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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송정역 공사현장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 북구 송정역 공사현장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김진영 전무 겸 편집국장
김진영 전무 겸 편집국장

# 해양 실크로드에서 철도 실크로드
지난주, 국가철도공단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국가철도공단이 지난달 발행한 '대한민국 철도역 100'이라는 철도 가이드북에 울산을 제외시켰다. 전국의 웬만한 도시와 철도역은 모두 소개해놓고 정작 철도 역사 100년을 맞은 울산을 빼버린 참사가 벌어졌다. 

공단에서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처음 취재에 들어갔을 때 반응은 "울산이 빠졌나요?"하는 생뚱맞은 반응이었다. 그러다 국회의원들이 철도공단에 항의하고 진상조사를 벌이자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해명이 걸작이다. 태화강역은 공사 중이고 본래 있던 울산역(지금은 사라진 학성동 소재 울산역)은 철거했으니 넣을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안하느니만 못한 해명에 뿔이 난 울산 국회의원들이 호통을 치자 그제서야 인터넷 배포용 책자의 내용에 울산을 추가하고 5월까지 새로운 책자를 만들어 울산의 스토리을 담겠다고 물러섰다. 

철도분야에서 울산은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울산에 철도가 들어온 것은 올해로 딱 100년 전의 일이다. 일제는 한반도 수탈을 위해 철도를 깔았고 물류와 병참기지의 최적지인 울산은 그런 연유로 철도 역사가 빨랐다. 대구까지 뻗었던 경편철도가 경주와 포항, 울산으로 이어진 시점이 1921년 10월 25일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중구 성남동 구소방서 터 부근에 들어선 첫 울산역은 1935년 학성동을 거쳐 지금의 태화강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 철도가 또 한 번 용트림을 하고 있다. 동해선이다. 동해선 철도는 부산에서 포항까지가 '동해남부선'142.2㎞와 포항에서 삼척까지 166.3㎞, 삼척에서 최북단 고성까지 140.9㎞의 장대한 노선이다. 이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 부전역에서 기적을 울린 철도가 최북단 강원도 고성까지 481.4㎞를 쉬지 않고 달리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성에서 잠시 쉰 열차는 북한의 동해안을 지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해 시베리아와 유라시아를 관통하고 마지막에는 베를린에서 유레일 열차와 만나게 된다. 

물론 남북과 중국, 러시아 등의 평화공존의 길이 모색된다는 가정법을 전제로 실현될 수 있는 상상이다. 꿈은 아니다. 내년부터 동해선의 상당부분이 개통되고 동해중부와 동해북부의 철도노선도 착착 기적을 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신경주역에서 방향을 틀어 안동을 거쳐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중부고속철도 노선의 탄생이다. 이 노선의 실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말 그대로 울산의 철도 지도가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전환기에 와 있는 셈이다.

울산과 서울 청량리를 잇는 이 노선에는 시속 260㎞로 달리는 준고속열차 EMU가 투입된다. 지난달부터 중앙선 청량리(서울)~안동(경북) 구간에 이 열차는 이미 달리고 있다. 2022년 말이면 울산 북부와 동부 지역에서도 이 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서울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1일 철도 생활권이 열리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철도로 연결되는 21세기의 새로운 '철도실크레일'이다. 울산은 4세기 이후 서라벌의 외항으로 국제교류의 현장이었다. 해양실크로드의 종착지였던 셈이다. 그 영광과 번영의 꼭짓점이 8세기였고 반구동 항만과 개운포 항만이 실증적으로 과거의 영광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 오랜 역사의 바닷길이 이제 철도 노선으로 재탄생해 동해안을 따라 유라시아를 지나 동유럽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역사를 맞게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철도로 이어지는 21세기 신실크로드의 현장이다.

