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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29년 3월1일 울산 동구 동면(현 일산진마을) 보성학교 앞에서 학생들과 교직원이 삼일만세운동 기념한 단체 사진의 모습. 동구청 제공
일제강점기인 1929년 3월1일 울산 동구 동면(현 일산진마을) 보성학교 앞에서 학생들과 교직원이 삼일만세운동을 기념해 촬영한 단체 사진의 모습. 동구청 제공

"아쉬웠던 예우나 유공자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랍니다"

울산 유일의 민족 사립학교이자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보성학교와 설립자인 고 성세빈 선생을 기리는 보성학교 전시관이 조성됐으나 아직까지 국가유공자 등재 등 과제가 남아 있다. 

7일 성세빈·성세륭 선생의 후손 성의영(77)씨는 "이번에 전시관이 조성됐으니, 이를 기점으로 성세빈 선생과 성세륭 선생의 아쉬웠던 예우나 유공자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운을 뗐다. 

지난 1922년에 사립학교로 설립된 보성학교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구 일산동지역(동면지역) 독립운동과 사회운동가들이 배출되는 주요 거점이었다. 

성세빈 선생은 보성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었으며, 성세빈 선생의 동생 성세륭을 비롯해 박학규, 김천해, 서진문, 이효정, 박두복 등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보성학교를 거쳐 갔다. 보성학교 출신들은 적호소년단(동면소년회)과 5월 청년동맹(울산청년연맹 동면지부), 신간회에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성세빈·성세륭 형제는 아직 독립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성의영씨는 지난 2003년부터 꾸준히 서훈 신청을 해오고 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행적이상'이나 '친일 의혹' 등이 그 이유였다. 

성 씨는 "성세빈 선생 서훈은 신간회 활동 사항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다시 행적을 찾아 보충해 신청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양조장에서 활동한 경력이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3월 신청했더니 일본인이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근무했다고 해서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 양조장은 우리나라 사람인 당시 방어동 읍장 윤덕호씨가 일본인에게 주식을 전부 양도받아 경영했던 곳이고, 성세빈 선생은 그곳의 전무로 일했던 것뿐이다. 당시 신문에도 이러한 사실이 나와 있다"면서 "여기에 대한 확실한 근거자료와 함께 항의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많이 지치고 안타깝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울러 성 씨는 "학교설립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훈 지정이 이뤄져야 할 근거는 충분하다"면서 "이번에 전시관이 들어섰으나 기증품들이 별로 없다. 널리 알려져 기증품이 많이 들어오길 바라고, 서훈 지정도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동구는 일산동 160-4 일대에 총 사업비 3억원을 투입해 보성학교 전시관을 준공했다. 

7일 개관한 동구 일산동 보성학교 전시관의 모습.
7일 개관한 동구 일산동 보성학교 전시관의 모습.

보성학교 전시관에는 성세빈 선생의 유품인 탁자, 반닫이, 호롱불 등 3종과 1920~1930년대 항일운동 관련 기사, 그리고 보성학교 졸업대장(복사본) 등이 전시된다. 또 지역 역사가들이 당시 상황과 역사를 설명하는 영상자료가 공개된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개관은 내년 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동구 관계자는 "당시 양조장 허가권이 친일파나 일본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제공됐는데, 동구는 특이하게 우리나라 분이 투자를 해서 받아냈다. 이를 두고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서훈 지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후손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가람기자 kanye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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