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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전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진영 전무이사 겸 편집국장

# 훼손의 극치 백제유적의 부활
백제의 보물 금동향로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부여박물관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기획전시에 나섰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빛이 차단된 전시실에서 만난 금동향로는 천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했다. 바로 오늘 섬세한 세공의 손에 막 작업을 끝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듯 시간의 벽을 넘어서 있었다. 황홀하다는 말이 부족한 신비로운 광채가 향로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심장이 멎는 순간이었다.

눈앞의 이 향로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보물의 발견은 기적같은 이야기가 많다. 물론 모두가 사실이다. 백제금동향로도 그렇다. 딱 18년 전이다. 지난 1993년 12월12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물웅덩이 진흙 속에서 철제 유물 하나가 발견됐다.

진흙에 잠겨 산소가 차단된 채로 있었기에 원형이 대부분 보존된 상태였다. 기적이었다. 섬유조각 등이 주변에 널려 있었던 것으로 추적됐다. 주변 흔적의 조사 결과였다.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향로를 급하게 천에 싸서 진흙 바닥을 파헤치고 묻어놓았던 것으로 보였다. 바로  부여 능산리 절터의 서쪽이었다. 출토 당시 향로는 몸통과 뚜껑이 분리된 채 금동제품, 칠기편, 유리제품, 토기류, 기와류와 함께 출토됐다.

지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대한민국 백제 유적지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수천년전, 실질적인 동북아의 패자로 문화예술을 주도했던 백제가 한참 늦게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백제역사지구는 공주의 공산성과 무령왕릉, 부여의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나성 그리고 익산의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1993년 12월 12일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직후의 모습(맨 위). 신광섭 관장과 조사원들이 막 꺼내온 향로의 이물질을 닦아내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1993년 12월 12일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직후의 모습(맨 위). 신광섭 관장과 조사원들이 막 꺼내온 향로의 이물질을 닦아내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이 일대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짓밟힌 이래 거의 1,000년 넘는 세월을 땅 속에 묻힌 채 사라진 역사로 남은 곳이었다. 바로 그 짓밟힌 역사가 일제강점기 일본의 도적떼에 의해 무참하게 다시 한 번 도굴 당하고 급변하는 현대사를 지나면서 우리 손으로도 몇차례 도굴과 훼손이 반복됐던 곳이었다. 

세계가 백제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이같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단 하나,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만든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견이 계기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백제의 오래고 깊은 문화예술의 뿌리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유네스코의 손길을 닿게 했겠지만 금동대향로 하나가 가진 엄청난 문화유산의 힘은 범접하게 힘든 경지의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지금 백제 문화는 새로운 용트림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공주시·부여군·익산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포함한 백제왕도 핵심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보존관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적처럼 발견된 지난 1971년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과 함께 최근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사비)의 동쪽 산기슭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에서 무수한 왕릉의 흔적이 쏟아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등 백제 후기 왕가의 여러 제왕이 묻혔을 가능성이 큰 묘역 터로 보고 이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주목할 부분은 바로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로 백제문화의 부활이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온나라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도 백제역사지구의 중심인 공주와 부여에는 주말마다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지역 숙박업계나 음식점 등은 방역비상과 넘치는 손님들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힘이자 백제금동대향로라는 국보 하나의 힘이다.

# 국보285호 반구대암각화와 명승 
백제의 흔적을 돌아보고 오던 날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암각화박물관에 들렀다. 토요일 오후의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없었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박물관에 부산에서 왔다는 11살 이지호군이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딱 그 친구 가족과 두 분의 다른 관람객이 전부였다.

백제금동대향로 보다 20년 이상 먼저 발견된 반구대암각화는 금동대향로보다 1년 먼저 국보로 지정됐다. 1995년의 일이다. 바로 다음해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287호라는 번호로 국보가 됐다. 발견하던 날부터 국보지정 날까지 문화재청은 백제금동대향로의 완벽한 복원을 위해 모든 인적 물적 수단을 총 동원했다. 번쩍거리는 오묘함과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타고 흐르는 향로의 곡선을 완벽하게 살려내려는 치열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는 무심한 암벽에 새겨진 뭉퉁한 바위그림이라는 이유로 방치됐다. 아무나 지나가다 만져보고 긁어보기까지 해도 누구 하나 막아서는 자들이 없었다. 심지어 역사나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은 무수한 탁본으로 솜방망이를 두들겼다. 어떤 대학의 연구팀은 지질을 조사한다고 구멍을 뚫었고 슈미트헤머라는 기기로 바위를 내리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무관심이었다. 적어도 1995년 국보 지정 때까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올해 초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를 포함한 대곡천 일원을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 대상에 올리면서 울산은 새로운 자극을 받고 있다. 우선등재 대상지는 '대곡리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천전리암각화'(국보 제147호)를 아우르는 반구대 일대의 계곡이다. 앞으로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기 위한 국내 심의는 '등재신청 후보'와 '등재신청 대상'선정 단계가 남았다.

울산시는 내년 4월 등재신청 후보 신청을 시작으로 7월 후보 선정, 2023년 7월 등재신청 대상 선정, 같은 해 9월 등재신청서 초안 제출 등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울산시는 이러한 과정을 계획대로 진행해 2024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1차 평가, 2025년 2차 평가 등을 거쳐 2025년 7월께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에서 대곡천암각화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는 목표다. 계획과 일정표는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문화재청의 자세는 불안하다. 당장 세계유산 전단계의 명승지정 절차만해도 그렇다.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 울산신문 자료사진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 울산신문 자료사진

문화재청은 지역주민들이나 울산시와 사전 교감을 갖지 않은채 지난달 '울주 반구천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 명승지정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두 차례 명승지정을 추진하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일이 있다.

지난 2013년의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 문화재청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지금은 현지 주민 일부가 반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울산지역 상당수가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 일대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한 현지 조사에 나서고 주민들과의 일전도 불사했다.

'명승'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인 면이나 관상적(觀賞的)인 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 지정문화재를 말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가 관리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의도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전 교감없는 밀어붙이기식 행정은 주민들을 둘로 갈라놓았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자는 쪽과 무슨 말이냐, 생존이 먼저라는 쪽의 대립이다. 갈등의 내용을 잘아는 문화재청은 설명회를 하려다 주민반발이 거세자 뒤로 빠졌다. 또 돌아가서는 무지한 울산시민들이 문화재를 방치한다고 떠들어댈 셈일지도 모른다.  

백제지구에 금동대향로가 있듯 대곡천에는 반구대암각화 하나로 탁월하고 충분한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문제는 문화재당국의 책임의식이다. 수십년 동안 방치하고 훼손을 부추긴 그들이 이제는 절차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갈라놓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일대를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유산지구로 만들 의지가 있다면 당장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이라도 반구대암각화 주변 훼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에 걸맞은 예산과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 문화재청이 스스로 세계유산급 국보를 방치한 바람에 반구대 일대의 사설 건축물이나 인위적 훼손은 막을 방법을 놓쳐버렸다. 이를 방치하다 보니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명승지정 운운하는 일은 부끄러운 짓이다.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내일의 그림을 그려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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