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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가장 부지런한 시인은 김이삭 선생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지런한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수확으로 곳간이 가득하듯, 김이삭 선생님의 가을 곳간도 언제나 풍성합니다. 김이삭 선생님의 동시집 '우리 절기 우리 농기구'의 차례를 살펴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되어 있습니다. 각 계절별로 절기들도 나와 있는데, 그 절기에 필요한 농기구들을 소재로 시를 썼습니다. 거기다 순우리말로 나옵니다. 이 동시집 한 권을 읽으면 절기와 농기구, 순우리말까지 알게 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입니다. 아, 깜빡했는데 한자도 나와 있으니 일석사조랍니다.

# 북삽

북북북
흙을 긁어 담아
뿌리 쪽 도톰하게 덮어 주면
쑥쑥 자랄 거야.

우수(雨水)니까…….

북북북
감자 고추 배추 모
심을 때
인기 짱!
나머지는 꿀비(농사짓기에 알맞게 내리는 비)에게 맡겨.
넌 네 꿈을 심기만 하면 돼.

북삽은 옛날에는 없었는데 요즘 나온 농기구랍니다. 어린 모의 뿌리 쪽에 흙을 덮어 주는데 쓰이는가 봅니다. 북삽은 저도 본 적이 없습니다. 김이삭 선생님은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릴 적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할머니와 엄마를 도와 밭으로 달려가곤 했대요. 서툰 호미질로 고구마 살을 찍고 잡초도 뽑으려다 콩 순을 건드리기도 했답니다. 어린 농부로 시간을 내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다네요.

# 쟁기

이랴~!
할아버지 고함에,
일비 오는 날
올해 처음 쟁기 메고
밭가는 우리 집 소

두근두근 신났다.
나도 입학식 날 그랬는데.

코뚜레를 한 소들이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고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없지만, 왠지 추억의 한 장면마냥 떠오릅니다. 그래도 집 근처를 조금만 벗어나면 밭도 있고 논도 있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랴~ 이랴~, 자랴 자랴~."
이 시를 읽으니 어디선가 외치던 농부 아저씨 목소리도 들리는듯합니다. 이랴는 오른쪽으로 가자, 자랴는 왼쪽으로 가자는 말이라고 했었지요. 

# 늘찬 삼태기

콩 담고
고구마 담고
오늘은 가지랑 오이
담아요.

담고 담고
담다 보면
내게도
넉넉한 마음 생기겠죠?

가을 문턱 들어서서
높푸르게 넓은 가슴 펼치는
저 하늘처럼요.

최봄 아동문학가
최봄 아동문학가

늘찬은 늘 옹골찬 아이라는 뜻을 가졌고, 삼태기는 흙, 쓰레기, 거름, 곡식 따위를 담아 나르는 기구랍니다. 가을이 아니라도 삼태기가 아니라도, 뭔가를 담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것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김이삭 선생님. 그동안 우리 떡, 우리 민속놀이에 대한 책도 펴냈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고 지켜가는 일은 우리의 책임과 의무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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