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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클라라의 골목은 사람이 곧 풍경이 된다. ⓒ서영교
싼타클라라의 골목은 사람이 곧 풍경이 된다. ⓒ서영교

쿠바의 새벽 닭 울음소리는 악명 높다. 하지만 닭이 들으면 웃을 소리다. 닭의 받아 적을 수 없는 소리는 그저 귀를 훑고 지나가지만 사람들의 새된 목소리는 베개를 뚫고 들어온다. 이 분들은 다 득음하신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가히 폭포도 뚫을 만하다. 우리처럼 할 말이 있으면 가까이 가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떨어져 있든 그냥 자기 있는데서 얘기한다. 그렇게 해서 일찌감치 잠이 깬 나는 아침을 시작하는 그들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싼타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관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서영교
싼타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관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서영교

 # 사회주의지만 미국을 싫어하지는 않는
여행한다는 것은 함께 하던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이고, 떠남으로써 더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처음 혼자 여행할 때는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빠 없이 지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거다. 쿠바를 여행하는 지금은 아내가 더 그립다. 어쩌면 어디서나 서로에 대한 친근감을 표현하는 쿠바사람들의 영향일 지도 모르겠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시절, 체 게바라는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알베르토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가 없다는 사실은 마치 옆구리가 미지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느낌이었다. 문득 그와 얘기하려고 돌아보지만 그의 빈자리만 느껴질 뿐이었다.… 알베르토와 헤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온전히 행복할 수 없었다." 그는 혁명가이자 뛰어난 문장가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이보다 더 절절히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 그를 만나러, 체 게바라의 도시 싼타클라라로 간다.

우리는 흔히 쿠바를 미국에 적대적인 공산국가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는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히며 미국과 등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의 온갖 테러와 경제봉쇄를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는 편이 맞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하며 국교를 정상화했을 때 많은 쿠바인들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버렸다. 쿠바는 인도주의적 외교를 통해 자기편을 만들어 갔고, UN에서는 미국과 그 동생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쿠바의 경제봉쇄를 풀 것을 원하고 있다.

쿠바인들은 트럼프를 미친놈이라 부르지만 미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거리에선 성조기가 그려진 옷을 거리낌 없이 입고 다니고, 극장가엔 찰리 채플린의 포스터가 커다랗게 걸려 있다. 아바나의 혁명박물관엔 링컨 대통령의 조각상이 놓여 있고, 번화가에 마틴 루터 킹의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내가 묶던 숙소 옆엔 존 레논 공원이 있고 그 중 한 벤치에 앉아 있는 존 레논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그의 발 밑엔 Imagine의 가사 일부가 새겨져 있다.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언젠가 너도 나와 함께 하기를 바래….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거리에선 성조기가 그려진 옷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영교
거리에선 성조기가 그려진 옷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영교
한 영화관 앞. 쿠바 사람들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 ⓒ서영교
한 영화관 앞. 쿠바 사람들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 ⓒ서영교

# 곳곳서 만나는 성조기·찰리채플린·존 레논…
모든 혁명은 완수되는 순간 스스로를 향한 배신을 시작한다고 했던가. 피델은 현실정치의 길을 선택했고 체 게바라는 영원한 혁명을 꿈꾸며 떠난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살았다는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내 능력을 넘어선다. 하지만 내가 특히 그에게 끌린 부분은 그가 역사 앞에 진실되고자, 자신을 미화하려는 어떤 글들도 단호히 거부했던 모습들이다. 또한 그는 미국이든 소련이든 초강대국들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말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옮기는데 나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사상은 양날의 칼처럼 두 가지 뜻을 표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글은 날카롭고 명료한 한쪽 날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남을 공격할 땐 서슬 퍼런 날을 세우지만 자신의 뜻을 얘기할 땐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들어 놓는 우리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가 묻혀 있는 기념관 앞에는 거대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지금의 쿠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의 삶이 남루하다 하여 혁명의 정신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혁명광장의 체 게바라. 그 아래 '완전한 승리의 그날 까지'라는 그의 말이 새겨져 있다. ⓒ서영교
혁명광장의 체 게바라. 그 아래 '완전한 승리의 그날 까지'라는 그의 말이 새겨져 있다. ⓒ서영교

"너희가 시간의 씨앗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씨앗이 자라고, 어떤 씨앗이 안   자랄지 알 수 있다면, 말해다오."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민족의 성쇠는 항상 사상의 추세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으며, 이것은 항상 모종의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서,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묘청과 김부식의 한판대결을 꼽는다. 이 싸움에서 김부식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사가 사대적 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만 것이고, 그의 역사관을 담은 '삼국사기'가 우리의 고대사가 되어 버렸다. 이후 한국인의 사상은 반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썼다. 이런 점에서 승리의 역사를 쓰고 있는 쿠바가 부럽기도 하다.

최근 미국 흑인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사이에서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발견 기념일에 이런 구호를 외친다는 말을 들었다. "아메리카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메리카가 발견되지 않았다니 무슨 말인가? 누군가 당신 집에 들어와서 "내가 이 집을 발견했다"고 하며 나를 내쫓는다면 어떨까? 명백한 침략전쟁을 '발견'이라고 말하는, 서구인들의 편향된 역사관을 우리가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꼬집는 것이다.

집 수리 중인 아저씨. 쿠바에선 모든 것을 고쳐 쓴다.
집 수리 중인 아저씨. 쿠바에선 모든 것을 고쳐 쓴다. ⓒ서영교

# 승전의 기억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마크 피터슨 교수의 역사학 강의를 본 적 있다. '편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왜 이순신 장군은 아무도 모르느냐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역사학자들 역시 자신의 시대적 배경에 따른 편향을 가지고 있다. 한 한국인 학생은 자신의 편향에 대해 확실히 말했다고 한다. "저는 민족주의 역사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칭송할 역사를 쓸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민족주의 역사학의 단계를 거치며 자신들이 얼마나 멋있고 위대한지에 대해 썼죠. 반면에 한국이 얼마나 위대했는지에 대한 역사를 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나요? 이걸 바로 편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 ​​​​​​​단체 및 그룹전 7회 class614@naver.com
서영교
class614@naver.com
1971년생, 현 CK치과병원 원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수료
단체 및 그룹전 7회

정말 큰 충격이었다. 객관적 기록이라 생각하는 역사 역시 사실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로 기록된다는 점. 그 '정'에 해당하는 것이 민족주의적 관점이고, 이것이 실랄한 비판을 거쳐 '합'에 이른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기록이 사대적 사관, 식민사관으로 이어져 왔다면, 이제는 민족주의적 관점의 비판을 거쳐 올바른 '합'에 이르러야 한다.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 생각이라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적 공격의 강대국 민족주의와 약소국들의 방어적 민족주의는 절대로 동일하지 않다. 20세기의 세계역사는 소수의 강대국들이 다수의 약소국들을 침탈한 야만의 역사였다. 이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약소국들이 견뎌낼 수 있는 힘은 방어적 민족주의로 단결하는 것뿐이다."

나름 여행기인데, 체 게바라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너무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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