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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정부의 주 52시간 제도 시행을 앞두고 울산지역 조선 협력사들이 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번 정책으로 중소업계가 '폐업 대란'의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며 제도 유예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정계에서도 조선업 의존도가 높은 동구에 대한 '고용위기지역 연장' 요청이 쇄도하는 등 업계 현실이 반영된 '정책 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실질 임금 줄어 근로자들도 반대
29일 울산지역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선업종 주52시간제도 적용 유예 및 고용위기지역 연장 청원'을 제목으로한 게시물이 공개됐다.
 
국내 대형조선소 5개사에 속한 전 협력사 임직원 명의로 올린 청원에서 "조선업은 수주산업으로 고객으로부터 주문받은 제품을 약속한 납기에 반드시 인도해야 하는 주문생산업이다"며 "조선업종에 대해서는 주52시간 제도의 2021년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호소했다.
 
협력사들은  "장단기 부하계획과 예측된 인력운용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 이러한 부하불균형을 사원들의 특·잔업으로 조율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52시간 제도가 시행되면, 변화무쌍한 생산활동의 변화를 적기에 대처하지 못해 공정과 납기를 지키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또 이런 이유로 "사원들 입장에서는 실질임금 감소로 조선소 현장을 기피하고, 특히 고기량자들의 유출이 심각 할 것"이라며 "한국조선업의 경쟁력 약화로 연결되어 수주감소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 자동화율 낮은 노동집약적 산업 특성
협력사들은 이어 "언젠가 다가올 조선호황을 대비해 사원들의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고, 고기량 숙련공들의 이탈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대형조선 5개사가 속한 울산·거제·목포지역에 대해 조선업 고용위기지역 연장을 강력히 청원한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시작돼 다음달 2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청원에는 이날 오후까지 2,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국내 조선산업의 뿌리인 중견 중소 협력사들은 정부의 주 52시간제 적용이 조선업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조선업은 다양한 직종의 수많은 인력이 유기적으로 협업하면서 생산활동이 이뤄지고, 장치설비와 자동화율이 극히 낮은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 일감 기복이 심하고 2교대 근무를 원천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산업군에 속하는데다 기후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옥외작업이 대부분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업 생산 현장의 80%를 사내 협력사가 차지하는 현실에서 주 52시간이 적용되면 납기일을 지키기 어려운 데다 임금 감소에 따른 인력 유출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 6개월 탄력근무 정부 대책 비현실적
지역 조선업계 현장 관계자는 "조선업은 발주처의 인도 일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긴급 돌발 공사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획일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보완책으로 내놓은 6개월 탄력근무제 역시 현실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근로자들도 52시간 제도를 반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제도가 적용되면 월평균 근무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급여도 그만큼 적어질 수 밖에 없어서다.
 
특히 철야작업이 많았던 용접·도장 등은 근로자의 임금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다른 현장 관계자는 "잔업과 야근이 총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수입이 줄게 되면 결과적으로 주 52시간 제도가 추구하는 저녁이 있는 삶도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국내 조선 5사의  협력사는 총 470여 개로 종사자만 7만여 명에 이른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중소협력업체와 기자자재 업체들의 경영 여건을 반영한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하고 나섰다. 울산국회의원협의회는 이날 울산 동구 고용위기지역 지정 연장을 요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고용노동부 장관 앞으로 보냈다.
 
# 지역 정치권, 동구 고용위기지역 지정 연장 촉구도
협의회는 건의문에서 "대형 조선사 중심으로 업황 개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중소협력·기자재 업체와 조선업 밀집 지역 소상공인 경영 여건은 최악이다"며 "재도약할 수 있도록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구 고용위기지역 지정이 연장되면 고용유지지원금 확대와 고용·산재보험 납부 유예 등 세제 혜택 등이 유지된다.동구는 2018년 4월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올해 7월까지 총 4만 명 정도가 각종 정책 지원을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12월 중순 지정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국회의원협의회에는 지역 여야 의원 6명이 모두 속해 있다.
 
권명호 의원은 "지역 주력산업인 조선업의 불황은 협력사 도산, 자영업자 폐업,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고용위기지역 지정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주화기자 jhh0406@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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