울산 북구 송정역 공사현장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 북구 송정역 공사현장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 송정역이 박상진역으로 바뀐다면 
앞서 이야기한 철도공단의 책자에 울산이 빠진 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철도공단의 울산 누락은 북방철도의 중심역이 울산 태화강역과 송정역(가칭)이 될 것이라는 보도 때문이었다. 물론 철도공단이 울산을 일부러 빠뜨린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책 발간을 주도한 용역사가 공사 중인 태화강역의 사진 촬영이 어렵게 되자 아예 빼버렸다는 변명을 수용한다 해도 울산이 그만큼 홀대를 당한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책을 만든 자들이 가진 몰역사성의 문제다.

울산은 대한민국 철도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스토리도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지역의 위상이 높거나 정치적 입김이 남달라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도시가 된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슬쩍 빼버려도 아무도 모르고 지나가버리게 되고 어쩌다 발견해서 흥분하면 실수였다고 고개만 숙이면 그만이다.

필자가 문제의 책자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박상진 장군 때문이다. 지금 북구 창평동에 짓고 있는 가칭 송정역의 이름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처음 떠오른 이름이 박상진 장군이었다. 대한민국에 독립운동가나 위인, 문인이나 예술가의 이름을 딴 역이 있나 싶어 철도공단 홈페이지를 뒤지다 발견한 것이 불과 일주일 전에 발간한 '대한민국 철도 100'이라는 책이었다. 사람의 이름을 넣은 역이 있었다. 경춘선에 있는 김유정역이다.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역은 원래 신남역이었지만 지난 2004년 문인들과 지역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우리나라 철도역 중에서는 처음으로 인물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으로 바꿨다. 바로 역 앞에 위치한 실레마을이 김유정의 고향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 

창평동에 짓고 있는 가칭 송정역 옆에는 박상진 호수공원이 있다. 그 호수공원 아래에 위치한 동네가 박상진 장군의 생가다. 송정역의 이름을 바꾼다면 박상진역이 가장 적합하다는 근거다. 

또 있다. 울산이 낳은 근대 인물 가운데 박상진 장군은 단연 특출하다. 법률공부를 하고 판사시험에 합격했던 장군이 왜놈의 법을 집행하는 것을 거부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처단의 기회를 엿보던 장군은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민족반역자와 부역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처단을 통보했다. 바로 그 당당함이 박상진 장군의 정체성이었다. 장군의 기개는 일제의 폭압이 자행되는 암울했던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고 비열한 일제 앞잡이와 지도부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외침이었다.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 전경. 울산시 제공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 전경. 울산시 제공

우연의 일치 같지만 올해는 박상진 장군이 일제의 법정에서 사형집행으로 순국한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다행히 울산에서는 박상진 장군을 추모하는 여러 가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박 장군의 고향인 울산은 수천년 전부터 왜놈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도적떼에게 당당히 맞서 국권을 지켜낸 항일정신의 면면한 역사성이 흐르는 곳이다. 문제는 박상진 장군의 순국 100년을 맞은 올해에도 여전히 장군에 대한 관심은 싸늘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0년의 일이다. 경술국치 100년이던 그해 공중파 역사 프로그램에서 박상진 장군의 일대기를 방송했다.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은 알아도 그의 대장이었던 광복군 총사령 박상진 장군은 몰랐던 시절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울산 송정동에 있는 장군의 생가는 뉴스의 초점이 됐다. 그리고 7년 뒤 지난 2017년 전쟁기념관은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헌신하고 순국한 박상진 장군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그 이후 박상진 장군의 추모 열기와 위상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박상진 장군에 대한 재조명 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다.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아 고향에서부터 장군의 뜻을 기리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우리부터 장군의 뜻과 정신을 제대로 조명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박상진 장군의 정신을 면면히 잇기 위해 정부에서 팔을 걷어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첫 작업으로 가칭 송정역의 이름을 바꾼다면 당연히 이 역은 박상진역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울산에서 동해선이 기적을 울린다면 100년전, 만주를 호령하고 일제를 떨게한 박상진 장군의 고향이 울산이고 그곳에서 달리는 열차역이 박상진역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동해의 아랫도리에서 대륙을 향하려는 일제의 후예들이 박상진 장군의 호령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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