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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전무 겸 편집국장
김진영 전무 겸 편집국장

# 도륙 당한 천혜의 해안선
이번 설 연휴는 두 가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는 울산의 해안을 제대로 걸어본 일이고 나머지는 울산의 철기 문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살펴본 시간이었다. 이번 설 연휴는 완연한 봄이었다. 연휴 동안 울산의 공원들과 강변은 인파로 넘쳤다. 특히 강동 바닷가부터 간절곶에 이르는 동해의 절경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코로나19라는 괴질과 1년 가까이 살아온 탓인지 이제는 바이러스조차 받아들이는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연휴 풍경이었다.  

울산의 바닷길을 걷는 일은 감탄과 회한, 절망이 어우러지는 묘한 시간이다. 한반도의 동남쪽 척추의 아랫도리를 받치고 있는 울산은 천혜의 지리적 요충지다. 지리적 거점이자 대륙의 통로였던 울산이기에 선사문화의 원류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울산처럼 오래된 과거가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인 도시는 드물다.

당연히 풍요로운 땅은 침략과 노략질의 대상이었고 문화의 발원지였다. 선사와 고대문화의 뿌리였기에 오늘날에도 팔도의 사람이 공존하고 다국적 시민이 함께하는 글로벌 도시가 됐다. 지금의 울산은 조국 근대화의 산업수도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융합하는 자유무역과 수소도시라는 새로운 창조도시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 뿌리는 역시 역사성에 있다. 

울산의 경우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경제의 일꾼 역할만 강조해 왔다. 울산에 공장을 짓는 기업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조국근대화'라는 완장으로 무장한 채 천혜의 해안을 개발의 삽질로 만신창이를 만들었다. 개발의 대가로 막대한 부를 창출한 기업은 '성장의 주역'이라는 이름으로 한층 더 개발의 속도를 냈고, 파고 부수고 허물어 공룡 같은 철제와 콘크리트의 성장 탑을 쌓았다. 이로 인한 폐해는 무수하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울산의 뿌리를 파헤치고 무너뜨리고 도려낸 개발의 역사다. 하지만 울산의 산하를 짓밟고 황폐화한 주역들은 국가경제의 일등공신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성장의 공을 부인하자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성장과 함께 도시의 오래된 가치를 살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지만 성장이라는 코드에만 매몰됐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를 울산의 바닷길은 잘 말해준다. 바로 해안의 황폐화다. 

울산의 바닷가를 걸어보면 참담함과 감탄, 절망과 경이로움이 교차한다. 읍천항 주상절리로 시작되는 북쪽 해안길부터 정자바닷가와 대왕암까지의 비경은 말 그대로 자연사 박물관이다. 그 길을 돌아 울산대교를 지나 장생포로 길을 돌리면 고래울음과 공장의 위태로운 희뿌연 증기가 혼합된 묘한 이질감을 만나고 석유화학공단과 온산공단을 돌아 당월 바닷가에 서면 처연한 절망감에 눈물이 흐른다. 어찌 이처럼 도륙당한 천혜의 절경이 또 있을까. 

지금은 사라진 아이언로드의 핵심인 달천철장 터(왼쪽)와 초라하기 짝이없는 전시관 모습.
지금은 사라진 아이언로드의 핵심인 달천철장 터(왼쪽)와 초라하기 짝이없는 전시관 모습.

최근 울산과 관련한 의미 있는 책 세 권이 나왔다. 울산박물관이 펴낸 1,000년 전 국제무역항 반구동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해문(海門)과 대곡박물관이 펴낸 울산 지도의 역사서 '지리와 경관을 통해 본 울산' 그리고 울산발전연구원이 펴낸 철기문화 백서다. 세 권의 책은 모두 울산의 고대사를 제대로 살펴보게 하는 귀중한 역작들이다. 

