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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겸 편집국장

# 중앙 언론사의 왜곡보도, 공포유발자
지난주 중앙지 한 기자가 울산의 떼까마귀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제목이 엄청났다.
<히치콕 '공포영화' 장면 같았다···울산 뒤덮은 10만 떼까마귀>

해질 무렵 태화강으로 귀환하는 수만의 떼까마귀를 처음 봤다면 그 낯선 장면에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기사는 한발짝 더 나갔다. 유튜브까지 중계한 떼까마귀의 귀환을 두고 그 기자는 자신이 담은 사진과 영상에다 'CG 아님. 공포영화 아님'이라는 친절한 알림까지 주석으로 달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

<해가 내려앉고 땅거미가 젖어 드는 시간. 울산 태화강은 '까~ 까~' 울어대는 소리로 천지가 요동쳤다. 지난 2일 태화강변 대나무 숲에서 대규모 까마귀 떼를 만났다. 오후 5시 무렵 수백 마리가 날아들기 시작해, 해질녘 아예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다. 처음 본 이에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 '새(1963)'에서 마을을 습격하는 까마귀 떼보다 규모가 커 보였다. 울산 태화강 둔치공원과 철새광장, 태화십리대밭 먹거리 단지 인근 산책로, 철새홍보관 옥외 전망대 등이 떼까마귀를 관찰하기에 좋은 장소다. 자칫 새똥을 맞을 수도 있으니 모자를 챙기길 권한다. 4월이 되면 하나둘 시베리아나 몽골로 돌아간다.>

기사는 친절하게 새똥 조심까지 알렸다. 그런데 그 기사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떼까마귀를 흉조의 상징인양 이야기 하고 울산시장과 청와대의 연관성까지 거론하는 이도 있다. 말끝에는 항상 불법이거나 부정적인 단어를 빼놓지 않았다. 결정적인 것은 이런 문구다.
'까마귀떼 보겠다고 울산을 찾는 관광객이 있다고? 누가 그런 넋빠진 소리를 하는거냐?'

부정은 부정을 낳기 마련이다. 레저담당 기자는 울산의 떼까마귀를 진기한 자연의 연출로 소개하려했겠지만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맥락은 부정적인 반응으로 흘러갔다. 딱 한사람, 울산시민들의 떼까마귀와의 공존을 높이 평가하는 이가 쑥스러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기사를 읽고 네티즌들의 댓글까지 살핀 필자는 그날 하루 우울했다.

울산에서 떼까마귀의 귀환은 겨울을 알리는 신호다. 기상청보다 정확한 떼까마귀의 이동으로 울산 사람들은 태화강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떼까마귀가 떠나는 날 봄이 대숲에 깃들고 백로가 알을 품고 생존의 퍼득임을 야무지게 훼칠 때 여름이 깊어간다는 것을 교감하며 산다. 태화강 대숲을 매일 함께하는 이들이건, 슬쩍 지나치는 사람이건 그 정도의 교감 능력은 가지고 사는 이들이 울산 사람들이다. 언짢은 기분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글을 쓴 기자의 의도야 떼까마귀와 울산시민들의 공존에 대한 경외감을 바탕에 깔았으리라 애써 위로하며 마음을 돌렸다. 문제는 왜곡이다. 아직도 까마귀는 흉조의 상징이자 재앙을 부르는 나쁜 새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바로 여기서부터 네티즌들의 반응은 시작된 것이기에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으면 울산과 떼까마귀는 앞으로도 계속 억울한 누명을 덮어쓸 수밖에 없다.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는 사실 울산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시베리아를 떠나 겨울 한철 무리들과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까마귀들이 선택한 장소가 한반도다. 한반도 상공에서 일부는 서울과 수원 평택 일대에서 겨울을 나고 또 다른 한 무리는 더 남쪽으로 내려와 경주와 울산 부산의 특정 지역에 한철을 의지한다. 그 무리 가운데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가 유독 많은 것은 서식 환경이 그만큼 좋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떼까마귀의 겨울나기가 최근의 일일까. 아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서라벌과 울산 일대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 땅에는 겨울이면 까마귀는 물론 학과 독수리 등 무수한 북방의 새들이 겨울의 전령사로 찾아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신령스러운 새로 여겼다는 점은 기록으로 전해진다. 까마귀가 앞일을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은 삼국유사 권1 사금갑조(射琴匣條)편의 기록을 보면  까마귀가 비처왕을 인도하여 못 속에서 나온 노인으로부터 글을 받도록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처왕은 '거문고갑을 쏘라'는 글의 내용을 보고 궁주(宮主)와 간통한 분수승(焚脩僧)을 처치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까마귀를 예언의 전령으로 본 당시의 습속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때부터 정월 보름을 오기지일(烏忌之日)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 제사한 것도 까마귀를 신성시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증표다.

