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 하나 켜놨죠
촛불 하나 켜놨죠

은행나무는 한그루만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두 그루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그래서 은행나무 밑에 연못을 만들어 제 모습을 비취게 하면, 제 모습인지도 모르고 사랑하고 열매를 맺는다는 자기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자기애(自己愛), 그런 유사한 나르시시즘 설이 있다는 것을 어릴 때 동네 할머니들에게 수없이 많이 듣고 자랐다.

내 고향 장기면 동학산 자락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고, 은행나무 근처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가을이면 학교 다녀오는 길에 은행나무 밑에 들러 은행알을 주워 와서 구워달라고 떼쓰면 구린내 진동한다고 빨리 나가 씻으라는 어머니 꾸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엉덩이 몇 대 얻어맞아 가면서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소하고 쫀득하게 구워진 은행알을 먹기도 했었다. 가본지 오래되어 지금까지 그 나무가 있는지, 작은 연못도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준영 '그리움 나무'를 펼쳐 보니 그리움이 묻어나는 어릴 때의 추억을 소환하는 동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정화되는 이 느낌이 행복하다.
책꽂이에서 버려야 할 것 같은 누른색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강준영 작가의 '촛불 하나 켜놨죠'. 이 순수동화는 나의 서재의 오래된 골동품이다. 너무 낡고 닳아 깨끗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읽었던 책이다. 작가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아마도 찐 팬이 되고픈 마음이다.
좋은 책을 소개하면서 행여나 나도 모르게 독후감이나 평론으로 기울게 될까봐 정신줄을 잡고 써 내가는데 매우 조심스럽다.

강준영 동화작가는 1944년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써 경북 여러 지방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동시, 동화집을 출간하였으며 제8회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아동문학에서 버금가는 작품이 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동화를 쓰다가 39세 나이로 불꽃같은 생을 마쳤다.
'외로움 나무'를 함축하여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몹시도 외로운 아빠 은행나무는 까치아저씨가 멀리서 물어다 준 예쁜 은행열매에서 훈훈 엄마나무의 향기를 느끼며 위로받는다. 열매를 물어다 준 고마운 까치아저씨에게 둥지를 짓도록 곁을 내주었고 까치아저씨 새둥지에는 아기까치들이 번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까치아저씨가 물어다 준 열매는 아빠나무 곁에서 이듬해 싹이 트고 무럭무럭 아기나무가 자라고 있어 행복하고 외롭지 않다는 내용이다.

아동문학가 서순옥
아동문학가 서순옥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강준영 작가의 '그리움 나무'는 혼자라고 느껴지는 세상 모든 이에게 힘을 내라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가 감사하다.
표지에도 언급되어있지만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진정으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동화"라고 명시되어 있다. 동시도 마찬가지지만 동화는 어른이 쓰고 어린이만 읽는 것이 아니라, 어른도 함께 읽고 동심의 세계를 함께 이해하고, 함께 공감하는 것이라고 어느 문학회 모임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던 어느 시인이 있었는데, 이 동화책에서도 1975년, 대구 매일신문 인터뷰 내용으로 짤막하게 같은 내용을 언급해놓았다.

-상략-  ('외로움 나무' 발췌)
어떻습니까?/내가 지은 이름이…/자꾸만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아닙니까?/여러분 중에서, 혹시 외롭게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시거든, 그것이 나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리움'이란 이름의 나무라고 생각해 두셔요./그리고, 말해 주십시오./외롭지 않은 나무라고./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이는 영원히 외롭지 않다고…./  아동문학가 서순옥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