애와 윤석열을 넘어 추미애의 평검사, 추미애를 에워싼 친여그룹과 윤석열로 대표되는 검찰내부 반발세력과 야권의 대결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커밍아웃을 환영하는 추 장관의 날카로운 눈빛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독설과 편 가르기 식 발언들은 자칫 침묵하는 다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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