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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의 새 두루미의 귀향
열흘이 빨랐다. 철원평야에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가 내려 앉았다.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여정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조금 이르게 관찰됐다는 보도다. 두루미 매니아들이 겨울 한철 한반도를 찾은 두루미와 한 살이를 하기 위해 철원평야에 야생 텐트를 쳤다. 장관이다. 올 겨울에는 반드시 필히 기필코 철원의 두루미와 마주하리라 다짐했지만 코로나19는 어김없이 이곳까지 덮쳤다. 지난 주말부터 탐조행사를 갖기로 한 철원 평화마을측은 관련 공무원의 확진판정으로 행사 자체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래도 전국에서 몰려온 매니아들은 철원 곳곳에서 야생 캠프를 차리고 올겨울 두루미와 은밀한 동거를 예약하고 있다. 필자가 어렵게 수소문한 몇몇 매니아들은 지금부터 3월까지 두루미와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일종의 의식 같은 절차다. 3월 중순, 두루미를 떠나 보낸뒤 밀려드는 공허를 지우기 위해 겨우내 촬영했던 영상물을 편집하고 추스르며 봄철을 보내고 여름한철 겨울진객을 위한 전시와 작은 모임으로 시간을 거슬러보다 가을 내내 다가올 조우의 시간을 위해 두근거림으로 겨울을 맞는 이들이었다.

두루미에 열광하는 이들은 이른바 두루미 루트에 걸쳐 있는 나라라면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에는 수천년 세월 속에서 두루미와 함께한 민족이다. 바로 학과 관련한 문화유전인자다. 두루미, 학, 단정학은 모두 같은 말이다. 우리 문화에서 두루미가 멀어진 것은 일제강점기의 악랄한 왜놈들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한반도에는 상당한 수의 두루미들이 서식했다. 황해도의 연백평야와 함경남도 안변, 울산과 낙동강 습지가 대표적인 서식지였다. 하지만 일제의 악랄한 만행이 시작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일제는 한반도를 찾아오는 겨울 진객을 그냥 두지 않았다. 선비의 상징, 한민족의 성품과 닮았다는 이유로 두루미를 학살했고 깃털을 뽑아 장식하고 다리를 잘라 지팡이를 만들었다. 이른바 학슬장이라는 이름의 장식물이다. 너도나도 살아 있는 두루미 다리를 잘라 장식을 하고 학슬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한 왜놈들은 이 땅의 모든 두루미를 말살하겠다는 일념으로 겨울 한철 한반도에 날아오는 학을 도륙했다. 그 시련의 시간에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덮치자 수만년 세월을 이어온 한반도 두루미 루트는 끊어졌다.

# 일제의 두루미 학살, 지팡이 학슬장
동북아 지역의 두루미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일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은 두루미를 쿠루루 카무이, 즉 습지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고 일본항공의 심벌 역시 두루미다. 일본 오카야마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는 도시의 상징음이나 도로의 신호음에 두루미 울음소리를 녹취해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두루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지울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중국 역시 두루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공식적인 국조를 정해놓지 않았지만 실제로 중국인들의 상당수는 중국을 대표하는 새로 두루미, 즉 단정학을 숭배한다. 머리가 붉은 단정학은 태양신의 후예로 여기는 중국인들에게 천손의 징표쯤으로 두루미와 스스로를 연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불행하게도 울산에는 올해도 두루미가 날아오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우수리지방과 중국 북동부에서 서식하는 두루미는 그 한무리가 철원을 비롯한 강화도 등에서 겨울을 난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무리는 일본으로 날아간다. 지금 이 땅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두루미는 철원군을 상징하는 군조다. 철원 동송읍에는 두루미 서식지에 대해 연구하는 DMZ두루미 평화타운이 운영되고 있고 탐조도 가능하다. 

