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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도 해야 할 일들  
 
김유석
 
병아리 한 줄 마당에 풀어
노모의 안짱걸음 쫓게 하는 일,
박씨 한 톨 훔치려 빈집 처마 올려다보는 일
 
게으름 피우기 좋은 옛일 말고
 
고샅길 녹슨 바퀴 자국 걷어 들바람에 팔아먹는 일
소작 마지기나 붙이러 강 언덕 복사꽃 그늘 애태우는,
 
하루 품삯조차 팔지 못하는 그런 일 말고도
 
제풀에 겨워 제껴대는 장끼 울음에
떠가는 구름 소실(小室) 하나 들이는 일
 
송사리 떼에 간지러운 발목 뜯기며
실뱀 같은 도랑물 오르내리는 일,
 
그러고도 마딘 나절가웃
 
집배원 오토바이 꽁무니에 뿌연 흙먼지 매달고
달리지 못하는 끝까지 신작로 가르는 일
맨 적 없는 흑염소 고삐 쥐고 돌아오는 일,
 
그중 가장 겨운 건
저문 논두렁에 멍하니 서서
 
여릿여릿 패는 보리 목 지켜가며 몸살 앓는 일  
 
△김유석: 1960년 전북 김제 죽산 출생, 전북대학교 문리대 졸업.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 '붉음이 제 몸을 휜다'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올 봄에는 무엇을 할까. 해마다 돌아오는 처음의 계절에 되풀이 되는 물음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일들이 있고 여러 결심들이 있을 것이다. 학업, 일, 건강, 취미 등 추구하는 것에 활력을 얻고자 자기 효능감을 위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언제나 미완으로 끝나고 마는 무위의 결심은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구정을 쇠고 2월 중순에 시골집으로 왔다. 밤에 잠깐 창문을 열었는데 세상 시끄럽도록 와글거리는 소리가 밤을 뒤엎었다. 경칩이 한참 멀었는데 개구리들은 알을 배느라 밤을 붙들고 오로지 뛴다. 시인이라면 마땅히 동참하는 마음으로 성스러운 합창을 경청해야 하거늘. 칠팔월 개구리 울음소리와는 사뭇 다른 이 소리는 왜 적응이 안 되는 걸까. 마음 따로 행동 따로의 나에 대한 발견이다.

 시인은 조곤조곤 품삯조차 나지 않은 일에 공을 들인다. 편리함을 멀리하면 생기는 마음의 여유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확연히 알겠다. 누구는 코로나가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새로운 선물일 수 있다고 한다. 잃어져 가는 것, 지워져 가는 것, 사라져 가는 것, 소외된 것들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울렁임으로 올 봄에는 생각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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