울산 태화강의 겨울진객 떼까마귀 군무. 2020. 11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 태화강의 겨울진객 떼까마귀 군무. 2020. 11 울산신문 자료사진

 # 떼까마귀, 울산의 뿌리를 알리는 증표
겨울 철새인 까마귀는 떼까마귀, 갈까마귀 두 종류다. 이들은 몽고 북부, 시베리아 동부 등에서 살다 매년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남쪽으로 이동한다. 남쪽으로 내려온 떼까마귀는 대부분 울산 태화강부터 경주 형산강까지 겨울 한철 살림을 차린다.

겨울 진객 떼까마귀가 울산의 겨울 생태 랜드마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검정의 상징성 때문에 흉조로 여긴 잘못된 인식에다 배설물 공포로 시민들의 선입견을 바꾸는 데 어려움이 컸다. 까마귀를 흉조로 인식한 것은 조선조 선비문화의 영향과 일본의 오래된 까마귀 숭상문화의 영향이 있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까마귀는 한민족과 뿌리를 함께하는 우리의 새다.

바로 삼족오다. 삼족오는 동양사상에 근거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 동양인들은 태양 안에 검은 새가 산다고 믿었다. 태양은 양(陽)이고 숫자 3도 양수(陽數)이므로, 태양에 사는 새의 발도 3개라고 생각했다. 또한 천지인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삼족오에 대한 기록은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태양 가운데 까마귀가 있으니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日中有烏謂三足烏也)'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이전부터 삼족오에 대한 숭배는 있었지만 기록으로는 고구려 때 나타난다. 각저총, 쌍영총, 천왕지신총 등의 고분벽화에 삼족오가 보인다. 그래서 삼족오가 고구려 고유의 상징문양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고구려의 고유 문양이라기 보다는 우리민족의 고유문양이자 숭배의 대상이라는 말이 맞다. 우리에게 삼족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 조상들은 태양신을 믿는 천손사상을 기본으로 천지인 삼재(三才)를 중시한 민족이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한글이 바로 '천지인'의 결합체다.

고대 북방유목민족은 기후와 환경의 변화로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다. 삶 자체가 이동의 연속이었다. 길을 통해 이동하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나아갔다. 그 개척의 길에 전령이 된 동물이 바로 까마귀다. 혹독한 겨울, 혹은 빙하기 시절, 바이칼과 몽골 등 북방에 살던 인류의 한무리는 까마귀의 인도로 길을 나섰다. 그 길의 종착지가 울산이었고 태화강과 회야강, 그리고 검단리 일대였다. 그 증좌가 울산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바로 검단리 유적이다.

울산의 떼까마귀가 히치콕의 공포영화로 묘사된 것은 무지의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 때문이다. 그러니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 알려야 한다. 울산에 왜 그 많은 떼까마귀가 겨울 한철을 버티기 위해 날아드는지를 살피고 이 땅에 사는 대한민국인들이 제대로 알도록 알려야 한다. 그래야 고래를 숭배했던 남방민족 한무리가 일군 이 땅에 북방민족의 한무리가 들어야 새로운 융합의 문화를 일군 한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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