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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김진영 이사 겸 편집국장

# 소상공인들의 노심초사가 주는 의미
경자오적(庚子五賊)이라는 세간의 풍자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사인성호(四人成虎)의 중심에 있던 추미애 법무장관과 이용구, 정한중, 안진, 신성식 징계위원은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씻지 못할 잘못을 주도한 인물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촛불을 흔들고 집권한 민주 정부, 성공한 공정 정부, 정의로운 정부는 이제 한여름의 꿈이 됐다. 뭘 그렇게까지 비난하나 싶은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사인한 징계 결정을 법원이 잘못이라 뒤집은 일은 단순한 판결이 아니다. 

대통령제가 가진 삼권분립의 의미는 국가권력의 전횡(專橫)을 방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성격이 짙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권을 국회에 줬고 행정부의 권한은 대통령에 귀속했지만,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도록 해 견제와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행정 수반의 권력이 입법이나 사법에 비해 우위에 있는 듯한 성격이 우리 권력의 형태였다. 그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박근혜 정부였지만 오히려 그 폐해를 탄핵이라는 절차적 정당성으로 응징한 것도 박근혜 정부 때 일이다.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코로나 19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균 공포로 경자년 한해는 혼돈의 날을 보냈다.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 19의 최전선에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들은 저무는 한 해의 감회를 노심초사(勞心焦思) 사자성어로 풀었다. 단 한순간도 마음을 편히 쓰다듬지 못했다는 아픔이 깔렸다. 

교수 사회는 올해를 아시타비(我是他非) 네 글자로 담았다. 내로남불로 일관한 정치 권력에 대한 회초리다. 올 한해 수없이 떠돌던 내로남불의 다른 표현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조로남불'도 거론된다. 조국이는 옳고 다른 이는 틀렸다는 오만을 후리친 단어다.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법원이 내린 대통령 징계건의 부당판결은 모든 내로남불에 뒤통수를 후리치는 결정판이다. 

사가오부(四可五不)라는 새로운 규제가 세상을 장악한 세밑에 무엇보다 갑갑한 쪽은 문재인 정부라고 하지만 사실은 국민들이 더 갑갑하다. 경국지추(傾國之秋)라는 비꼼으로 추미애의 전횡을 풍자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변창흠 같은 인물을 민심이 들끓는 부동산 주무장관으로 앉히는 고집은 내로남불이자 아시타비의 극단이다. 몇 사람 모이지도 못하지만 모이면 나오는 이야기가 변창흠이다. 네 명은 되고 다섯은 안된다는 '사가오부'가 변창흠 비방 방지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들은 저 정도 인물밖에 없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인재풀인가를 묻는데 저만한 인물이 없다고 우기는 쪽이 이 정부다. 참으로 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다. 

변창흠은 지난 주말 사고 현장인 스클린도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난 22일이다. 그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을 찾았다. 변씨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묵념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던 지난 2016년, 바로 그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김 모 씨를 언급하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관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겠지만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후보가 되자 바로 그때 말한 본심이 언론보도를 타고 세상에 퍼졌다.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그래도 민심이 가라앉지 않자 직접 구의역 사고 현장을 찾아 머리를 숙이는 이벤트를 했다. 후일담이지만 이 연출은 여권 핵심부에서 "진솔한 사과로 국민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현장 묵념과 사과 메시지를 연출해 언론에 퍼날랐다고 한다. 

# 두 쪽으로 갈린 사회, 통합메시지 절실
풍류죄과(風流罪過)라는 말이 있다. 대수롭지 않은 죄를 말할 때 쓰는 사자성어다. 

주유의 이야기를 잠시 인용하자. 제갈량의 신묘한 능력을 시기한 주유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매일 밤 고뇌한다. 시대의 영웅을 끌어내리는 방법엔 명분이 필요하다. 얼씨구나, 절묘한 꾀가 떠올랐다. 바로 화살촉 10만개다. 전쟁의 승리는 절체절명의 명분, 10일간 10만개의 화살촉을 만들지 못하면 군율로 다스리겠다는 엄포에 제갈량은 흔쾌히 주유와 약속한다. 열흘이 지나면 군율로 제갈량을 징벌하리라 믿었던 주유는 바람의 흐름을 읽은 제갈량의 지혜 앞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탈탈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뭐든 찾아내 흠집을 내려는 꼼수를 비판하는 이야기다. 지금 여권 정치인들에게는 변창흠의 과거 행적이 풍류죄과로 읽히는 모양이다.  

한번 정면으로 들여다 보자. 변창흠 후보자의 경우는 김군의 죽음을 가볍게 넘긴 일 말고도 임대주택 거주자 비하 논란, 측근 낙하산 논란, 세금 체납 의혹, 자녀 허위 이력 의혹 등 새로운 의혹들이 거의 매일같이 재생산 되는 중이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런 의혹 말고도 그가 가진 가치관이다. 

그가 SH 사장 재임 당시 전국지방공기업노조 등이 작성한 문건엔 "변 사장은 회의 테이블에 놓여진 2만∼3만 원 상당의 도시락이 형편없다고, 유명 메이커 커피가 아니라고, 강남 과자가 아니라고 짜증을 부린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쯤이면 무수한 카메라 셔터가 비수로 느껴질만하지만 "며칠만 버티면 임명장을 받는다"는 학습효과 때문인지 어색한 표정과 눈빛으로 시간만 떼우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왜 변창흠만 씹어대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세밑에 내세운 변창흠이야말로 이 정부가 보여준 아시타비, 내로남불의 결정판이다.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한 과거세력을 적폐로 규정한 더불민주당은 촛불을 전면에 내세우고 공정과 정의를 좌우에 배치한 헌정사상 최초의 실질적인 민주정부라고 외치며 출범했다. 기대도 컸다. 기회는 평등하며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민주투사들의 현판식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좌파정부 운운하며 비판을 해온 세력조차 그들의 출범 앞에 어떤 비난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정부가 불과 몇년만에 왜 이렇게 됐나. 조국사태는 시작이었고 윤미향 사건은 확인의 과정이었다. 확증편향에 초인사상까지,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우월의식이 날마다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다 박원순과 오거돈 사건은 수없이 드러난 갑질과 부도덕, 비윤리의 행태조차 우리 편이면 넘어간다는 이상신호를 정상신호로 만들어 버렸다. 

기대효과도 있다. 안철수 같은 이가 다시 서울 시장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우유부단에 책임의식까지 실종된 보수정치의 라떼인물들이 다시 한번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보겠다고 분칠을 하고 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식이다. 

안철수가 시작이고 홍준표와 유승민, 김무성과 나경원까지 보수정치를 절단낸 자들이 정치세탁소를 찾아 1등급 락스로 세탁하고 다름질까지 마치고 나올 기세다. 그러니 어쩌다 국회의원이 된 김진애 같은 이가 "국민의 힘에서 변창흠을 욕할 수 있나"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야말로 가관이다. 이런 이들이 내뱉는 말의 시궁창을 국민들은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입이 마른다. 딱 여기까지이길 바라지만 어쩌면 여기가 시작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참담한 시간이다. 그래도 신축년 새해는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라 쓴다면 앞선 글에 침을 뱉는 일일 것 같아 두려워 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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