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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2월25일 성탄절 선물처럼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 보존대책 마련도 없이 침수를 거듭하며 훼손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 사진 3시 방향 돌출부분 대곡천 건너 맞은편이 반구대 암각화다.
1971년 12월25일 성탄절 선물처럼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 보존대책 마련도 없이 침수를 거듭하며 훼손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 사진 3시 방향 돌출부분 대곡천 건너 맞은편이 반구대 암각화다. 울산시 제공

바위에 어떤 형상을 새겨 오랜 시간 남겨두는 인간의 행위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암각 활동은 표현 욕구를 가진 인간이 그들의 신앙, 세계관을 드러내고 공유하며 후세에 전승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행위인 것이다. 울산에도 선사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해 있다. 올해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며 암각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바람직한 보존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 1971년 12월 25일 문명대 교수팀 발견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하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도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동해로부터 약 25㎞ 떨어진 깊은 골짜기인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일대에 위치해있다.

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천전리 각석'이 먼저 발견됐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971년 12월 25일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들 암각화의 발견은 우리나라에서 암각화라는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학계에 따르면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의 암질은 셰일(shale)과 혼펠스(hornfels)로 구성돼 있으며, 암면의 방향은 북향이다.

약 300여점에 이르는 암각화는 너비 약 8m, 높이 약 5m 가량의 판판한 수직 암면에 집중돼 있다. 그림의 종류는 크게 인물상, 동물상, 도구상, 기호 등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이중 동물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은 고래의 세부 종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다. 그림의 목적은 집단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사냥방법에 관한 지식을 새겨 넣고 가르치거나, 풍요를 기원했던 문화적 맥락의 산물로 추정된다.

이들 그림은 신석기시대 전기에 주로 제작된 것으로 나타나며, 이는 울산의 신석기시대 조기·전기 유적의 생업 문화양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를 제작했던 집단은 신석기시대 한반도 남부지방 해안지역에서 해양어로를 생업으로 정주생활을 영위했던 복합수렵채집민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 당시부터 보존 방안에 대한 숙제를 안은 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 6년 전인 1965년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여름 장마시기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해 연중 절반가량 물고문을 당한다.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으로 발견한 동국대 연구팀이 1974년 암각화 탁본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국대박물관 제공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으로 발견한 동국대 연구팀이 1974년 암각화 탁본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국대박물관 제공

# 7000년전 고래사냥 등 신석기 생활상 그대로
사연댐 수위 기준으로 암각화는 53m를 넘어서면 침수가 시작돼 57m가 되면 완전히 잠기는데, 이는 물을 방류해 수위를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사연댐의 여수로 높이가 60m로 암각화의 최하단 보다 더 높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왔다. 암각화 앞에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댐)을 설치하는 안, 생태제방을 축조하는 안, 터널형 유로변경안, 수위 조절안 등 갖가지 방법이 대두됐지만 모두 암각화를 물속에서 구해 내지는 못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 문제는 울산시를 비롯한 국토부, 환경부, 문화재청을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서 수 십 년간 표류했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해결책 없이 설왕설래만 반복했다.

지난해에는 울산시와 한국수자원공사가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업무협력 협약'을 맺으면서 또 다른 해법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이 협약은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 연구용역'중 경북 청도 운문댐에서 하루 7만㎥의 여유 수량을 공급받는 방안이 나오면서 가능해진 것인데, 울산시는 운문댐의 물을 공급받으면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최저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하면 울산시 식수원인 사연댐 수위를 낮게 조절할 수 있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이 용이해진다.

울산시와 수자원공사는 협약을 통해 △사연댐 수위 조절을 위한 수문 설치 타당성 조사 용역 △용역 결과에 따른 사연댐 여수로 수문 설치 등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장단기 대책 검토와 추진 △사연댐 수위 조절에 따른 울산시 물 문제 해결 등에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사연댐 여수로 수문설치 타당성 조사 용역'의 참여 업체를 찾는 것부터 난항을 겪고 있어 반구대 암각화의 수난을 끝내는 보존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 6년 전인 1965년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여름 장마시기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해 연중 절반가량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 6년 전인 1965년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여름 장마시기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해 연중 절반가량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

# 사연댐 건설로 연중 절반가량 물고문
반구대 암각화의 바람직한 보존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암각화 보존 모니터링과 주변 지역의 생태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개발 등 다방면의 관심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울산시는 보존방안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는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이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지 10여년이 지나서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향한 발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2019년 말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대곡천 일대의 인문·자연경관을 포함한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 우선등재 목록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심사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목록 선정에 올리는 부분을 '보류'했다. 그 이유로는 탁월한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울산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반구대 암각화와 국내외 다른 암각화 비교 연구를 통해 역사, 문화, 학술적 가치 등을 규명하는 절차를 거쳤고, 올해 초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목록 지정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문제의 핵심은 반구대 암각화를 일단 물에서 건져내는 일이다. 어쩌면 반구대 암각화의 가장 좋은 보존 방안은 '가장 빠른 보존방안'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수 천 년 세월의 풍파를 혼자서 견뎌온 반구대 암각화지만 또 다시 수 천 년을 이어갈 인류의 유산으로 남기 위해선 정부와 지역사회, 문화계와 학계는 물론 시선을 돌리지 않았던 시민들까지 모두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십 수 년 간 보존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훼손을 반복하고, 울산시와 시민들부터가 암각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전 세계 인류의 유산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 세계인에게 가치를 인정받기에 앞서 더 많은 울산시민들이 유산의 높은 가치를 재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강현주기자 usk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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