두루미는 신비롭다. 종 보호를 위해 애정을 가진 이들이 국제기구를 만들어 철저히 보호하는 새가 두루미다. 국제두루미재단에서 기르는 두루미 15종을 30년 동안 관찰한 결과 두루미의 음성과 몸짓 언어는 약 60 가지나 되고 같은 소리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영물이다. 그 뿐이 아니다. 나이든 두루미들이 이동에 가장 적합한 경로를 어린 두루미들에게 알려주고 학습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일본 홋카이도나 오카야마, 우리나라 경북 구미 등에서는 철새인 두루미를 알맞은 서식환경을 제공한 결과 텃새로 변해 이동하지 않는 영구적 토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강원 철원군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두루미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한국일보 왕태석기자 제공
강원 철원군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두루미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한국일보 왕태석기자 제공

# 우시산, 울산의 뿌리와 두루미 문화
장황하게 두루미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지난주 열린 울주군의 학술행사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지역의 정체성을 제대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울주군은 지난주 우시산국에 대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이미 심장한 이야기가 나왔다. 울산의 초기국가로 알려진 우시산국의 영역이 태화강·회야강을 포함해 지금의 북구 중산동 일대까지 확장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00년전 이 땅에 주인이었던 우시산국 인들이 지금의 울산시 영역과 거의 일치하는 터전을 일궜다는 이야기다. 증명되지 않는 가설 수준이지만 이 주장을 제기한 김창석 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중엽까지 이 땅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찰했다. 그는 이 일대가 사로국(신라)이나 우시산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개의 정치체로서 두 나라 사이의 중간지대로 자리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 증표로 중산동 고분군과 웅촌면의 하대고분군의 대형 목곽묘를 제시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무덤의 형태는 고대 인류의 국가형태나 세력 판도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부에서 제기하는 우시산국의 경북 영해설은 완전히 아류로 밀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시산국의 학계 정설인 '울산설'이 실증되는 셈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무덤 형태의 목곽묘는 인류 이동의 증좌다. 목곽묘의 형태는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그리고 몽고 초원지대에서 발견된다. 결국 지금의 울산이라는 지명 역시 지금의 웅촌부터 태화강 일대를 아우르는 우시산국이 기원이라는 설과 유력하게 연결된다. 일부에서는 울산의 지명을 두고 몽골 기원설을 이야기 한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 울산의 '고을 이름 울(蔚)'자는 '붉다'란 몽골어로 울산은 지금의 몽골 지역에 살던 북방민족이 해를 따라 동남쪽으로 이동해 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반드시 추가해야 하는 부분이 두루미, 즉 학이라고 본다. 시베리아에서 한 살이를 하다 혹독한 겨울이 오면 광활한 날개짓을 하는 두루미 무리는 시베리아 일대가 척박한 환경적 변화를 거치면서 함께 공존했던 인류에게도 이동의 신호음이 됐다고 본다. 두루미의 날개짓을 따라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잡은 인류의 한무리가 동해를 따라 정착한 곳이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 강원도 강릉, 한반도 남쪽 울산이었다는 가설이다. 그 증좌는 또 있다. 겨울마다 수만마리씩 시베리아를 떠나 이동하는 떼까마귀의 귀환이다. 경주 형상강부터 울산 태화강까지 겨울진객 떼까마귀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하늘의 문자처럼 찍어서 보내준다. 그 유전인자는 북방문화의 한 축으로 우리 문화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문화유전인자의 한 축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다. 그 중에서도 중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문명교류의 관문이었다. 이 지역에서 살아온 북방 민족들은 한민족과 생활·문화·언어적으로 많은 공통분모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선사시대 한민족의 출발점을 중앙아시아 일대로 추정하는 증표들은 여기서부터 울산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다. 인류의 흔적은 이미 문명의 교류 이전부터 두루미와 떼까마귀 등 신성스런 영물들의 이동루트로 증명되고 있다. 그 이동의 흔적이 쌓여 문명의 이동이 이어졌고 그 흔적이 무덤이나 유물은 물론 풍습과 언어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동서 문명의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인 한반도 서라벌 땅과 중앙아시아가 끈끈하게 연결됐다. 바로 울산의 뿌리가 연결된 지역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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