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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박산하

아들의 동반이 되어가는 며느리
딸이 없으니 딸보다 예쁜데
처음 인사하러 올 때
어디 사는 것 외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들이 좋아한다는데
사소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그냥 그 모습
눈 맑은 아가씨가 내 가족이
된다는데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행여 가슴에 금이 갈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신접살림, 서너 달 지나
며느리 전화를 했다

- 어머님, 고맙습니다
- 저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박산하: '서정과 현실' 신인상. 시집 '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천강문학상 수상. 시목 동인. 경주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과 석사.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세상 한 곳이 환해진다. 봄밤 꽃등을 켜든 목련 아래처럼 아늑하다. 그믐을 지나서 다시 차오르는 달처럼 아니 보름을 돌아 나와서 몸을 줄여가는 하현처럼 애잔하다. 시의 품에 안겨 쪽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어진다.
이 시는 박산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의 표제시다. 책 속에는 나를 훅하고 당기는 다른 작품도 있었지만 이 시는 내가 따라가고 싶은 길이었다. 여운이 참 좋다. 시를 쓴다는 것과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닌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라는 말이 뭉클하게 가슴에 깊이 스며든다. 그 말의 대물림에 대하여 오래 생각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물려 준 값진 재산이며 내가 잇고, 가능하면 내 아이에게 잘 전해주고 싶은 그런 울림 큰 종소리 같은 말.
"아들이 좋아한다는데" 그거면 충분하다는,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나는 순간, 겨우 스물다섯인 아들의 연애사에 내가 쏟아낸 질문들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눈 맑은 아가씨가 내 가족이 된다는데" 그렇다. 이것만으로 족한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 맑은 눈이 '내 아들'의 삶을 얼마나 빛나게 하는지를 알고 있지 않은가. 연애를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온 세상이 어제와는 다르지 않던가. 어제와 다르게 꽃이 피고 아침마다 새로운 빛으로 나뭇잎이 반짝이던 기억, 그 위로 바람이 살랑 부는 것도 나를 위한 축복인 것처럼 충만해지지 않았던가. 그 꿈같던 순간도 세월 따라 퇴색하지만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잘 저장되어 우리 생을 지탱해나가는 힘이 된다. 며느리는 아들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해준 존재인데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할 일임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행여 가슴에 금이 갈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맑은 눈"만 맞추었을 자리가 상상이 된다. 어쩌면 그녀 눈의 맑음은 마주보고 앉은 어머니의 눈부처가 아닐까.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 말이 낸 금은 쉬 아물지 않는다. 내 속에도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말에 베인 크고 작은 금들이 있다. 혼자서 무뎌진 것도 있지만 깊게 패인 상처가 되어 자주 아린 곳도 있다.
내가 내뱉은 말이 상대의 가슴에 낸 '금' 또한 얼마나 많을까 돌이켜 생각하는 새벽, 나는 이 신혼부부가 궁금해진다. 나도 모르게 그 아들부부에게 이 것 저 것을 질문하고 있다. 이 시를 따라가기에 나는 아직 멀었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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