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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간다'
'거북이가 간다'

이자경 작가가 쓰고, 케이영 작가가 그린 '거북이가 간다'를 읽으면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이 생각난다. 그의 그림책처럼 '거북이가 간다' 역시 단번에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사색에 빠지거나,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이자경 작가는 거북이가 연못을 등진 채 기어가는 걸 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연못에 돌려보낼까 말까 망설인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거북이를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잘 모르면서 간섭하는 건 곤란하잖아.'란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도 호랑나비를 거미에게서 구해준 어린 박새를 칭찬하지 않은 어미 박새와 호랑나비알을 먹은 거미를 원망하다가 도움받은 걸 깨닫고 고마워하는 초피나무가 나온다. 이들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20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인간이 활개 치던 세상을 멈추게 했다. 도시 봉쇄로 인간이 숨을 죽이자 하늘이 맑아졌고, 인적이 끊긴 도시에 야생동물이 나타났으며, 고래가 자유롭게 노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구가 인간의 것인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 책의 다섯 이야기 주인공인 거북이, 박새, 꽃, 초피나무, 문어가 그 대답의 힌트를 줄지 모르니 천천히 책장을 넘기시길!

첫 번째 이야기 '거북이가 간다'라는 토끼처럼 달에 가기 위해 대표를 뽑으면서 시작된다. 가장 나이가 많은 흰수염은 "힘과 지혜, 그리고 바른 마음이 함께하면 어디를 가든 길을 잃지 않을 거야. 자네들을 믿네."라며 등을 두들겨 주고, 대표로 뽑힌 세 거북이는 어려움에 부닥친 동물을 도우며 달을 찾아간다. 물에 빠진 박새를 구해주고, 바위에 눌려 있는 솔 싹을 위해 바위를 치워주고, 덩굴에 걸린 들쥐를 위해 덩굴을 끊어주고, 물에 빠진 어린 남생이를 구한다.

두 번째 이야기 '씨앗을 심는 새'에서는 박새가 주인공이다. 박새는 자신을 구해준 거북이처럼 누군가를 구해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거미줄에 걸린 호랑나비를 구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거미를 굶게 만든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슬퍼하다가 씨앗 심는 일을 하며 행복해한다.

세 번째 이야기 '노래하는 꽃'에 나오는 세상은 꽃들이 말을 하는 곳이다. 가장 아름다운 꽃을 키운 사람은 공주와 결혼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서 꽃들과 이야기할 여유를 잃어버린다.

네 번째 이야기 '날개가 된 초피나무'에서는 훨훨 나는 게 꿈인 초피나무가 호랑나비알을 돌본다. 네 번의 변태 과정을 거쳐 알이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순간, "저기 내가 날고 있어. 내 꿈이 이루어졌다고!"며 환호한다.

엄성미 아동문학가
엄성미 아동문학가

다섯 번째 이야기 '난 이대로가 좋아'에 나오는 문어 말랑이는 뼈가 없다는 이유로 어른 물고기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말랑이 부모는 따돌림 당하는 자식을 위해 이사 가려고 하지만, 말랑이는 이대로 떠나 버리면 가슴속에 박힌 가시가 영영 빠지지 않을 것 같다며 거절한다. 마음이 단단한 말랑이는 친구들을 구해주면서 다시 물고기들과 친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혼자 잘살겠다는 생각이 없다. 괴로운 현실을 피하지도 않는다.
2021년 새해,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지혜를 모은다면 힘든 고개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엄성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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