이 가운데 김한태 전문위원이 발로 쓴 울산의 철기역사서는 단연 돋보인다. 김 위원은 이 책을 통해 울산이 가진 철기문화의 DNA를 제대로 펼치고 있다. 한반도 철기 문화를 이야기할 때 울산은 언제나 소외되고 있다. 바로 그 근본은 진한(신라)과 변한(가야)이라는 철의 주도권 싸움과 변한의 일방적 승리로 기록한 연구자들의 함량이 만든 왜곡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고대 제철 발흥지는 진한(辰韓) 사로국인지 변한(弁韓) 가야국인지 분명치 않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울산 달천광산 일대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는 김해가 철의 왕국이라고 주장한다. 이 혼란은 중국 역사서가 한반도의 고대 제철산업장을 기술하면서 변한과 진한을 구분하지 않고 변진(弁辰)으로 뭉뚱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또 일제 강점기에 역사를 배운 학자들이 역사서를 쓰면서 임나일본부설을 절충해 섞어 놓은 탓이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금속분석을 통해 '변진 국출철(國出鐵·나라에서 철이 나온다)'의 실체를 밝히는데 바짝 다가섰다. 김해 지방에서 발굴한 철제유물에서도 비소가 검출되면서 그 철의 원산지가 울산 달천광산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근거로 한반도 제철 발상지는 울산 달천광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울산의 달천광산은 한반도 철기문화, 아니 동북아 철기문화의 유전인자를 해독하는 비밀지도 같은 것이었지만 연구자들은 이를 외면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가야와 철기문화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한반도 철기문화의 독점권을 가야문화에 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임은 초창기 고대사 연구자들이 가져가야 한다. 철기가 가야문화의 상징이자 핵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뿌리가 김해라는 점은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달천철장에서 비롯된 무수한 철장과 비소가 함유된 철기의 질은 한반도 철기문화의 뿌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는 울산학을 다룬 연구자들의 부족이 핵심이다. 울산은 대한민국 인문학에서 언제나 소외지대였다.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적 업적이 쌓여갈 때 울산은 개발의 일번지였고 산업화의 망치 소리가 요란한 땅이었다. 갈아엎고 파헤쳐 공장을 세울 생각에만 열중했지 땅속에서 나온 고대사의 무수한 흔적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 초라한 흔적, 달천전시관
바로 그 현장이 달천철장이다. 불과 20년 전까지 땅속에서 철광을 캐던 곳이 우리 옆에 있다. 달천은 한반도 철기문화의 심장인 장소성을 가진 곳이다. 그 증좌는 무수하다. 아직 이곳의 원주민은 불매질의 노동요를 흥얼거리고 근육과 맥박은 철판을 두드리는 유전인자가 이어지는 현장이다. 그런데 그 심장의 보존과 계승은 어떤가. 철장은 파묻혔고 흔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철장전시관 하나로 버티고 있다.

몇 해 전이었다. 석탈해로 시작된 울산의 철기문화를 이야기하며 아이언로드의 복원을 주장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도 호응했다. 지화자, 좋구나. 2,000년 숨죽인 아이언 로드가 깨어나 달천이 이제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되는구나 싶었다. 제철역사관과 체험관, 전시관, 쇠부리축제장 등이 만들어지고 시베리아와 일본을 이어주는 아이언로드를 만나는 공간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무지한 문화재청과 복지부동의 행정은 시늉만 하고 페인트칠만 두루뭉술하게 발라버렸다. 초라하고 부끄럽고 왜소하다. 이럴 바에야 안 만드니만 못하다. 달천은 이 정도로 싸구려 분칠로 내팽개칠 장소가 아니다. 한반도 철기문화의 원형이자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철기로 융합된 인류문화의 보물창고다.

고대사는 절대적으로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체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가야가 비밀의 왕국, 신비의 왕국이 된 것은 무수한 고분군에서 출토된 엄청난 철기 문화의 부장품 때문이다. 이를 연구자들이 '철의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고 그 원류는 무시했다. 달천의 철장이 가야 철기의 원형이었고 그 뿌리를 제대로 계승한 신라가 철의 왕국으로 삼한일통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당연히 달천은 지도에서 사라졌고 철장은 아파트 개발에 밀려 땅속에 파묻혔다. 그리고 몇 해 뒤 동북아 아이언로드를 역사학계가 주목하자 김해와 고령, 충청과 전라도 일부 도시들까지 삼한의 뿌리를 이야기하며 특허권을 들고나왔다. 울산은 물론 명함도 내지 못했다. 비극이다. 여기까지는 오늘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일의 이야기는 달라져야 한다. 한반도, 아니 동북아 철기문화의 뿌리는 울산이다. 달천과 삼한일통을 연결하는 아이언 로드의 중심에 울산이 있어야 한다. 그 대장정은 지금부터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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